interview/Artist

침투와 우회를 통한 전복과 전환, 미디어 유랑가 임민욱_interview

aliceon 2011. 7. 7. 15:46

미디어 아트(Media Art). 이 커다란 이름 아래 소개되는 기술(technology)로 매개되어 움직임(moving)과 빛(light)을 통해 유형화된 여러 작업들이 여느때보다도 눈에 띄고 있다. 여느 작품들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동시대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만큼 빠름과 변화 속에 자칫 기술적이거나 표피적인 상황만을 캐치해 낼 수 있다는 가능성 또는 위험성 하에 그녀의 작품은 눈길을 끈다.

작가는 미디어라는 방법을 통해 사회의 경계, 문화의 전환 지점에서 침투와 우회를 통해 당대의 상황과 관계를 드러낸다. 그곳에는 ‘끊임없는’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그 세상의 장소성을 읽고 미디어라는 방법을 통해 이동하고 침투하며 때론 우회하는 전술가로서의 모습이 보인다. 새로운 기술의 사용만이 아닌, 충돌의 지점을 찾아 다양한 접근을 행하며 이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받아들이는 자의 판단을 재고하는, ‘침투’와 그 ‘깊이’가 작가가 가진 특별함이 아닐까. 



1.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양한 방식과 매체로 미술작업을 하는 작가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고 학생들을 좋아하는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불의 절벽 2>이란 작품을 국립극단 연극무대에서 선보였고요, 그전에는 한강 유람선에 관객들을 초대한 적도 있지요. 제 작품은 주로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보여지지만 근래에는 영화관에서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2. 전공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방법을 통한 미술 접근이 주였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 작업을 주로 진행하고 계신데 이러한 매체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회화를 전공했고 졸업 후 몇 년간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그릴 때 행복했었던거 같아요. 대부분 그렇듯이 학생시절에는 최소한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고 졸업 후에는 작품이 팔리면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인정하고 보호하며 심지어 요구하는 예술가의 자유는 역설적으로 얼마나 구속적인 것지 회의와 더불어 진정한 자유와 자율에 대한 갈증이 커져 갔습니다. 그러다 예술가와 사회와의 관계, 삶과 정치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다양한 매체를 통한 접근과 제도에 관한 비평적 표현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긴박함과 유동성으로 나타나는 현실은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하고 이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매체인 것 같습니다.


3.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미디어 아트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미디어 아트란 저를 둘러싼 환경이 미디어에 많은 지배를 받고 따라서 그 지배에 영향을 받지만 끊임없이 의심을 품게 하고 다뤄지지 않는 구석을 조명하는 용감한 표현물들을 가르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시각의 장이 인간의 시야를 넘어서 비가시 세계와 광속으로 치달음에 따라 전쟁터가 되었다" 고 비유했습니다. 저는 이런 세계 속에서의 미디어 아트를 지금 여기의 전쟁터에서 행할 수 있는 예술적 실천의 방법론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위한 속도전인가'에 의심을 품고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에 다시 천착하기 위해 서사의 귀환을 마련하고 오감을 작동시켜 다시 사람을 돌보도록 하는데 미디어 아트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예술의 창작원리가 원래 그렇지만 창작물로서의 ‘시’가 세상을 감각하도록 일깨운다면, '미디어 아트'는 자기를 조직하는 체계를 갖추게 합니다. 흔히 오해하는 ‘인간 마우스’가 센서를 작동시키거나 버튼을 누르고 다니는 것과는 상관없고 미디어 기술의 그만큼 확장된 수단을 가지고 현실에 앙가쥬망(주. engagement. 사회참여, 현실참여 혹은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 타운 고스트, 10분45초, 영상설치, 2005, 1 DVD 프로젝터, 1TV 모니터, 1 컴퓨터, 1 DVD 플레이어, 1인용 소파, 카펫트, 긴 의자


4. 특별히 영향을 받은 작가 혹은 결과물이 있으신지요.

 대학시절에는 실존주의와 시인 김수영이 무서웠어요(웃음). 유학가서는 마르셀 부루데어스(Marcel Broodthaers)와 쟝 뤽 고다르(Jean-Luc Godard)가 겉멋들게 했고요. 지금은 그 시절 빠짐없이 본 영화의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귀환을 제 안에서 느낍니다. 하지만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으나 '당연히도' 제 작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작가나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저를 둘러싼 환경과 저와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속까지 빨간 ‘빨갱이’들에게 나라를 내줄 수 없다는 아버지, ‘깜둥이’와 놀지 못하게 하라는 할아버지, 하루종일 들려오는 이웃집 물소리, 욕설, 찌개냄새, 아이 울음소리, 시위자, 숨어서 담배피는 여자, 난간에 서서 자살을 고민하는 학생들,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말한 비전향 장기수, 그들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 신념과 신앙을 재질문시킨 정치학 교수님, 탐스럽게 피었다 금방 져버리는 목련꽃, 그리고 늘 뒤통수를 부여잡고 있는 말무덤… 그래서 아마도 이렇게 말을 내뱉고 후회하고 다시 고치려 또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5. 2010년 겨울(11월 11일), 미디어 아트 코리아 어워즈 초대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본인에게 어떠한 의미가 되셨는지요. 그리고 후속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뉴욕에 가신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었습니다.

그 일 이후, 변화라면 저를 보고 상복도 많다고 칭찬인지 뭔지 모를 말씀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아트란 무엇이냐고 질문들을 많이 하십니다. 그래서 제게 있어 그 상의 의미는 박찬경 작가처럼 좋은 작업을 하시는 분과 후보에 올랐다가 상을 받았으니 상대적으로 겸손하게 만드는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미디어 아트에 대한 정의를 쇄신하도록 하는 부탁을 받은 것 같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써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변화라면 변화입니다. 그 방법으로써 이 상은 해외에 유통될 도록을 제작합니다. 8월 출간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부상으로서 해외여행 특전을 주는데 저는 뉴욕을 그냥 택했었습니다. 그 자리에 뉴욕 사람이 있었고 그 도시를 잘 몰라서... 어쨋건 작품이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미술관에 소장되면서 이를 기념할 전시와 맞물리게 될 것 같습니다. 일정은 아직 미정입니다.


스무고개-‘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 15분, HD 2채널 동영상 (스크린 디자인), 2008







6. 작가님의 작업에서 민족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고찰, 세대-문화-인종의 차이에 대한 관심이 보입니다. 그리고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 등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바 서사와 표현에 있어서의 이중구조도 보이고요. 작가님은 작업을 진행하시는 데 있어 어떠한 점을 표현하시며, 집중하시고 계신지요.
 거주민-이주민 이라는 이분법적 갈등이 외부적 지표로는 성공한 한국의 근대가 내제한 비틀린 민족주의, 예컨데 단일민족과 같은 모습으로 표출되었다는 점이요. 이러한  우리의 정체성,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여러가지를 건네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개인전 <꼬리와 뿔>에서도 이주민과 정착민이라는 구조를 떠올렸었습니다. 많은 작업들에서 한국 근대화라는 사회적 상황과 조건에서의 비판과 성찰을 이끌어낸다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한국 근대화 과정 기간의 미칠듯한 속도 하에서 양자가 서로간의 존재와 관계를 제대로 인지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채 고착되어버린 괴리를 생각했어요. 
  
차이는 항상 생성을 마련하고 마찰도 만들어내죠. 천성적으로 일관되게 ‘다름’을 보고 좋아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더 풍부할 수 밖에 없잖아요. 미술작업이라는 것이 그 낯섦을 환대하는 가장 훌륭한 쟝르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꾸준히 제 작업 속으로 모티브가 되어 나타나고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열망하는 일이 때로는 작업 스타일의 부재로 비춰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가운데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라는 작업 전반의 제목은 아뜰리에 에르메스 미술상을 계기로 지어낸건데 제 작업을 묘사하는 시간과 공간성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 삶을 둘러싼 환경과 시간의 변화가 축적된 지층의 단면에서 읽히는 엇갈림 또는 마주침의 흔적과 같은 거죠. 제 생각에 서사는 전시장 속으로 연장된 행위들을 통해 고유의 영토를 구축하고 그 땅이 늘어나기도 하고 다져지기도 합니다. 고유의 장소성이 발생하기도 전의 안정적 공간으로의 개입에서 삶이라는 중간 과정의 날 것 상태가 가져올 충돌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설치는 그러한 사적 경험과 제도의 상관관계가 이중구조로 보여지면서도 침식과 퇴적을 구사하는 적합한 방법론이라고 봤지요. 영상과 오브제의 배치가 이러한 관계를 읽어내도록 작업했었는데 잘 읽혀졌는지는 모르겠네요…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과 퍼포먼스, 그리고 다시 기록하는 작업들은 부단한 움직임을 수반하기 때문에 내면, 침잠, 중립을 작품의 의무로 주장하는 이론들에 항상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에는 언제든 유리한 쪽으로 옷을 갈아입는 기회주의자들도 있기 마련이지요. ‘말’은 ‘어디에?,’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을 배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말'을 선점하는 정치인들은 '떠덜어댄다'고 종종 표현하지요. 하지만 미술은 어디에서 무엇을 ‘지금’ 하고(doing) 있는지를 그대로 반영하죠. 운동성과 그 흔적, 드러남과 드러냄 사이에서 부단한 투쟁의 장인것 같습니다. 제가 집중하는 표현과 질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불의 절벽 2, 2011년 4월 5일, 6일 저녁 8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 
연출: 임민욱 
출연: 정혜신, 김태룡



7. 페스티벌 봄에서 <불의 절벽 2>을 선보이셨습니다. 박정희 군사 독재 말기, 이데올로기 냉전에 휩싸여 삶과 가족 모두가 희생당한 실제 고문 피해자가 등장했고 또 다른 레이어로서 열감지 카메라와 무대 전체, 나아가 무대의 외부까지를 한 스테이지로 포함한 실험극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형식과 내용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신 바는 무엇이었나요.

그 무대는 예전에 기무사 수송대 자리였습니다. 지금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 분관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도 상흔을 가진 공간들은 ‘정치와 무관해야 하는 순수’ 예술계에게 선물주는 식이더라구요. 미술계에 하나 주었으니 이번엔 연극계에 하나. 이런 식으로 넘겨지면서 자동 분칠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뽀얗고 싱싱한 것들로 넘쳐나면서 예술가의 상상은 자본주의의 콘텐츠 제공 역할을 맡는 지적 재롱둥이나 자처하게 되고요...
저는 이러한 추세에 실질적인 힘도 발휘못하는 나약한 존재이고 슬픔을 느낀다는걸 자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주변에는 아직 과거의 상채기가 아물지않아 어떤 장소를 지나가려면 실재 몸이 아파온다는 사람들이 실존하고 있거든요. 예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맹목 아닌가요? 저는 어떤 황홀한 작품으로 눈을 사로잡는 것 보다는 어둠을 지각하는 눈, 역사가 지워진 공간을 한꺼풀 드러내서 그 전에 뭐가 있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엄연히 실재 했던 이야기는 이제 상상 속에만 남아있는 가상으로 무대 바깥 공간에서 재현되었고 연극이 펼쳐졌어야 할 무대 위에는 그 장소성의 피해자였던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귀환한 순간이었습니다. 예술의 기회가 그 분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환기되었다면 제가 바랬던 예술 형식과 내용의 의미가 전달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 또 한가지 작품에 있어서 눈에 띄었던 부분은 열감지 카메라였습니다. 필터를 이용한 색변화 혹은 디지털 변조를 통한 이미지 변화가 아닌 '적외선'이라는 매질에 집중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열감지 카메라는 요즈음의 미디어와 기술이 놓치고 있는 '촉각'과 '온도'라는 지점을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소비사회의 사진과 영화는 '빛'에 구속되어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는 기술이라는 것이 저를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까' 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레 옮겨가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근대화는 '빛'에 비유되는 과학 기술 문명의 발전을 이룩하면서 그림자도 짙게 드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속에 가리워진 존재들을 보고 싶어하고 노래하는 것에 열정을 갖는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9.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이 있다면?

아직 선보이지 않은 앞으로의 작업입니다.



9. 향후 계획을 알려 주세요.

 젊은 큐레이터 박재용씨가 기획하는 다원예술프로젝트로서 <흩어지는 전술들>, 로테르담 Witte de With의 <멜랑코토피아> 전, 그리고 내년 미국 워커아트센터에서의 개인전에 관해 대화하고 준비중입니다. 그리고 이번 가을 PKM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준비하는데 하루의 리듬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의 절벽2> 공연을 계기로 팸스 초이스(PAMS Choice)에 선정되서 10월에 쇼케이스를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도 많은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끊임없이 경계에서 추방하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계획은 제 삶에서 참 홀대받는 행위 중에 하나인데 이러다 제 이력서에 올릴 것들에 관한 계획말고 언제 물뿌리고 파종하고 이런 계획 세우며 동이 트길 기다리는 농부가 되어 있는 계획을 가지고 나타날지도 몰라요. 계획이 확실해지면 또 말씀드릴게요.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웹페이지 http://minoukl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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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마가진(magazyn.co.kr)과의 제휴 콘텐츠 기사입니다.

글. 허대찬(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