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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장소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 21. 19:32


 "근래에 들어 공간의 중요성의 크게 부각되고 있다. 보편적인 거대서사를 거부하고 이질성과 차이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지역의 구체적인 양상들이 과거에 비해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공간의 의미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해 볼 여유조차 가지지 못한 채, 순식간에 공간과 장소에 관한 담론들에 압도당한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공간과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경험을 잔잔하게 되새겨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특히, 공간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냉철한 공간 인식>은 물론이거니와 <따뜻한 장소 사랑>이 필요하다. 본서는 따뜻한 장소애를 전해주는 책이다."
- <역자 서문> 중에서


 
  작곡가는 작곡을 하면서 "공간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작곡가가 만든 음악이 연주되는 순간, 그 장소는 새로운 공간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소리 자체는 공간적 인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던 중 이-푸 투안의 "공간과 장소"라는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작가는 1930년 중국 텐진에서 태어나 인문지리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장소애>라는 책 출판 이후 3년 만에 출판된 이 <공간과 장소>라는 책은 더욱 체계적이고 확실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공간과 장소를 환경을 구성하는 근본요소로 보고,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가>를 탐구한다.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세 가지 주제는 첫째, 경험의 생물학적 토대, 둘째, 공간과 장소의 관계, 셋째, 인간 경험의 범위이다. 


  이-푸 투안이 말하는 공간은 움직임, 개방, 자유, 위협을 의미한다. 반면 장소는 운동 속에서의 정지, 개인들이 부여하는 가치의 안식처, 안전과 애정을 느끼는 고요한 중심이다. 즉, 낯선 공간이 감정적이고 경험적인 것들의 가치가 부여됨으로써 미지의 공간에서 친밀한 장소로 전환되는 것이다. "추상적 공간"이 시간과 경험이 쌓여 의미로 가득한 "구체적 장소"가 된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장소감은 이질적이고 추상적인 낯선 공간에서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장소로 전환하여 친밀한 장소로 다가올 때 느끼는 감정이며, 이-푸 투안은 이 책의 전반을 통해 이런 과정이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인간이 자기세계를 공간화(spatialization)하는 데 있어서 가장 뚜렷한 특성은, 그것이 행위와 지각 경험이라는 실용적 차원에 결코 한정되지 않는 듯하다는 사실이다" -할로웰(Irving Hallowell) p.145

 "장소의 정체성은 개인적, 집단적 삶의 열망, 필요, 기능적인 리듬을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성취된다." p.286 


 9장의 주제는 <경험 공간에서의 시간>이다. 작곡가인 필자에게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룬 이 장이 특히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각각 서로 다르게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고 시공간적 세계를 만든다. (p.194)" 라고 하는데 이것은 작곡가 슈톡하우젠이 "그 소리들은 각자의 시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라고 했던 말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13장의 <시간과 장소>에서도 장소와 관련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은 모두 각자만의 "장소"를 소유한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제일의 "장소"이며 집과 고향은 친밀한 장소이다. 10장에서는 <친밀한 장소 경험>을, 11장에서는 <고향에 대한 애착>을 이야기하며 개인의 감정과 경험이 장소를 만든다는 주장을 펼친다.


 "즉 장소는 정감어린 기록의 저장고이며 현재에 영감을 주는 찬란한 업적이다." p.247

 "도시는 무엇이고, 사람은 무엇인가? 그렇다. 사람들이 도시이다." p.278

 "오래된 도시는 풍푸한 사실들을 담고 있다." p.280


 저자가 인문지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이기에 책을 읽기 전에는 과학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책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으나 그는 인간의 경험과 연결시켜서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심지어 "경험은 감정과 사유로 구성된다"라고 말하며 "거리는 자신으로부터의 거리이다. 고로 가깝다는 것은 친밀함과 지리적 근접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결합된 것이다"라고 인간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에서 "지리학자와 건축계획가는 "세상의 존재(being-in-the-world)"가 진실로 어떠한지를 기술하고 이해하고자 하기 보다는, 낯익음(familiarity) -- 우리가 공간 안에서 방향감을 가지며 장소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 -- 을 가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라고 밝힌다.

 데카르트는 "공간은 좌표가 없는 균질 공간의 개념이고 장소는 좌표가 있는 것" 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좌표가 개인의 경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목차>

 
역자 서문 / 5
 
저자 서문 / 10
 
차례 / 12
 
그림 차례 / 13

 
1. 서론 / 15
 
2. 경험적 관점 / 23
 
3. 공간, 장소, 그리고 아이 / 39
 
4. 신체, 개인적 관계, 그리고 공간적 가치 / 63
 
5. 광활함과 과밀함 / 89
 
6. 공간적 능력, 공간적 지식, 그리고 장소 / 115
 
7. 신화적 공간과 장소 / 141
 
8. 건축 공간과 인식 / 167
 
9. 경험 공간에서의 시간 / 193
 
10. 친밀한 장소 경험 / 219
 
11. 고향에 대한 애착 / 239
 
12. 가시성: 장소의 창조 / 261
 
13. 시간과 장소 / 287
 
14. 에필로그 /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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