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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이 밝았다. 그리고 다사다난했던 2006년이 저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2006년에 미술계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사건이 뭐였냐고 묻는다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백남준이라는 큰 별이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겠다. 그를 위한 촛불을 사이버 공간 속에 밝히며, 비디오 아트를 비롯한 ‘무게 없는 예술’을 예술가적 사유를 통해 보여준 그의 일생을 애도했다. 지금 나는 그가 떠나간 2006년을 되돌아보며, 그리고 그를 마음에 담을 2007년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백남준을 돌이킨다.



Why Mr. Paik?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중,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백남준’ 이라는 세 글자에 내 귀가 커졌던 것 같다.

“백남준 미술관 생긴다면서? 그런 거 왜 생기는 거야? 비디오로 예술한 게 뭐 대수야? 그리고 내가 봤는데, 막 바이올린 끌고 다니던데..그게 예술이야? 나도 하겠더라…”
‘그래. 당신도 하겠지. 아마 누구나 할 수 있겠지’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착잡한 마음이 이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이게 바로 우리 나라의 현실이었다. 외국에서 유명하다고 하니깐 알긴 알겠는데, 백남준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작업을 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알아 봤자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술관에서 나름의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혹은 추상표현주의로도 껴안을 수 없는 백남준은 대중 관심 밖의 괴짜 예술가에 불과했다. 그러나 반문해 보고 싶다. ‘그래서, 당신은 그 바이올린이나 끌고 다니는.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바보 같은 짓을 왜 했다고 생각하는가?’

백남준이 단지 장난꾸러기라서, 아니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보려는 순간적 시도에서 그의 예술이 비롯되었다면 나도 할말은 없으리라. 하지만 그의 예술은 분명히 어떠한 맥락과 개념을 지니고 있으며, 그 예술적 개념은 시대를 앞서가는 유연한 것이었기에, 현대에 우리가 접하는 많은 작품에서도 그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백남준의 예술적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시절 스승 이건우를 통해 접하게 되었던 쇤베르크의 음악도 한몫 거들었다고 할 수 있으나, 시각예술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는 플럭서스(Fluxus)의 언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플럭서스는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으로, 미국인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에 의해서 1962년 명명되었고, 그의 노력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중심이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플럭서스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중심과 주변부가 없는 평등한 구조 속에서 예술가 각자가 자유롭게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하나의 커뮤니티적인 성격을 가진 예술가 그룹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플럭서스는, 그 이름에서부터 보여주듯, 유동성을 모태에 가지고 출발한 어떤 예술의 흐름이었다. 백남준은 이러한 플럭서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작업의 기반을 다졌고, 플럭서스적 특성들은 백남준 예술의 전반에 걸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글로벌리즘 Grobalism, 예술과 삶의 통합 Unity of Art and Life, 인터미디어Intermedia, 실험주의 Experimentalism, 우연성 Chance, 놀이성 Playfulness, 단순성 Simplicity, 함축성 Implicativeness, 예증주의 Exemplativism, 특수성 Specificity, 현존성 Presence in Time, 음악성 Musicality
- 위의 개념들은 플럭서스 멤버 중의 한 명인 히긴스Higgins와 켄프리드만Ken Friedman에 의해서 규정된 플럭서스적인 특성이라고 하는 것들이다. 백남준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대부분 설명이 가능하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총 네 가지의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바로 비디오 조각설치와 비디오테이프, 샤를로트 무어맨을 위한 비디오 오브제, 위성중계 공연이다.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분류법은 에디트 데커를 따랐다.)
먼저 비디오 조각설치를 살펴보면, 그것이 오브제적인 성격을 띠는 만큼 공연이나 출판 등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플럭서스적 특징들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설치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놀이성’과  ‘인터미디어’이다.  <TV 정원>(1974)과 <Fish Flies on Sky>(1975)등 놀이성이 돋보이는 모니터설치에서는 자연과 인공의 인터미디어를 형성하고 동시의 관람객들의 감상방법을 새롭게 유도하여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참여 TV I>은 흑백 TV에 연결된 확성기를 통하여 청각적 요소를 개입시켜 영상을 변화시키는 작업이었다. 이는 청각 신호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 무수한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났는데, 이후에는 컬러 TV를 이용하여 좀 더 스펙터클한 영상을 연출한다 . 그리고 <참여TV>는 제목 그대로 제3자의 개입으로 완성되는 작품이므로, 작품과 관객의 인터미디어를 형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백남준의 비디오테이프를 살펴볼까 한다. 비디오테이프는 그 자체의 특성상 대량복제가 가능하며, 방송처럼 관람환경이 제한되어 있지 않으므로 플럭서스의 인터미디어적인 특징과 ‘예술과 삶의 통합’이라는 지향점을 본래 가지고 있게 된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 중 초기 대표작인 1968년 <전자오페라 1번> 작품에서는 닉슨의 얼굴과 목소리를 일그러뜨리고, 히피와 반나체 댄서를 교차시켜 사회를 풍자함과 동시에 멘트를 통하여 TV의 일방적 메시지를 풍자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상호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백남준은 비디오의 매체적 특징을 십분 활용하여 ‘인터미디어’와 ‘예술과 삶의 통합’을 실천하고 있으며, ‘글로벌리즘’의 실현가능성을 열어둔다. 또한 정확한 예시를 등장시킴으로써 구체주의적 성격까지 포괄하고 있다.


백남준은 비디오설치작업과 비디오테이프작업 외에도 샤를로트 무어맨이라는 첼리스트와 비디오오브제적인 작업을 오랜 시간 해왔다. 여기서 백남준은 여성의 신체를 끌어들임으로써 ‘성’을 매개로 삶을 예술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보인다. 이것은 매체로서의 비디오와 주제로서의 성에 관한 관심과 결합되면서 나타난 특별한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기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실험정신과 더불어 플럭서스의 지향점인 ‘놀이정신’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특이한 점은 샤를로트 무어맨과의 퍼포먼스에서 백남준은 무어맨에 초점을 맞춘 인터미디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 TV, 음악과 미술의 인터미디어인 것이다. 이렇듯 백남준은 삶의 은밀히 감춰진 부분(성)을 드러내어 예술과의 인터미디어를 형성하여 삶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무엇보다도 백남준을 다른 작가들과 뚜렷이 구별되게 하는 결정적 사건은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 곳곳에 자신의 작품을 생중계함으로써 진정한 글로벌리즘을 달성한 것이다. 생방송은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 리얼한 것이다. 삶과 같이 직접적으로 와닿는 이러한 생방송이야말로 상호 소통적 참여 TV의 이상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인공위성을 통한 본격적인 작품은 잘 알려진 <Good Morning Mr. Orwell>(1984)이다. 이 작품은 뉴욕과 파리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공연프로그램이 쾰른에서 보내는 비디오테이프 방영과 섞이면서 베를린, 함부르크,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와 서울 등 국제 대도시들로 중계되는 하나의 지구적 사건이었다. 작품 내용 전반에는 백남준 특유의 ‘놀이성’이 흐르고 있으며 메시지의 전달을 위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도입함으로써 구체주의를 실현하였다. 또한 백남준은 일시성이 돋보이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방송함으로써 ‘소통’을 이끌어 내었고, 또한 동시에 예술과 기술,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데 성공하였다.  



단순한 얼리어댑터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그의 매력은 그가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개념들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현대의 사람들이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보여줬던 것이 아닐까. 그의 예술이 지금도 향수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예술 같지 않은 예술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 생애 전반에 걸쳐 예술, 관객, 삶의 세 요소들의 상호교환적인 소통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한국의 미디어 아트계는 어떤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듯하다. 이전 미술사에서 자꾸 분리되고 있으며, 예술에서도 기술에서도, 그 어떤 분류에서도 그를 선뜻 끌어안아 주지 않아, 약간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마냥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백남준과 같은 괴짜 예술가가 다시 등장하기를 바란다. 그의 신선한 사고로, 직관적 감각으로 또 사유하는 예술가로 바짝바짝 말라가는 여기 이 곳에 단비를 뿌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미래를 사유하는 사람, 지금 우리는 그가 필요하다.



글.최정은 (앨리스온 에디터 red@alice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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