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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준의 미디어문화비평] 2. 놀이, 게임 그리고 매체예술_1부

yoo8965 2013. 1. 2. 17:39

1. 왜 예술과 게임을 연관시키는가?


   2011 6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성년자들에게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캘리포니아 주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캘리포니아 정부는 미성년자에게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할 경우 최고 1000달러 벌금을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대법원은 게임을 예술의 장르로 인정하고 책이나 만화, 연극처럼 언론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원 판사의 판결이다. 그는어린이를 위해로부터 보호할 권한은 있지만 미리 판단해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재량의 권한은 있을 없다 밝혔다.[1] 혹자는 이러한 위의 사례를 단순히 미국 게임 산업계의 승리로만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게임을 보는 우리의 인식과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단순히 게임을 하나의 오락-산업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상하고 경험했던 다양한 문화-예술의 일부로서 인식한 사건이며, 게임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 판례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는 곳곳에서 찾아볼 있다. 지난 3월부터 세계 최대의 박물관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The Art of Video Games' 주제로 80여개 이상의 유명 비디오 게임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전역에서 심사를 통해 선발된 문화 예술 단체 예술인에 지원금을 전달하는 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국립 문화 예술 진흥 기금) 지원 대상에 게임이 포함되면서 비로소 게임이 예술의 종류로 인정받는 길이 열리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일반적 인식 속에서 아직까지 게임이 예술로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게임들을 살펴보면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최신 영화의 요소들과 현대미술에서 중요시하는 감각적 상호작용 동시 참여성, 가상성 등의 요소가 어우러져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과연 게임을 이전까지 정의해 개념으로서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그렇다고 쉽게 게임을 예술의 범주 속으로 성급하게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무모할 있다. 왜냐하면 현대 예술의 개념과 범위가 과거와는 다르게 크게 확장되고는 있지만, 예술과 게임은 각각 존재 이유와 발생하는 형태 또한 상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게임을 예술이라고 정의하려 한다면, 우선 예술의 범위에 관한 고민이 선결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아무리 예술이 지닌 속성들을 갖추고 그것이 제공했던 감흥들을 대체하는 게임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과거, 사진이나 영화가 맺었던 예술과의 관계성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어려움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과 영화의 경우에도 다양한 각도에서의 검증과 비평을 통해 예술의 범주에서 이해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게임의 경우에도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당연하다. 더구나 사진과 영화의 경우, 이미지를 다루는 형식적 문제의 상이함 때문에 비롯된 어려움이라 하더라도 시각성-이미지라는 공통된 요소가 장르를 생성시킨 근본 요소였기에 결국 예술적 위치를 확보할 있었다. 그러나 게임의 경우, 시각적 이미지는 게임의 주요한 구성 성분이기는 하지만 게임, 놀이를 규정하는 필수적 요소는 아니다. 과거의 놀이들을 떠올려보면, 우리의 행동에 의해, 혹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만들어진 놀이 게임들을 찾아볼 있다. 따라서 게임을 예술적 범위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근본적 요소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과의 연결성과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내포하는 예술적 가능성을 함께 분석해보아야 한다.

 

2. 놀이로서의 이미지

 


   동굴 벽화를 미술사에서는 인류가 그려낸 최초의 재현 이미지라고 설명한다. 재현 (representation)이란 라틴어 어원인 'repraesentatio', '다시(re) 현전케하는 것(praesentatio)'을 의미하고, 독일어의 'Vorstellung', '앞에(vor) 세우는 것(stellung)'을 의미한다. 단순한 의미에서 재현은 눈앞에 존재하지 않거나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실물을 표현하는 행위 혹은 대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고대인들은 동굴에 그들이 경험한 세상의 일부를 다시 존재하게 만들었다. 즉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그 대상을 다시 그들 눈앞에서 현전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동굴 벽화는 자연 세계에 관한 원초적인 모방 행위이며 일종의 환영(Illusion)이다. 일반적으로 초기 예술은 인간이 자연 세계에 남겨놓은 흔적으로부터 발생하였다고 이야기된다. 자신의 흔적을 외부에 남겨놓으려는 본능적 충동은 '손바닥 각인' 같은 흔적들을 남겨놓는데, 동굴 벽화 역시도 이러한 충동으로부터 발전된 자연에 대한 모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사는 일종의 환영(illusion)을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네덜란드 역사가이자 놀이학자인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일루전을 '놀이 중(in-play)'이라고 해석하며 라틴어 inlusio illudere, inludere 등을 같은 뜻이라고 지칭한다.[2] 그의 언급대로 일루젼(Illusion)이란 단어는 'il(=in)+lus(=play or shine)+ion(=suffix)'로 구성되어 있다. 호이징하는 그의 유명한 저서 '호모루덴스'에서 문화의 여러가지 현상을 놀이와 연결시켜 의미화하고 있지만 특히 이미지, 즉 일루젼을 만드는 근본적인 행위조차도 근원적 조형 욕구와 연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주목해 만하다. [3] 그는 인간이 행하는 놀이의 근거를형상화 작용(Verbildichung) 근거하는 현실의 이미지 전환 작업이라고 조건 짓고 있으며 놀이와 예술의 관계에서음악 예로 들며 사이의 밀접한 연결성을 설명한다. [4]  특히라는 장르에 관하여시를 짓는 (Poiesis)자체가 사실상 놀이 기능이며, 그리스 시대 이후로 사회가 고도로 조직화하기 시작하면서 종교, 과학, 법률, 전쟁, 정치 등이 놀이와의 연관성을 잃어버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의 기능만이 여전히 놀이 영역 속에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논리와 인과 과정, 관념과 판단의 영역이 들어서기 인간에게 유희적이고 자유로운 혹은 자연스러운 영역으로서의 놀이의 영역을 산정하고 예술이 지닌 감성적이고 유희적인 영역으로부터 연결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놀이의 동기가 구체적인 목표를 따로 설정하지 않고 순수한기쁨이라는 덕목을 추구하는 점에 있어서의 창작적이며 예술적인 지점 또한 언급한다. 그러나 게임은 자신이 지닌 형식 및 규칙이라는 점에서 놀이와 구분된다. 놀이는 구속을 벗어나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데 반해, 게임은 규칙의 체계로 제약된다는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5] 그러나 최근 기술과 결합한 예술 작업들이 일종의 규칙들에 의해 제어되고, 관객들과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게임과 예술의 공유 지점은 보다 확장될 수 있다.

 

3. 기술과 결합한 예술, 그 유희적 특성



   호위징아는 예술을 하나의 창조적 놀위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호위징아가 모든 예술 행위를 놀이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형 예술의 경우 놀이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언급하는데, 음악 예술과 비교하여 음악이 가지고 있는 놀이 특질이 조형 예술에는 결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술은 물질적 형태의 제약에 묶여 있어 자유로운 놀이가 어렵고 음악이나 시처럼 생생하게 살아나기 위해 공적인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아 놀이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6] 이러한 언급을 기초로 예술 작품(특히 조형 예술작품)을 살펴보자. 호위징아의 언급처럼 조형 예술은 이전까지 분명 물질적 특성에 갇혀있었다. 조형 예술은 예술 전반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 분류 체계에 의한 것인데, 음악이나 문학, 연극, 무용 등 이른바 시간적 예술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물질적 재료나 수단으로 호소되며, 직관 형식으로서의 시간과는 달리 공간 내에 성립하며 기반이 되는 가시적 공간이 시각을 주축으로 하는 점에서 시간 예술과 대비된다. 그러나 기술과 결합한 현재의 예술, 즉 매체 예술은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의 구분을 넘어 두 가지의 주요한 속성을 결합시켜 버린다.  매체 예술은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여 시간과 공간이라는 속성을 매체를 통해 융합하여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호위징아가 언급한 물질적 형태의 제약에 묶여있는 점은 더 이상 조형예술이 지닌 놀이적 특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없다. 또한 매체 예술은 음악과 시처럼 공적인 '행위'를 전제한다. 과거의 예술과는 달리 강력한 상호작용성과 직접적인 가상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캐밀리 어털백(Camille Utterback)와 로미 아키튜브(Romy Achituv) 1999년도 작업 <Text Rain>은 상호작용적인 비디오 설치 작품으로 유명하다. 화면 안을 가득 채우며 떨어지는 텍스트들은 관람객들의 이미지 위에 얹혀지는데, 마치 옷 위에 묻어있는 먼지를 털어내듯, 관람객의 동작에 의해 텍스트들은 얹혀지고 떨구어지고 또한 씻겨 내려간다. 이 작품은 과거로부터 시도되었던 상호작용적 예술 작품의 특성이 전자적 미디어에 의해 보다 직접적으로 작품 속에서 구현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최근에는 보다 강력한 상호작용적인 작품들이 등장한다. 인터렉티브 프로젝트 그룹 예스예스노(YesYesNo)가 발표한 <Night Lights>는 관람객들의 참여에 의해 완성되는 영상 프로젝트이다. 뉴질랜드의 오래전 버스터미널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배경으로 영상을 투사하며 진행되었던 이 프로젝트는 관객들의 몸을 이용한 인터렉션 및 손을 이용한 인터렉션, 관람객들의 모바일 폰을 이용한 인터렉션 등 3가지 다른 속성의 상호작용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관람객들은 자신들의 움직임이 투영되고 자신들의 손짓에 의해 변화하는 전체 작품 이미지를 보며 예술 작품을 마주하는 새로운 자세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예술 작품이 제공하는 즐거움은 사실 그리 낯선 경험은 아니다. 우리는 어릴 적 즐겨했던 게임으로부터 유사한 참여와 상호작용, 즐거움을 이미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아트(Digital Art)> 저자 크리스티안 (Christiane Paul) 게임들이 현재 인터랙티브 예술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많은 패러다임을 탐험하며 초기 디지털 아트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언급하며, 게임과 디지털 예술이 가지는 공통점을 언급한다.[7] 그가 제시한 공통점은 첫째, 상호작용적(interactive)이라는 , 둘째, 집단적이면서 참여가 가능한(collaborative and participatory) , 셋째, 놀이(Role-playing) , 마지막으로 많은 다른 디지털 기술들과의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는 등인데, 이러한 공통점들은 서로 밀접한 영향 관계를 지니고 있다.


* 본 글은 지난 게임문화포럼(2012년 11월) 발제문을 재편집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다음편(part 2)에서는 '게임과 예술의 가상성' 및 '제작 측면에서의 게임과 예술'을 다룰 예정입니다. 



[1] 판결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CNN 리포터인 존 D. 서터(John D. Sutter)의 기사를 참조하라. 'Supreme Court sees video games as art', June 27, 2011, CNN

[2] 요한 하위징아, 김윤수 역, 『호모루덴스』,까치글방, 1993,  pp. 48-49 참조.


[3] 호이징하는 놀이의 본질을 순수한 생리 현상이나 심리적인 반사 작용 이상의 것으로서본능(Instinct)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정신(Mind)이나의지(Will)와도 다른 비물질적 성질의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람: 요한 하위징아, 같은 책, pp. 910 참조.


[4] 앞의 , p. 14.


[5] 제임스 뉴먼, 박근서 외 , 『비디오게임,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7, p. 28. 놀이와 게임의 규칙성에 따른 분류 및 차이점에 관한 연구는 사회-심리학자인 로제 카이유와(Roger Caillois) 및 피아제(Jean Piaget)의 놀이-게임의 규칙성에 관한 연구를 참조하기 바란다.


[6] 하위징아는 의례, 예술, 놀이 사이의 어원적 연결이 그리스 단어 아갈마(αγαλμα ,agalma)에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같은 책, pp. 314-318 참조.

[7] 크리스타안 , 조충연 , 디지털 아트, 시공아트, pp. 196 ∼19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