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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준의 미디어문화비평] 2. 놀이, 게임 그리고 매체예술_2부

yoo8965 2013. 2. 6. 17:27


4. 게임과 예술의 가상성

 

예술과 놀이는 기본적으로 가상성을 전제로 한다. 예술작품에서 구현되는 이미지의 재현(Representation)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假想) 이미지를 창작하는 것이며, 놀이와 게임의 경우 현실 세계와는 다른 (Rule) 적용되는 가상의 세계를 임의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형상화 작용(Verbildichung)에 근거하는 현실의 이미지 전환 작업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놀이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면, 예술 특히 시각예술은 다분히 놀이적이고 게임적이다. 또한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추상적인 가상의 의미를 실질적인 구현 환경으로 만들었다. 발터 벤야민은 새로운 기술 문명이 예술의 아우라 진행시키며, 그러한 기술과의 결합으로부터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서의 예술 공간이 탄생될 있다고 예견하였다.[1]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가상공간은 컴퓨터에 의해서 창조된 인공의 가상환경으로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로 만들어진 스크린 속의 세계로 현실세계와 구분된다. 상호작용적인 세계의 특징은 이용자가 전달하는 자극이나 행위에 가상세계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이용자에게 마치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Char Davies, <Osmose>, 1995


Jeffrey Shaw, <The Legible City>, 1988-1991


1989년에 제작된 제프리 (Jeffrey Shaw) <The Legible City>은 게임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맨해튼, 암스테르담, 칼스루에같은 도시를 모델로 제작된 가상의 도시 공간을 작품 앞에 마련된 실제 자전거를 타며 이동하게 되는데, 관람객들은 스스로의 작동에 의해 변화하는 가상 세계 속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속의 3D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도시 이미지가 실제와 유사하지 않음에 있다. 의도적으로 텍스트로 표현된 도시 풍경은 작품 경험자(관람객)에게 현실과는 다르지만 색다른 몰입의 경험을 제공한다. 데이비스(Char Davies) 1995년작 <Osmose> 이러한 경험을 보다 강하게 제공하는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입체감을 주는 HMD(Head Mounted Display) 자신의 호흡과 움직임을 탐지하는 실시간 모션 감지기를 착용하고 작가가 만들어놓은 가상 공간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Osmose> 자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재해석한 12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관람객들은 자신의 의지로 사이버 공간 속을 유영하며 현실과는 상이한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Linden Lab, <Second Life>, 2003


한편 전자적 구조에 기반을 게임의 경우, 기본적으로 가상성을 토대로 한다. 특히 게임 장르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란 장르의 경우, 실제 세계를 모델로 가상 그래픽 환경에서 다양한 유희성을 제공한다. 현실을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은 무수히 많은데, 그 중 린든 (Linden LAB) 3D 온라인게임인 <세컨드 라이프> 게임이 지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제목처럼 2 인생(Second Life) 온라인 가상 커뮤니티를 통해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닌 게임은 다른 여타의 게임처럼 달성해야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대신 속에서는 실제의 삶과 마찬가지로 모든 활동들이 발생한다. 플레이어는 가상공간 속에서 다른 자아(Avatar) 설정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다양한 활동들을 실행한다. 게임은 자체로서 다른 새로운 환경이자 인터페이스가 된다. 플레이어 혹은 관람객들은 이러한 환경에 접속하여 다른 자신의 삶을 영위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스크린 밖으로까지 연결된다. 컴퓨터 모니터 혹은 TV 스크린을 벗어나 도시의 빌딩 외관에도 가상적 이미지를 덮어 새로운 환영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들이 거듭되고 있다. 형상화 작용에 근거한 현실의 이미지 전환 작업이 우리의 생활 환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5. 제작 측면에서의 게임과 예술

 

호위징아는 조형 예술의 경우 놀이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언급하였지만, 제작과 감상의 측면에서 의례의 놀이 특질을 자연스럽게 찾아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최근 예술과 게임이 제작되는 환경에 관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로드 아일랜드 컬리지 (Rhode Island College) 철학부에서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아론 스머츠(Aaron Smuts)  '비디오 게임들은 예술인가? (Are Video Games Art?)'라는 글에서 영화와 같이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측면만이 아닌 제작의 측면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하는데, 현재의 게임 제작자는 영화 감독처럼 총체적인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게임 제작자를 분석한다.[2] 아론 스머츠의 언급처럼 현재의 게임은 복잡한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존재하며, 컷신(Cut-Scene)이라 불리우는 게임 중간에 삽입되는 영상으로부터 내러티브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영화와 유사한 카메라워크, 조명 효과, 음향 효과 등이 필요하다. 만약, 영화가 예술의 한 흐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게임의 경우 영화 제작 이상의 보다 종합적인 제작 과정이 발생할 수 있다. 예술가들도 이러한 게임 제작 과정에 관심을 쏟는다. <예술과 뉴 테크놀로지>의 저자 플로랑스 드 메르디외(Florence de Meredieu) '비디오 게임은 일정한 규칙(또는 역할)과 제한적 시스템에 기초를 두고, 대개는 '프로그래밍'되고 사전에 이미 '가공된' 상태의 쌍방향적인 성질을 발전시켜 나간다. '게이머'가 되어 버린 예술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규칙과 약정이다.' [3] 라고 언급하며 규칙과 약정이 기반된 인터렉티브한 게임 환경이 예술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제작 환경이 될 수 있음을 피력한다.

 


American film, <Diary of a Camper>, 1996


1996년 발표된 <다이어리 오브 캠퍼 (Diary of a Camper> 100초 남짓의 짧은 영화였지만, 실시간 그래픽 표시 기능을 갖춘 상호작용 게임 엔진을 사용한 최초의 영화로 알려져있다. 이렇듯, 기존 게임이 제공한 엔진을 이용해서 만든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머시니마 (Machinima)라고 부르는데 막대한 제작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단기간 내에 3차원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플랫폼으로는 1인칭 시점 슈팅 게임(FPS)이나 롤플레잉 게임이 많이 사용된다.[4] 머시니마는 기계를 의미하는 머신(machine)과 영화를 의미하는 씨네마(Cinema)의 합성어인데, 이미 게임으로 발표된 게임 속 배경이나 캐릭터를 활용해서 새로운 창작물을 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머시니마가 제공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현재 영화나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게임과 영화는 보다 많은 관람객과 소비자들을 전제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전제는 게임과 영화의 소재와 주제 및 형식적-내용적 제약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머시니마와 같은 새로운 방법은 이러한 제약을 벗어나게 만든다. 영화 제작자는 게임이 제공하는 다양한 환경에서 원작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콘텐츠를 구상할 수 있다. 비록 아직 원작을 뛰어넘은 작품이 발표되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6. 마치며

 

지금까지 예술과 게임의 공유 근거 및 현재 전개되고 있는 흐름을 살펴보며 게임과 예술의 공약 가능성을 분석해 보았다. 혹자는 왜 게임이 예술이 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또는 예술이 굳이 게임의 형식을 차용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 기술과 결합한 현대의 예술은 우리가 과거 예술의 요소라고 간주했던 부분들을 전복시키며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상업적 이윤 추구 및 대중적 만족을 전제하지 않은 게임을 상상해보라. 사실 게임이라는 형식 자체는 현재와 같은 게임 흐름 (이윤 추구가 주요한 제작 목적인)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보다 자유롭게 때로는 에술 작품처럼 플레이어들에게 감동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게임이 점점 더 많아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전개에는 필수적인 전제 사항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게임에 관한 혹은 예술에 대한 일종의 형식적-내용적 선입견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가 게임과 예술에 요구하는 또는 그들이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성을 전제하지 않을때 각 장르의 전개는 보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수준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게임과 예술에 대한 제도적-행정적 지원이다. 현재의 게임과 예술은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제작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제작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이 선결될 때 앞서 언급한 창의적 수준에서의 창작물이 제작될 수 있을 것이다.

 


* 본 글은 지난 게임문화포럼(2012년 11월) 발제문을 재편집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1] 발터 벤야민, 최성만 역,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길, 2007, p. 369.

[2] Aaron Smuts, 'Are Video Games Art', Contemporary Aesthetics, Published November 2, 2005

[3] 플로랑스 드 메르디외, 정재곤 역, <예술과 뉴 테크놀로지>, 열화당, 2005, 172p.

[4] 머시니마(Machinima)는 동영상을 캡처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녹화를 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게임 내에서 녹화할 수 있는 카메라를 제공하기도 한다. 캡처된 화면을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편집하고 성우 더빙과 음향을 넣어 하나의 스토리를 지닌 영화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Wikipedia)  '머시니마(Machinima)'를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