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Artist

박준범_자신의 진정성을 위하여, 자신과 타자의 주체성을 위한 전달._Inter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2. 1. 17:41


커다란 아파트는 끊임없이 올라가고 그 아파트를 쌓는 커다란 손이 보인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CG도 아니고, 다층의 레이어를 합쳐 합성한 것도 아니다. 카메라 바로 앞에서 손을 들어 아파트가 올라가는 모습에 맞추고 속도를 빨리 한, 어찌보면 어설퍼 보일수도 있는 아날로그적 노동 작업. 갸우뚱 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쉽게, 그리고 다양하게 해석된다.
지극히 디지털적이고 기술적인 이미지와 형상, 움직임들이 부각되고 몰려다니는 지금의 미디어 아트에서 그의 아날로그적 작품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신선하다. 그의 ‘정신적인 노동력’이 응집된, 식상하지만 식상하지 않게 우리들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작동하는 그의 작업과 그의 생각을 접해보자.



사범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셨는데, 대학생 시절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미술교육과이지만 ‘사범대’ 라는 틀에서 작가로의 연결이 쉽지 않은데 작가의 길을 걷게 되신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리나라의 미술대학은 대부분 마찬가지이겠지만 저희 학교도 입학 시기부터 세분화 세분화 되어있지 않습니다. 사범대 미술교육과라고 해서 소신껏 선생님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구성원 중 다수는 작업을 위해서 들어옵니다. 결국은 이곳도 미대지요. 작업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입학했습니다. 작가에 대한 로망은 없었지만, 미술이라는 것을 계속 하면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면 어떻게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선생님 중 작업이 괜찮은 사람이 있는가, 교육과 작업의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해나갈 수 있을까, 훌륭한 선례가 있을까 등등 끊임없이 고민을 했습니다. 작가로만은 생존할 수 없다. ‘교사를 하던, 교수를 하던 어찌됐건 병행’ 이라는 분위기가 횡행했었죠.
이러한 와중에 어떻게 하면 평생 작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것-살아가기 위한 것-과 이상적인 것-작업을 위한-이 충돌하고 절충되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라던지 작업을 하는데 있어 어떻게 진정성을 가져야 하는지 같은 대립적인 것들이죠. 생활을 위한 합리적 이유들이 작업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작업이 변질되고 이 변질 때문에 작가로서의 자신에 오류가 일어납니다.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는데 있어서의 행동과 작업하는데 있어서의 진정성. 그것들을 생각하며 실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것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있지는 못합니다.


많은 고민들이 있으셨는데, 결국 전업 작가를 택하셨네요.

학생의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것이 터졌죠. 비디오 작업은 4학년 2학기때 시작했는데, 졸업작품전에 출품했던 비디오 작업들이 갑자기 이리저리 초청받기 시작했습니다. 속된말로 대박이 터졌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얄미웠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하지만 그만큼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주도로 무언가를 내놓고 해쳐나갔다 라기보다는 그 작업에 끌려다녔거든요. 대략 3년간 그것이 저를 끌고 다녔습니다.


거의 전적이라고 하다시피 비디오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비디오 작업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위에서 언급한대로 비디오라는 매체를 처음 시작한 것은 4학년 2학기입니다. 사진을 먼저 시작했었고, 비디오 작업과 사진을 혼합한 사진 설치 작업을 했었습니다. 사진과 비디오의 형식상의 중간단계였습니다. 특별히 사상 같은 것을 가지고 선택하고, 작업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제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작했다기 보다는 단지 하나의 형식 실험이었죠. 그 단계가 막 변하는 시기였고, 졸업 작품전 준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들이 미술계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그 후 형식과 주제에 관한 의식이 생기면서 계속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느끼고 계신 비디오의 매력, 혹은 비디오를 선택하게 된 비디오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솔직히 작가의 노동력에 의해 물질로 나온 결과물보다 비디오가 나을 것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비디오가 싫습니다. 제 영역에서 비디오는 단지 하나의 방법입니다. 어떤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해 내기 위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비디오 이외에는 그것을 표현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옵니다. 그래서 비디오가 필요했습니다. 물론 다른 비디오 아트의 분야나 정의가 있겠지만 제가 있는 영역에서는 그것이 가장 큽니다. 저에게 있어서의 노동력은 노동집약적이고 물리적인 궤적의, 단순히 예시하자면 그림을 그려 터치가 꼼꼼히 보이는 그런 노동력이라기 보다는, 작가가 작업을 생각하는 과정에서의, 생각의 노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것을 표현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 비디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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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비디오 작업만을 하고 계신데, 다른 미디어아트의 영역과 방법, 예컨대 컴퓨터 그래픽이나 모션 픽쳐motion pircures, 프로세싱processing 등과 같은 기술적 요소가 큰 분야쪽에 대한 생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비디오 이외의 작업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형식상 경계가 선명하지는 않겠지만 현재 비디오 작품을 하면서 고집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절대로 CG는 쓰지 말아야지. 아집같아 보일 정도인데 물론 디지털 프로그램 등의 신 기술분야가 틀리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작업할 수도 있지만 제가 작업할 때 기술에 기대어, 그 툴을 소화하고 지배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게 될까봐 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예컨대 사진의 경우, 사진에 심취하게 되면 장비욕심도 그렇지만 사진의 기술에 현혹되어 그 기술에 끌려다니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기술을 발견한 양, 사진 자체에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요행이 섞이게 되고, 내 능력 이외의 것들이 들어와 우연적인 상황에서 보기 좋고 멋지지만 보편적인 이미지가 등장하게 됩니다. 결국 관람객이 봤을 때 누구의 작업일까, 다른 작업은 어떨까 등의 기대나 추측을 낳지 못하고 그 의미가 한정되어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화려한 툴에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 제 방식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한 디지털 툴을 상당한 이해와 함께 굉장히 잘 다루시는 교수님이 계십니다. 어느 날 젊은 작가분의 포트폴리오를 봤는데 그 교수님의 작업과 느낌이 너무 비슷했는데 알고봤더니 교수님의 제자분이었고 같은 툴을 다루는,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좀 안타까웠습니다.

주체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 포트폴리오의 주인공인 학생의 경우도 결국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툴을 지배하지 못하고 결국 교수님의 방식을 차용하고 그 스타일과 툴에 지배를 당했고 주체성을 잃게 된 것이죠. 비록 자기 생각을 가지고 나오는 것들의 방식이 서툴고, 미숙하더라도 계속 하다보면 내공이 쌓여 결국은 자신만의 주체적 결과물이 나올 텐데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저 같은 경우 초기에 주목 많이 받은 상태입니다. 지금도 많은 부분들이 제 능력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걱정이 많았고 지금도 역시 많습니다. 자칫 내가 진짜 내 것인 양 여기지 않을까. 그래서 좀 더 저를 알고, 파고들고 고심하려 합니다. 앞으로 좀 후져지더라도 이해주세요.(웃음)


작품의 내용과 구조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아파트>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경우라면 손으로 아파트가 블록 쌓이듯 쌓여가는 걸 보며 재미있어 할 수도 있고, 음울한 어른들이라면 손을 보며 아파트를 쌓는 권력, 금력을 보면서 서울 아파트값을 생각하며 한숨지을 수도 있고, 혹은 아파트가 쌓여가는 궤적을 단지 따라가기만 하는 손을 자신의 모습과 대조하며 울분을 토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작업을 하시면서 의도하신 결과나 태도가 궁금합니다.

<아파트>라는 작업은 상하이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왜 저러나... 하는 안좋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는데 장난기가 발동했었죠. 심각한 상황이라도 그것을 장난스럽게 표현해 내면 심각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친구들끼리 얘기하고 말장난을 하다 보면, 은유법적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혼합되기도 하고, 딴 길로 세기도 해서 처음의 사실과는 다른 분위기의 사실이 됩니다. 그런 과정의 것을 작업에서 펼쳤습니다. 어떤 것을 보고 어떻게 흘러가느냐는 판단의 방법입니다. 그것이, 유머가 유머가 되건, 유머가 비관이 되건, 비관이 비관이 되건, 그것들이 혼합이 되건, 다시 전환이 되건 간에, 이 방법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혼란을 느끼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작업입니다. 생각의 과정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 이 수단들을 결과화한, 과정을 담고 있는 것. 많은 텍스트들과 의미들을 그 안에 함축해서 담을 수 있는 장치가 되는 것. 그것을 통해 작가와 관객의 중간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밌고, 유쾌하며, 또한 통쾌합니다. 관람객들이 그것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이게 이렇게 됐건, 저게 저렇게 됐건, 유쾌하건 아니건 간에 그것은 통쾌한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신이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파악했을 때, 다수에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을 판단해봐라 라고 전달하는 것이 제 작업입니다.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판단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통쾌함을 느낄 수 있기에 작품을 재미있게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시를 많이 보고 작가분들을 많이 만나면서 이 작가의 경우 특징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 혹은 분위기가 잘 떠오르는 경우가 있고, 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그런 것들이 잘 보이는데, 그것 때문에 더욱 기대하게 됩니다. 이 분이 다음에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줄까 등등. 이런 것들 말이죠.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가장 힘이 되는 부분입니다. 비디오 작품이 이미지의 질이 아무리 나쁘고, 조그맣고 어둡게라는 등의 전달방법의 환경이 나쁘더라도 그것을 떠나 내용만으로도 작가성이 전달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형의 노동력이 증명되는 상태. 그것이 어떻게 비디오에서 표현되게 할 것인지 고심하다보면 할 수 있는 영역이 나옵니다. 비디오를 통해 그 부분을 건드리면서 동시에 어떻게 비디오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을지. 이 점이 힘듭니다. 하지만 그 해결점을 찾아내는 것이 저에게 있어 가장 재미있고, 또한 의미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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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전시에 많이 초대를 받으셨는데 어떤 것들을 느끼셨나요? 개인적으로도 새롭고, 또한 커다란 경험이셨을 텐데요.

성공을 위해 동원된 것인지 필요에 의해 구성된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여기서 소모되지 말아야겠다 라는 것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초청되었던 대부분이 단체전이었는데, 모든 작품이 보이는 것은 아니니 그만큼 의미를 따지며, 전시의 주제에 따라, 그리고 전시가 열리는 나라나 위치에 따라 디스플레이를 바꾸고, 보내준 주제를 공부하면서 선택하고 접촉했습니다. 대부분 작가성 측면보다는 작품의 파장 효과 쪽으로 분류가 되어서 단체점 참여를 했는데, 우려할만한 것이라 생각해서 많이 생각하고 고심해서 참여했습니다. 똑같은 10번의 기회가 있었다면 해외 쪽에서는 좀 더 다양한 의미로 제 작업에 대해 접근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부족한 자신을 느꼈고요.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좋은 전시에 초대되었지만 작가 본인은 그만큼 안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나 행사가 있다면 어떤 것을 꼽으시나요. 비교를 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독일의 슈트트가르트에서 있었던 '작은 조각 트리엔날레'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나를 믿어줘”라는 주제의 전시였는데 미술의 표현방법 중 하나인 스케일을 다루는 전시였습니다. 사회적인 이슈라던지, 인간적 주제라던지, 정치적이라던지 하는 거창한 주제는 작가와 작품이 개별적으로 지니고 있고, 전시는 미술 자체에 대한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전시였는데 포괄하고 있는 내용이라던지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느낌이 참 풍부하고 배울만한 전시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것들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절대적으로 비교하다보면, 공부의 수준은 많이 비슷해졌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쪽이 조금 더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데뷔 이후, 참 많은 활동을 하시면서, 많은 전시에 참여하시면서 달려오셨습니다. 앞으로의 일정은 어떠신가요? 여전히 바쁘신지요.

이번 봄 역시 일정이 많습니다. 당장 2월만 해도 스페인 ARCO에 참여해야 하고, 3월엔 뉴질랜드, 4월엔 베를린에서 단체전 일정이 있습니다. 아직 개인전 일정은 없습니다. 단체전 발표가 워낙 많다보니 신작이 많아도 단체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무언가 여력도 지금은 없습니다. 결국 젊은 만큼 부딛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저 자신에 대해서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작가에게 진정성이 있다면 그것을 채울 만한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젠 스스로의 작업을 하실 여유도 가지셔야 할텐데, 인기가 많아서 너무 바쁘시네요.(웃음)
자신에 대한, 작업에 대한 틀을 깨고 스스로 만족하실 만큼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멋진 작업들 기대하겠습니다. 개인전 잡히시면 꼭 불러 주시고요.



인터뷰.이주연.앨리스온 에디터 | 허대찬.앨리스온 에디터
사진.정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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