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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백, 자유롭되 자존심을 가진 어른을 만나다._inter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5. 2. 08:25



이용백은 디지털 매체와 예술의 접목을 시도해 온 선구적인 디지털 미디어 아트 작가이다. 한국의 초기의 미디어 작가들이 싱글채널 비디오 영상과 비디오 설치 중심의 작품들을 선보였다면, 이용백은 첨단 기술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미디어 아트의 폭을 넓혀왔다. 초창기의 비디오 작가들이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알기 힘든 경우가 많고, 40대를 넘긴 미디어 아트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한국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어른을 만나기는 참 어렵다. 그래서인지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용백 작가의 작업과 최근 그의 활발한 행보가 더욱 반갑다. 한국 미디어 아트의 역사 속에서 그 여정을 함께해온 어른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들어보자.



앨리스온: 이용백 선생님은 한국 미디어 아트의 역사와 함께해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텐데요. 미디어 아트 작가로서 새로운 매체를 받아들이고, 실험을 하고, 또 거기에 예술가로서 남다른 무언가를 담아 예술작품이라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미디어 아트 작가로서 걸어온 여정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갖게 된 선생님만의 작업방식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용백: 제 경우, 툴을 먼저 공부한 다음 그것에 맞춰서 작업을 한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먼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것에 맞는 툴을 찾습니다. 툴 혹은 기술적인 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움을 청합니다. 저는 모르는 부분에 대해 잘 물어보고, 또 잘 수용하는 편입니다. 물론 테크니션들과의 협업도 진행했었죠. 그런데 기술전공자들은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이지만, 아이디어를 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고, 기술이 어떻게 응용이 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내 작업을 위한 기술이나 툴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디어 아트가 어려운 점은 이런 툴이나 기술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기술들을 조합해서 작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그것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또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이 요구됩니다. 작품은 적절한 시기에 생산이 되고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소비가 되어야 하는데, 일단 고장 때문에 물리적 소비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죠.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너무나 좋아하더라도 보존되고 팔릴 수 없으니까 작가는 경제적으로 계속 어려워지고, 또 기술적인 결함들을 해결하려다 보면 돈은 계속 들어가고……이런 식의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시에 기술적인 위험부담을 배재한 작업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배재라기 보다는 가능한 많이 빼는 편이죠. 왜냐하면 예술적인 실험은 계속하되, 그것을 전시에 곧장 낼 수가 없으니까요. 조금 어렸을 때는, 작품에서 조금 에러가 나더라도 어느 정도 넘어가주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죠. 특히 해외전시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외국까지 나가서 작품이 안되면 망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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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온: 그래서인지 미디어 아트 작품을 보면 과연 이것이 기술실험인 예술작품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기술만 있는 공허한 작품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용백: 특히 인터렉티브 작업 중에 그런 경우가 많죠. 한 마디로 인터렉티브는 있고, 인터렉션은 없는 것이죠. 내가 어떻게 했더니 제가 반응했더라……이건 인터렉션이 될 수 없죠. 인터렉티브 작업은 본래 소통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한 것인데, 즉 좀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인터렉티브한 기술들을 사용하는 것인데, 기술만 사용하고 인터렉션이 없다면 작품으로서 의미가 없겠죠. 그런데 이런 일이 왜 생기냐를 이야기하자면, 또 고장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작가들의 온 신경이 그 쪽으로 쏠리는 겁니다.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는데 조차도 작가들이 너무 많은 에너지가 그런 쪽에 소진되어 버리니까요. 그러다 보니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포기된다거나 뒤편으로 묻혀버린다고 할까요. 백남준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funny와 interesting는 구분해야 한다는 말씀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작품이 그저 funny 하게 끝나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모두 ‘재미’이지만, funny와 interesting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최근 미디어 아트 작업 중에 funny로 빠져버린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작가들이 저보다는 뭔가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어린 작가들의 또래였을 때에는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사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죠. 그래서인지 지금 어린 작가들처럼 그렇게 개인적이지 못했죠. 아마도 저희 세대가 대부분은 그랬을 것이고, 제 위 세대는 아마 더 그랬을 겁니다. 그에 비해 요즘 후배 작가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훨씬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대신 뭐가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젊은 세대들은 우리세대보다는 뭔가를 빨리 선택하고 쉽게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앨리스온: 말씀하신 대로 선생님께서는 분명 요즘 젊은 작가들과는 다른 점이 있으실 텐데요. 선생님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80년대 중반, 미술계 상황과 그 속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그런 차이들이 만들어지는 데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이용백: 그렇습니다. 미술 쪽에서는 한국 모더니즘, 혹은 한국 미니멀리즘과 민중미술이 충돌하던 시기였고,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 시대의 끝자락이었고, 여행자율화와 유학자율화가 시작된 시기였고, 한국이 아시아게임 같은 행사로 세계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기였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맞물려 있던 변혁기였죠. 그 중에서도 특히 80년대 중반에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유학 1세대가 한국에 돌아오면서, 그 때까지만 해도 국내의 상황이나 판단에 기초했던 모든 가치기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죠. 이게 아닌 데라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한 것이죠. 다른 측면에서는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것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작가들이 외국에 나가서 외국 작가들과 경쟁을 하면서 느끼게 된 새로운 것들이 있었죠. 그런데 이 당시에 학교에서는 그렇게 많은 것들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상 수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선생님들과 내 작업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공허함이란 것이 참 컸습니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내 작업이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었죠.
그때 제 친구 녀석 하나가 독일 문화원에서 요셉 보이스에 관한 책을 한 권 가져왔는데, 그때 접했던 요셉 보이스의 예술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유명하기는 하다는데, 온통 쓰래기 같은 것들이 도대체 왜 예술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아도 요셉보이스를 아는 선생님도 없었고요. 개인적인 관심도 그렇고, 좋아하는 작가들도 그렇고 유럽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스텔라나 폴록 같은 미국작가들에 대한 정보들이 그나마 많았고, 이론도 지극히 미국중심적인 것들만이 전해졌습니다. 그때 당시 이런 갈증을 해결해 준 것은 선배들이었습니다. 선배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테니 어느 정도 한계는 있었겠지만, 최소한 내가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방향감은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정화, 이불, 김영진, 권학범, 홍성민, 나카무라 마사코 등등.. 이런 선배들을 많이 쫓아다녔죠. 또 다른 선배들로는 오상길, 도병훈, 박인규, 후기미협사람들도 있었고요. 이 분들이 당시에 모더니즘과 민중미술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선배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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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온: 그럼 그런 말씀하신 당시 상황과 관심 때문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셨겠네요. 그렇다면 유학을 가셔서는 한국에 계실 때와는 또 다른 경험들을 하시게 되었을 것 같은데요?


이용백: 유학을 가서 처음에는 왠지 모를 콤플렉스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유럽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물론 부족한 것들 부분들도 있겠지만 인생경험으로 치면 내가 가진 것이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차별도 당해보고, 압박도 당해보았고, 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자의든 타이든 경험해 보았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너무나 안정적으로 살아온 동년배의 유럽 친구들이 작업을 하려면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짜내야 했지만, 저의 경우는 내가 가진 경험들을 중에서 끄집어낼 것들이 많았던 것이죠. 그런데 이런 인식은 독일이란 곳에 가서, 멀리에서부터 나를 바라보게 되면서 할 수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같습니다.


앨리스온: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80년대에서 90년대, 심지어 2000년대 초반에 미디어 아트 작업을 보여주셨던 작가들 가운데,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지 궁금할 정도로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작가가 참 드문 것 같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이용백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고 계신데, 이렇게 미디어 아트 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이용백: 아마 돈이 없었기 때문일 거에요.(웃음) 한 3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적으로 먹고 살기 참 힘들었죠. 그러니 작업할 돈도 없었죠. 그래서 작업을 드문드문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년배의 유럽작가들과 비교를 해보면, 그들이 어린 시절에 했던 작업들이 내 작품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단 그들은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난 그렇지 못했죠. 결과적으로는 작업량에 절대적인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들처럼 꾸준히 작업을 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으니까 돈을 모아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돈을 모으는 동안 생각이 멈춰있는 것은 아니고, 그러다 보니 제 작품들을 보면 연속적이지 못하고 중각생략이나 단절이 생기게 된 것이죠. 아이디어는 앞서가고 돈은 없고, 1 다음에 2라는 작업을 해야 하는 데 이미 생각은 5, 6에 가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작업으로 완성되지 못한 에스키스까지 모두 모아서 전시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 부분이 지금에 와서 보면 아쉽고 답답한 부분이죠.
작가들이 작업을 지속할 수 없는 경제적인 문제만큼이나 힘든 것은 호응도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소 작업(Artificial Emotion)은 참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고 그 만큼 기대도 컸던 작품이었어요. 작가들은 작업을 하다 보면 이 작품이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인정을 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감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작업의 경우는 그 감이 완전히 맞지 않은 경우죠. 한 마디로 처참했습니다. 그 작업에서 호흡이라는 인터페이스는 썼는데, 당시만 해도 미술은 완전히 시각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앞선다는 유럽에서도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내 작업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호응이 전혀 없더라고요. 물리적인 소비는 안되더라도 정신적인 소비라도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잘했다라는 소리는 고사하고 너 참 애썼다라는 반응도 없었습니다. 창피한 얘기지만 우리나라 모 미술잡지 사진기자가 10년간 가장 많이 찾아간 작가 작업실이 제 작업실인데, 글은 작년에 했던 <엔젤솔저> 작품으로 딱 한 번 실렸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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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온: 그런데 이용백 선생님 작품이 그렇게 관심이나 인식을 받지 못한 것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선생님 작품이 늘 한 발은 앞서 나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용백: 그런 부분도 있었을 수 있죠. 10년 전쯤에 독일에서 돌아와서 빌비올라나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수업시간에 보여주면, 학생들은 한 마디로 황당해 했죠. 하지만 그때 이미 그 작가들은 세계 비엔날레에서 주목을 받고 있던 작가들이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사람들이나 너희들이 10년 정도 후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이 작가들을 보게 될 거라고 한 적이 있는데, 결국 그만큼 우리는 10년 뒤처지게 된 것이죠. 사람들의 호응이나 인식은 순식간에 변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앨리스온: 선생님께서 작업을 통해 다루었던 인터페이스의 문제나, 촉각성, 사운드 같은 것들이 최근에 들어서야 미디어 아트 쪽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는 선생님 작업에 대한 호응이 전처럼 냉담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앞으로는 또 어떤 것들을 실험하고 채워갈 생각이신가요?


이용백: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작업들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띄엄띄엄 만들어졌었는데, 앞으로 그 사이를 채워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후에 도록을 만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연도별로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테마 별로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둑을 둘 때 보면 포석을 놓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는 집이 어떻게 지어질지 아직 보이지 않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획이 다 짜여 있는 것이죠. 이제 포석과 포석 사이를 연결해 가야죠.


앨리스온: 작년에 개인전을 하셨고, <엔젤솔저>는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사람들이 선생님 작품에 호응을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요? (웃음)


이용백: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효자 노릇을 한 작품인 것 같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쉬운 작품이었어요. 고민 많이 안하고 나온 작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한가지 다른 전략을 썼죠. 하나의 아이디어를 여러 가지 매체로 풀고, 그것으로 개인전을 열자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생각은 해왔었고, 에스키스 과정은 늘 그랬어요. 아이디어가 하나 있으면 그것을 비디오로 풀고, 사진으로 풀고, 인터렉티브로 플고, 퍼포먼스로 풀고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역시 문제는 돈이죠. 그 에스키스들 중에서 지갑을 열어서 내가 가진 돈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을 선택해서 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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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온: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하나의 컨셉이나 아이디어를 여러 가지 매체로 풀어내겠다는 계획이 온전히 구현되고, 또 그것을 전시로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은 엔젤솔저 작품이 처음이었겠네요. 그래서 이 작품이 반응이 좋았나 봅니다.


이용백: 사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외국에서 훨씬 반응이 좋았아요. <엔젤솔저>는 10여 개국에서 전시를 했는데, 재미있는 것이 외국에 나가면 의사소통은 잘 안 될 텐데, 한국에서보다 커뮤니케이션이 더 잘 되더라고요. <엔젤솔저>를 생각하고 진행할 당시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소마미술관에서 있었던 DMZ전이 그것입니다. 당시에 전시를 하면서 느낀 것이, 우리는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해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게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중에 6.25를 경험한 선생님들, 그 경험이 워낙 강해서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 작가로서 가졌던 표현의 수준을 포기해버리고 너무너무 유치해져 버리는 것을 보았어요. 예를 들면, 캔버스 위에 대포를 그대로 담아버리는 식으로요. 그 선생님들의 작업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을 가졌을 때, 작가가 소화하고 끌어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때 이 작업을 하고 있었고, 나는 DMZ라는 것을 이데올로기나 물리적 경계선이 아니라 다른 경계의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했습니다. 아마 제가 6.25를 직접 경험한 세대였다면 또 다른 작업이 나왔을지도 모르죠.


앨리스온: <엔젤솔저>가 거의 전세계를 순회하며 전시를 가진 것처럼, 최근에는 해외전시를 주로 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런 특별한 계기나 이규가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용백: 한 3년 전부터 외국 전시를 많이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전시를 안 하게 되는 이유는, 소 작업 때도 그랬고, 그 이후에 몇 번 더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내 작품은 정신적으로도 소비가 안 되는구나 라는 회의가 들었어요. 관객들이나 미술계의 인식이나 호응의 문제겠죠.  재미있는 것이, 외국에서 전시를 하면 그 전시를 계기로 꼭 그만한 정도의 다른 전시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반응도 재미있고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그러니 계속적으로 침체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외국에서 전시를 주로 하기 시작한 것은 선배들을 보면서 그렇게 하게 된 것도 큽니다. 선배들 연배가 되면, 갈 길은 딱 두 가지로 정해져 있더라고요. 외국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학교에 교수로 남는 것이었어요. 전시 기회는 점점 없어지고, 심사위원으로나 초대되고…… 진정한 제도권이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전시할 공간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요. 그렇게 묻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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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온: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젊은 작가들을 선호하고 몇몇 작가들에게만 전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문제겠죠.


이용백: 그렇습니다. 층이 다양해져야 하고, 원로작가들이 전시할 기회도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미디어를 떠나서 원로작가들을 만나보면, 그 분들의 작품은 이미 평가의 대상이 아닌 것 같아요. 작품에서 선생님들의 삶의 보고 싶은 것이죠. 이 작품은 좋아 이 작품은 나빠…이렇게 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원로작가들에게서는 바로 그 작가의 세계가 전해지는 전시가 보고 싶습니다. 지금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만 계속해서 주목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공백기가 생기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 작가들의 수준은 아시아 쪽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봐요. 물론 상업적으로는 아니지만, 상업적인 것은 작품의 수준과는 무관하니까요. 워낙 정치적인 것이 많이 개입되고 경제력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경우도 많죠. 이제야 말로 뭔가 시작을 할 때인데, 편협하게 한 층만 조명되면 언젠가는 또 큰 공백이 생길 것입니다. 또한 매체 이전에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에 컴퓨터가 있었을 리 만무하고 붓 하나에 종이 위에 그린 것에서도 뭔가는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매체에 편향되게 그 쪽만 끌고 나가서도 안되겠죠.


앨리스온: 앞에서 작업을 해오시면서 겪으셨던 여려가지 어려운 점들도 말씀해 주셨는데, 최근에 아라리오 갤러리 전속작가 되시면서 여러 가지 변화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도 관심 있게 바라볼 것 같고요. 좋은 점도 분명 있을 것이고, 다소 부담스러운 점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용백: 이전에는 작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했어요. 물론 도와주는 후배들이 있긴 했지만, 스스로 홍보도 해야 하고, 전시도 만들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이제 그런 것들에서는 어느 정도 손을 때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죠. 그리고 혼자서 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꿈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시작점에는 근접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정당하게, 비굴하지 않게, 아직은 유럽에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 한번 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은 들어요. 작가가 꿈이 뭐가 있겠어요. 정당하게 내 작품이 표현된 만큼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 좋은 거죠. 그렇게 될 수 있는 지점에 상당히 가깝게 갔다는 점에서는 기분이 좋습니다.


앨리스온: 미디어 아트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의 격동기를 경험하고 현재에는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데요, 끝으로 우리 미술계를 보면서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있다면, 그리고 후배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이용백: 최근에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오히려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아트페어에서 누구 작품이 제일 먼저 팔렸다느니, 얼마에 팔렸다느니 야단법석들인데, 겨우 그런 것들에 경도되어서는 안되겠죠. 작품이 제대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집에 소품 정도로 팔리는 것인지, 즉 어떻게 콜렉션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앞길이 뻔히 보이는 작가는 참 재미없습니다. 작년에 이거 하고, 올해도 이거 하고, 내년에도 이거 할 거라고 뻔히 보이는 작가는 매력이 없다고 봐요. 또 요즘에는 또 공공미술이다 아동교육이다 해서 그쪽으로만 다들 몰리고 있는데, 그렇게 편협하게 되어서는 안되겠죠. 문득 음악을 생각해 봤어요. DVD를 많이 사는 편은 아닌데 최근에 핑크 플로이드 공연실황을 하나 사서 봤는데 정말 감동적이더라고요. 대중음악으로 치면, 신중현, 조용필, 김수철 같은 뮤지션들을 보면, 이 분들은 예술에 자기 세계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분들이 예술가 같고, 이쪽은 이벤트 하는 사람들 같아요. 세계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젊은 작가들에게는 생각은 열고, 경험의 폭도 열되 자존심은 갖는 작가들이 되어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것은, 아직 아이들은 방식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가고, 예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고요. 물론 저도 예술이 뭔지 잘 모르지만, 제가 아이들에 비해서 조금 나은 것 이 있다면, 내가 마음속으로 허락하는 예술의 범주가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넓다는 것입니다. 아주 협소한 예술개념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예술에 접근하다 보면 그만큼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이죠. 먼저 예술의 폭을 넓히고, 확장시켜놓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도 막무가내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술사를 보고 현대미술 작가들을 보라는 것이죠. 그렇게 폭을 예술의 폭을 넓혀놓지 않으면, 그것을 보더라도 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 사람들의 작품을 인식할 수도 없죠. 협소한 예술개념을 가지고 애써봐야 그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죠.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하려면, 보편적 가치로 통용되는 예술을 알고, 자기만의 것을 주장해야 하는 것이죠.



앨리스온:  선생님에게서 작업과 예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동안 만나기 힘들었던 어른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갈 길을 조금 앞서 걸어간 어른이면서도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고 에너지가 가득한 분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 이용백 선생님의 세계가 담긴 작품들 계속해서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이주연.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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