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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늦은 '형사(2005)'이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30. 21:21


이명세 감독의 'M'이 개봉되었지만 흥행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혹평을 하는 관객들의 대부분의 의견은 '난해하다', '스토리가 진부하다', '감독의 자의식이 너무 팽배해 과욕의 결과물을 내놓았다'..등등으로 정리될 수 있겠네요.

'개그맨'이라는 데뷔작 이후, 이명세 감독은 한국 최고의 '스타일 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닐만큼 매우 독창적인 영화들을 선보이곤 했지요. 하지만 요즘처럼 관객과의 소통이 어렵게 된건 아마도 형사(2005)라는 작품 이후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 전에도 이명세감독이 대중 친화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였지요. '나의사랑 나의 신부'나 '인정사정 볼것없다'를 제외한 작품들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으니 말이지요. 작품성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인정사정 볼것없다'라는 스매쉬 히트작이후, 이명세 감독이 오래 간만에 들고나온 액션물인 '형사'는 제작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죠. TV 드라마로 큰 히트를 한 방학기 화백의 '다모'를 원작으로 하고, 드라마의 히로인인 하지원이 그대로 등장하며, 최고의 청춘 스타인 강동원이 출연 한다는것. 그것만으로도 큰 흥행을 바라보게 하는 기대작이었습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관객들은 아연질색 할 수 밖에 없었죠. 스토리라인은 곁가지 일뿐 시종일관 질주하는 화면은 보는이의 몰입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고, 어색한 사투리 연기와 사극속 깔리는 재즈와 클래식이라니! 그야말로 '괴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형사'는 정말로 '못 만든 영화'일까요? 
저는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기존의 영화를 볼때의 관습적인 감상법을 버리고, 영상 자체가 전달하는 '영상문법'에 기대어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방법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말그대로 스토리는(정확히 이야기 하면 대사로 이루어지는 극적 흐름) 무시하고 사고의 중심을 영상 그 자체에 집중한채 감상해 보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몇 가지 장면들을 보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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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과 하지원이 처음으로 대화(여기서 대화는 언어 중심의 대화가 아니라 영상, 즉 장면으로 이해되는 심리 충돌입니다)하는 이 장면은 으슥한 골목길을 배경으로 합니다.

사람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균형을 지향합니다. 즉, 불안정한 구도의 화면을 볼때 시각적으로 불안정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위의 장면을 다시 도해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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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의 소실점이 중심에서 우측으로 쏠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산한 음악이나, 긴장된 주인공들의 눈빛 말고도 화면내의 불안정한 구도를 제시함으로 감독은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불편'하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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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면입니다. 하지원이 마치 춤시위 같은 동작으로 오른쪽 암흑 속에서 카메라의 중앙으로 들어옵니다. 이 장면을 도해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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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소실점이  A-B로 옮겨 짐을 알 수있습니다. 춤추듯 A에서 B로 옮겨가는 하지원을 따라 관객들은 긴장의 순간과 감정의 이완을 대사나 음악이 아닌 화면의 구도 변화로 느끼게 되는겁니다. 다시말해 화면의 중심에 가까운 B지점으로 움직이는 피사체를 바로보며 무의식속에서 감정의 안정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간략한 예를 들어 보았지만, 이러한 '구도로서의 감정변화'는 영화 전반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추격신이나 결투신, 간단한 대화 신에서도 이러한 법칙은 계속 지켜지고 있지요. 또한, 음악과 대사, 그리고 회상 신들이 전혀 '전형적 이지 않게' 쓰임으로 독특한 리듬의 장면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바로 강동원과 하지원의 만남에서 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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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두 주인공을 정신없이 교차해 가며 진행되는 이 장면은 두 사람의 속마음과 실제 보여지는 모습들이 혼재 되어 있음에도 관객으로 하여금 두 사람의 마음을 '느끼게'합니다. 화면의 전개로 '이해'시키는 것이 아닌, 눈과 귀를 이용해 두 사람의 심리상태를 받아 들이게 하는 거죠. 주막으로 오는 하지원의 그림자로 시작해 주막을 떠나는 강동원의 그림자로 마무리되는 이 장면을 완벽한 두 사람의 심리 상태를 독특한 영상문법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 입니다.



형사(2005) 중에서.

저는 아직 이명세 감독의 'M'을 보지는 못했지만, 또 다시 그의 영상 실험이 어떤 형태로 표현되어 졌을지 기대하며 극장을 찾아봐야 겠습니다. 조금 영화가 낯설더라도, 이런 다양한 시도가 우리의 영상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게 아닐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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