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Artist

한승구, 수많은 얼굴들을 통한 자아 탐색_interview

aliceon 2008. 6. 20. 16:58



Aliceon. 반갑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지금 미술 내부에서의 미디어 흐름이 그렇듯, 대중들에게 노출이 많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작가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대 조소과에서 조각으로 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계속 하고 싶었던 것은 가상 공간에 대해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조각만을 통해서는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 미디어 쪽에 관심을 두었고, 영상수업 및 공대쪽의 테크놀로지 관련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와 관련된 작업을 계속 하기 위한 좋은 장소를 찾다가 서강대의 대학원 과정을 선택하였고 그것이 이어져 지금까지 계속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liceon. 조소과를 전공하시면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미디어를 택해 진행을 하고 계십니다. 미디어의 속성 자체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저희는 미디어 아트라는 틀 아래에서 미디어는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미디어를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처음 시작기와 지금이 약간 다릅니다. 처음에는 좀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미디어에 접근했습니다. 미디어라는 것을 통해 네트워크 속, 가상공간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조금 달라져 미디어라서 미디어를 택하고 작업하는 것이 아닌, 내 안에 담긴 것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미디어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바뀌면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Aliceon. 미디어를 사용하시면서 미디어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진 것일 텐데요, 기술적 제약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그 양상이 조금 바뀌지 않을까요?

미디어가 가진 속성 자체가 기존의 매체들보다 자유롭지만, 결국 권력이나 현실적인 문제 하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자유에 대한 한계를 조금씩 느끼고 있고요.


Aliceon. 가상 공간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것과 작업과의 연결점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어렸을 때 부터 비현실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혼자 낙서하거나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어떤 하나에 몰입해 다른 세계에 빠지고, 관심 가지는 것을 많이 했습니다. 그 것에 대해 무언가 표현해 보고 싶었고요. 가상이라는 비 현실에 빠져 있었기에 현실의 나와 가상 공간에서의 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들, 현실이 불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잘 몰랐고, 그래서 자신의 자아상을 찾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현대의 인터넷 환경이라는 가상 공간 환경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인터넷 상에서 육체가 아닌 정신만이 존재하고 부유하는,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고 체험하고 있는 그런 세상이 지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liceon. 그러한 생각들을 미디어라는 방법을 택해 표현하는 것을 진행하고 계신데, 어떠한 방법과 형식을 통해 형상화하고 계신지요.

현실에서의 내가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표출점이 얼굴이고요. 얼굴 때문에 현실의, 저를 둘러싼 모든 시스템이 형성됩니다. 얼굴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고, 다른 존재들이 나라는 존재를 판단하게 됩니다. 각자의 개인에 대해 판단하는 매개체. 그 얼굴을 제거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가상이라는 공간을 가지고 있어도 현실은 존재하기에 얼굴로 대표되는 제 자신은 존재합니다. 제거할 수 없는 것 자체를 얼굴이라는 조각으로 만들어 그것을 표현하고, 여러 이미지 데이터를 모아 그 위에 투영함으로써 그 얼굴을 계속 바꾸고 새로 입히는 작업을 통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가변적인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Node & Ancient Rituals type _ mixed media_artspace Hue_2006


Aliceon. 얼굴은 사회 내에서 나라는 존재를 고정시키는 동시에 정체성 발현의 가장 강력한 매체입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모습도, 성격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그러한 가변성이 핵심일텐데요. 그 가변성에 의해 본성마저도 조작될 수 있는 점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노드 방식node system*을 택한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노드 방식은 웹이나 마야 같은 그래픽 프로그램에서 쓰입니다. 각자 하나의 속성을 가진 여러 집합체가 모여 연결되어 또 다른 속성의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의 속성을 주고 이것을 조합하고 더하고 빼고 섞고 교체시켜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계속 변화하는, 접착되어 있지 않은 객체를 만들어 내고 싶었습니다. 실제 작업을 통해 표현해 보았는데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터치 스크린을 통해 각 속성값을 관람자가 배열할 수 있고, 클릭 등의 방법을 통해 그들이 합쳐져 변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즉 24명의 사람 얼굴이 선택되고 그것이 서로 섞이는 작업이었습니다.

Buddha version 1_mixed media_heriy_2007

Aliceon. 작업에 대한 이야기로 계속 진행해 보겠습니다. 불교 도상을 이용한 작업도 눈에 띕니다.

부처님의 얼굴을 인터페이스로 사용한 작업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는 석굴암의 부처 도상입니다. 특정한 의미를 지닌 특정 도상이 아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반적 의미의 도상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이 경외시하는 존재로서의 부처 얼굴인데 그 존재와의 접촉을 통해 초월적 존재와의 합일을 유도하고 싶었습니다. 현실과 다른 제의로서의 영역을 경험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그러한 과정을요.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고 접촉을 금기시되는 그 존재를 만짐으로서 그 순간 새로운 얼굴이 투사되게 됩니다.
고대인들이 동물을 경외시했으며 그러한 경외의 대상을 가면으로 만들어 씀으로서 그것과 합일되고자 했던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Aliceon.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가면을 씀으로써 합일하고 또 그렇게 변신할 수 있는 것. 이러한 과정은 인터넷에 접속해 아바트를 꾸미고 만드는 행위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자신과 똑같은 또는 자신과 전혀 다른 캐릭터의 아바타를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이 그것인데요, 지금 벌어지는 그러한 상황, 표류하는 자아와 변화하는 자아, 그렇지만 분명 존재하는 현실에서의 묵직한 나의 존재에 집중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Aliceon. 작품들 속에서 다양하게 보여지고 있는 얼굴들의 수집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일상성을 위해 주로 주변 사람들을 통해 수집합니다. 인터넷에서 공개되어 있는 이미지를 가져오기도 하고요. 그렇게 수집된 얼굴은 나이, 국적, 성별에 관계 없이 로테이션됩니다. 이 얼굴들은 캐스팅 된 제 얼굴 위에 입혀지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익명성은 분명 강조되고 있습니다. 특정한 하나의 얼굴이 제거되고 끊임없이 투입되는 얼굴들에 의해 익명화되는 모습은 현실을 말합니다. 익명화되는 순간 자기 자신의 내면을 좀 더 진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바라본 얼굴과 비추어진 얼굴. 비추어진 얼굴 속에서도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익명화된 자신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Node & Ancient Rituals type _ mixed media_2006


Aliceon. 결국 핵심중 하나는 자아에 대한 탐구일텐데요, 그렇다면 자아라는 것 자체가 바뀔 수 있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은 나라는 특정한 자아가 존재한다고 보시는지요. 혹은 롤플레잉처럼 계속 바뀌는 가변적인 존재라고 보시는지요.

저는 저 자신이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속에서 나는 만들어집니다. 말씀하신 롤플레잉처럼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맞춰진 모습들이 존재하며 그 역할을 행하고 있습니다. 집단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통과 의례처럼 그 모습에 맞춰 바뀌고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 모습들은 분열체처럼 다양합니다. 그런 와중에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게 되는 거지요.


Aliceon. 물리적인 오브제를 만들어 내어 그 위에 비 물질적인 빛을 투사하여 하나의 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만약 그것이 물리적 오브제가 없는 스크린 상에 투사한다고 했을 때 그 의미의 차이는 어떠한지요.

그렇게 작업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 작업에서는 조각을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조각이 등장할 때는 근본적으로 변할 수 없는 나 라는 것을 상정한 상태입니다. 조각이 등장하지 않을 때는 처음과 끝이 없는, 정신만이 부유하는 자아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변할 수 없는 자아와 변하는 자아에 대한 표현의 차이입니다.


Aliceon. 그러면 미디어라고 대표되는 아날로그 오브제와 디지털 미디어를 결합시켜 본질적인 면과 변화할 수 있는 유연적 면을 합쳤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지점에서 본질적이고 변화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최근 작업이 자연의 4원소 관련 작업입니다. 미디어가 발전하지 않았을 때 인간은 몸을 통해 신과 소통했습니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몸의 기능은 쇠퇴했고 미디어가 그것을 대신해 충족시키며 기능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서 자연의 4원소가 인간의 감각적,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소라 생각했고 그것을 끌어들여 미디어와 접목시켜 예전에 있었던 직관적인 감각을 표현하려 했다. 미디어는 인간의 몸을 자극합니다. 과거에 4원소인 물, 불, 흙, 바람이 인간의 감각적 기관을 자극하는 수단이었다면 현재는 디지털 미디어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4가지 요소를 통해 현실에선 느낄 수 없는 다른 영역을 경험케 하고 디지털 미디어와 함께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자아의 껍질을 제거하고, 숨겨져 있던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으로 4원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교 60_mixed media_gallery sangsang madang_2008

Aliceon. 작가님의 작업은 그 역할이 주어지고 역할 놀이를 소화해가며 그것이 모여 자기가 되어가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통해 그러한 성찰을 이루게 하는 계기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Aliceon.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당장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가 하나 기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계획되어 있는 4원소 시리즈 등의 작업을 계속 진행하려 합니다.


Aliceon. 여러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업 기대하겠습니다.


인터뷰 진행. (유원준, 허대찬)


 

about node system: 데이터 통신망에서 데이터를 전송하는 통로에 접속되는 하나 이상의 단위. 주로 통신망의 분기점이나 단말기의 접속점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