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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 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Secret Garden Party_London_world report

yoo8965 2008. 9. 6. 00:38


 

비밀의 화원 파티(Secret Garden Party)는 어른들을 위한 놀이동산,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허락하는 초현실적으로 건설되어진 작은 유토피아이다. 이 유토피아에 오면 모두가 친구가 되고 모두가 자유로우며 서로의 이름은 묻되 내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초현실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허우적 되고 있는 나의 모습을 현실이라는 이름아래 용서하고 묵인하는 것처럼 지루한 일은 없다. 바로 이럴때 한쪽 벽면 뒤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를 알아채기에 충분한 호기심이과 감각이 나에게 있다면 나를 원기와 생동력으로 가득채워줄 기회를 획득한 것이리라. 내가 건설해온 세상의 경계선 너머에 있을법한 무언가에 대한 이상을 가진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 바로 이 비밀의 화원 파티이다. 비록 이것이 시작과 끝을 가진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마치 오즈의 마법사의 오버 더 레인보우 처럼, 마른 영혼을 축이기 위한 여행 과정 중, 도로시와 일행은 신비롭고 이상한 격리되어온 또 다른 환경에 진입한다. 그리고 그 환경이 주는 영향으로 인해 그들은 또 다른 자아를 찾는다. 일단 이 화원에 진입하면 우리는 죽음과 고통의 부재를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의 감성적 천성과 육체적 조건이 변화한다. 우리는 이 변화가 필요 하기에 변화하도록 자신을 내주고 그런 변화된 나를 보호해줄 사회적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건설한다. 캠핑 사이트에 텐트를 짓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화원안에 임시적으로 마련된 테이크 아웃 식당에서 아침겸 점심 메뉴를 고른다. 음식이 담긴 접시를 손에 들고 아무곳에나 앉으면 2초 후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다. 서로 생각을 교환하고 또다른 방식의 어쩌면 평행선상에서 달려가는 타인의 인생사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 새로운 사람과 함께 비밀의 화원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화려하고 달콤한 해프닝(happening)에 참여 한다.  진흙 레슬링, 물담배카페, 고민상담소, 플라네타륨(planetarium) 등등. 필자가 가장 많이 어슬렁 거렸던 곳은 사이언스 캠프(science camp), 이 캠프는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학습한 전문가들과 학생들이 강의 혹은 세미나 형식으로 그들의 과학지식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이루어 지고 있는데 과학과 사회의 관계, 원자론과 super string theory, 외계존재에 대한 가능성등 검증된 이론들과 검증되기 이전의 호기심으로 이루어진 이론들을 재미있게 풀어내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주최자는 ‘come with questions….leave in tears’ (질문과 함께 와서 눈물 속에 떠나라) 라고도 했다. 해가 질녘 서늘함이 인간 키만한 높이에 내려앉으면 한손에 맥주한잔 다른 한손에는 담배 한개비 들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DJ 혹은 라이브 음악을 듣는다. 반은 음악에 취해 나머지 반은 술에 취해 심장이 터질 듯이 춤을 춘다. 하늘이 해를 완전히 밀어내고나면 밤 냄새를 맡으며 들판에 드러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고 나와 함께 하루를 보내준 낯설은 이에게 뜬금없는 정을 느낀다. 이렇게 사흘을 보내고 나면 결국 화원안의 모두가 최소한 눈인사 정도 주고 받을 수 있는 이웃이 된다.




내가 발견한 가장 눈에 띄는 감성적 천성의 변화는 사람들이 원시적으로 혹은 어린아이처럼 변화하는 것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 치마가 바람에 날려 속옷이 보인다고 해도 부끄러워 할 필요 없고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숨기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요구한다.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기를 희망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방금전에 알았던 것을 돌아서면 잊어 버려도 이 화원에서는 상관없다.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것을 저멀리 놓아버리면 인간의 천성은 변화한다.

비밀의 화원은 관람자들 뿐 아니라 예술 작품에 새로운 감각의 환경을 제공한다. 이 환경은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하고 예술 작품을 지루한 흰색 벽과 인위적인 조명빛으로 부터 구출한다. 결국 작품은 심미적 매체라는 기능을 넘어서고 갤러리가 주는 구속으로부터 자유가 되어 더이상 숨죽여 있지않고 신나게 용감해진다.


시크릿 가든 파티에서는 전통있는 유화나 위엄있는 조각상 조차도 순수하고 꾸밈없는 어린아이 처럼 변화된다. 이는 비밀의 화원이 사람들과 작품으로 하여금 유치한 거추장스러움을 부수고 관람자의 근본에 친밀하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품의 값어치는 갤러리에서 처럼 가격으로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강하게 그 에너지를 사람들과 교환하느냐로 측정된다. 이는 1968년 5월 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시츄에이셔니스트(Situationist)들의 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데, 이들은 예술이 부루주아들만의 부의 상징으로써 머물것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삶을 대변하는 예술로 승화되야 함을 사회가 일깨우기를 바랐다. 즉 시크릿 가든 파티는 이 곳에 모인 사람들과 예술작품들 모두가 그들만의 작은 혁명을 불러들이고 그 혁명적 언어로 서로 소통하는 모임인 것이다.


 



이 비밀의 화원을 머릿속에 그려봤을 때 내가 나의 작품으로부터 강하게 끌어내고자 했던 점은 첫째, 시각적인 충격 (이상하고 기묘해 집근처에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는 볼 수 없을 듯한). 둘째, 사람들과의 교류 (당신들이 익숙하지 않은 이 것을 체험하도록)였다. 이 두 양상은 서로 강하게 밀접된 귀결의 관계에 있는데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도 관람자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매채를 신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체험하기를 희망한다. 이 작품의 시각적인 면부터 묘사하자면, 일단 자연의 이치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색깔과 형태를 구안하도록 노력했는데, 두터운 밑면과 날렵한 윗면으로의 안정적 형태가 자연스러운 형태라면 이 작품의 형태는 그와 반대되는 불안정의 인위적이고 초현실적인 외계생명 존재의 태생을 설명한다. 색상 또한 도드라지는 화려함을 배색과 형광의 색상배치로 연출하였다.

 

어쩌면 우리는 함정에 빠질 때 깊게 연관되어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알려고 하지 않아서 빠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겉의 화려한 모습만을 보고 내면의 감정을 필요로 하는 사랑이라는 것에 빠진다면 그것이 바로 마지막에 상처를 입고도 어떠한 교훈조차 남기지 않는 반복 타입의 함정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때 기억해야할 또 영원히 마음속에 보호해야할 첫사랑과 같다. 예술에 있어서 심미적인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철학이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움에 생동감을 불어일으키려면 작품의 영혼 즉 내면의 아름다움 또한 필연적이다. 예술가들은 시각매체를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라 그 시각매체를 통해 감상하는 이를 자극해 감성적충격을 창조하는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주의: 아름다움 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주관적인 의미로 풀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이제 이 작품의 시각적인 면을 읽어 내려갔다면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강한 관계형성이 일어날 차례이다.




사람들은 공간과 강하게 교류한다. 사람이 무언가에 둘러쌓여 있음을 인지할때 그들은 그 공간을 또 다른 현실세계로 인식한다. 그래서 안이라는 것과 밖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 또한 작품의 밖을 먼저 보고 안을 경험하는 것과 안을 먼저 경험하고 밖을 나중에 보는 것은 작품 전체의 인상을 통채로 바꿔버리는 서로 너무나 다른 작품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이 작품의 밖으로 부터 받은 화려하고 강한 인상을 끌어 안고 작품의 안에 들어서면 그곳에 상반된 차원이 존재한다. 일차적으로 빛이 40퍼센트 정도 차단되고 바깥 세상과의 시각적 전달도 차단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나를 둘러싼 벽면, 윗층에 배치된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사다리 그리고 벽면에 붙어 있는 수백명의 울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 이 사진속의 눈물들은 우리들의 감성적인 면, 외로움, 비탄, 우울함을 직설적으로 그리고 유아적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출발된 일종의 미술치료인데 살다가 우러나오는 그 우울함을 혼자서 감당하기 힘에 부칠때면 잡지나 신문에서 사람 얼굴사진을 오려 그 위에 눈물을 그리고는 그 얼굴들을 한데 모은후 친구삼아 그들에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다른이에게 나처럼 슬퍼할 것을 강요하는 나의 슬픔에 대한 솔직한 반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럼 누군가 옆에서 나를 위해 울어 준다는 안도감에 덜 외롭기도하고 나의 약한 모습을 실존하는 다른 이에게 구구절절 풀어놓아 연민을 살 필요도 없다. 내가 느꼈던 이 경험을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이제 본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슬픔을 어루만져 주는 시간이 당신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공간을 또 그런 당신이 당신의 슬픔을 인정해도 안전한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이런 내면과의 소통 후에는 또 다시 밖을 바라볼 차례이다. 사다리를 타고 연결된 상층의 공간으로 이동하면 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2m 높이에 위치에 플랏폼과 오픈 윈도우가 있다. 한없이 나태하게 더 한가하게 플랏폼에 드러누워 이 작품안에서 경험한 내면과 외면의 극단적 대립 그리고 그 안에 당신의 역할을 즐기자.

 

결국 이 작품은 두 개의 아이덴티티를 가진다. 이는 이 작품의 두 제목에서 읽을 수 있다. <Diamond>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처럼 작품의 화려한 외형과 그 얇은 표면의 피상적인 천박함을 설명해주고 <‘come in’ she said ‘I will give you shelter from the storm’> <’들어와, 내가 너에게 태풍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줄께라고 그녀가 말했다> 외면에 갇혀있지 않고 내면으로 다가와 자유로워 질것을 설득하고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특별한 그들에게 안식처(shelter)를 제공하는 작품의 기능과 성격을 설명한다. 모든 작품은 언제나 그 만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 작품을 만든 것은 작가이지만 그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작품 자체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의 형태를 빗고 그 흙에 숨을 불어넣어 인간이 그들 고유의 생명을 주관할 수 있게 되었듯이 작가는 작품안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그 작품의 영혼과 관객의 교류가 직접적이고 자유롭게 이루어 질때 작가 또한 비로소 작가의 인격을 더욱 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르시스의 연못에 비친 반영처럼 일주일 간의 짧은 꿈은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잡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럽게 입안에 쓴맛이 돌았다. 비밀의 화원 파티, 그 유토피아가 내가 기존 현실에서 가지고 있던 습관으로 인해 얼룩저버린 것을 알아버린 후의 공허함은 후회의 쓴맛을 남겼고 결국 유토피아는 우리가 보지 않으려 노력했던 불완전의 모습을 드러내 버렸다. 현실과의 충돌. 또한 내가 무엇가를 찾기위해 떠난 여정과 현실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떠난 여정은 의미부터가 처참히 다르다. 마치 이비자(Ibiza)에 휴가를 가는 것과 페루(Peru)에 역사체험을 하러 가는 것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나의 초심이 무엇인지 시작점에 섯을 때는 혼란스럽기만 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런던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환경들 모두가 우리들의 머릿 속, 즉 상상의 세계에서 시작된 것이다. 도시를 건설하기 전 우리는 도시 설계를 예상하고 계획한다. 이 모든 절차의 시초는 바로 유토피아를 꿈꾸는 우리의 머릿 속이 아닌가?

 

 

. 유혜수 (현재 신기루를 찾아 여행중, 영국 central saint martins 재학중)

: chemism2011@yahoo.com

 

 

Secret garden party : 80개가 넘는 밴드 음악을 비롯하여 예술, 자연과 사람이 한 곳에 어우러져 소통하는 자유와 혁명의 페스티벌입니다. 캠브리지에서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2008 7 24부터 27일까지 나흘 낮, 밤 동안의 참여자들에 의해 완성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조하셔요~

http://www.secretgardenparty.com/2008/

 

더 많은 작품 사진을 보시려면, flicker로~^^

http://flickr.com/photos/25103602@N02/sets/72157604291156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