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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광학적 기술에 근거한 사진이 추구한 대상은 현실이었다. 그것이 우연적 순간이던, 연출된 상황이던 현실이라는 물리적 영역을 바탕으로 사진은 회화와는 차별화 된 노선들을 보여주곤 하였다. 이러한 사진의 영역은 그 본질적 의미들로부터 ‘현실’이라는 인덱스에 근거하여 형성되었고, 다양한 시도(하이퍼리얼한, 혹은 초현실적인)들을 시행함에 있어서도 그 출발점은 역시나 현실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진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변화하였다. 복제와 편집이라는 활용상의 측면 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킨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사진을 대하는 사진가 및 감상자들의 태도 또한 변화시키고 있다. 많은 사진가들은 어렵사리 포착했던 우연적 순간들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새롭게 파생시키고 있다. 과거의 광학적 사진이 추구하였던 본질적 우연성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의도된 편집된 순간으로서 재편되었고, 회화와의 근본적 차별점인 현실이라는 든든한 배경 또한 디지털 환경이라는 환영적 이미지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사진은 진정 변화하였는가? 과거 바르트가 언급한 주체를 꿰뚫는 ‘푼크툼’의 순간은 디지털 이미지의 환영적 본성에 의해 거짓된 상처가 되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인가. 만약, 주지하듯 우리를 둘러싼 실체 자체가 디지털로 점철된 현실이 되어버렸다면, 변화한 것은 사진이 아닌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디지털 푼크툼의 순간, 그리고 그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시기가 아닐까.

포이에르바하 Ludwig Feuerbach는 19세기 중반 당시의 사회를 진단하는 가운데 "사물보다 형상을, 원본보다 복제를, 현실보다 표상을, 본질보다 가상을 선호"한다고 언급하며 무한한 권위를 지닌 이미지의 시대를 예고하였다. 그의 진단은 한 세기를 넘어 디지털 이미지로 점철된 오늘날 더 유효한 듯 보인다. 왜냐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만든 이미지들은 본질적으로 가상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아날로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진이 현실의 순간을 포착하여 현재화했다면, 그리하여 실제 상황과 사진가의 기다림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획득했다면, 현재의 디지털 사진은 포이에르바하의 말처럼 현실보다 표상을, 본질보다 가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진이 지닌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과거의 사진은 분명히 현실의 단편을 추적하는 단서로 기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디지털 사진은 어떠한가? 한 장의 디지털 사진이 우리의 현실을 대변할 수 있는가?

맥루한은 인류의 역사란 인간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나 기술, 즉 매체의 발달사라고 말한다. 사람은 감각을 확장하기 위해 미디어를 창조해 왔고, 그런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과 더불어 작용하면서 상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곧 새로운 환경이 나타나면 사람의 감각에도 새로운 균형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감각은 제각기 사용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서 작용을 미치는 미디어가 달라지면 감각의 균형도 변한다고 한다. 즉 맥루한은 ‘문제가 되는 것은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이지 매체 자체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라는 종래의 이론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의 내용이란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의 테크놀로지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사실상 사람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매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로 바뀐 사진에 이러한 논의를 대입하여 생각해보자. 주로 사용되는 매체가 디지털로 바뀌어 우리의 감각 균형의 변화가 발생하였다면, 과연 어떠한 부분에서 그 변화를 파악해 볼 수 있는가. 또한 그러한 변화는 맥루한의 언급처럼, 사회와 사람들에게 형식으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

사진에 있어서 무엇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다름아닌 ‘현실’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가 사진이라는 이미지를 보면서 기대하는 많은 것들은 현실에 기반하여 발생한 일종의 일루젼 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은 디지털로 변환된 사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물리적 현실의 현전이 지표로 녹아들어가 있는 아날로그 사진과는 달리, 디지털 사진에 있어 사진 속 지시대상들은 그 진실성의 여부를 의심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일지라도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직접 촬영된 이미지인지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심은 더욱 증폭된다. 바르트가 언급한 푼크툼의 순간을 확대하여 생각해보자면, (바르트의 푼크툼의 개념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충분히 자의적이고 개인적 경험에 의존하는 것일 수 있기에, 본고에서는 그러한 부분들을 사진이 지닌 현실적 기표의 진정성의 문제로 확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디지털 사진은 사진 속에 등장하는 현실에 관한 의문으로부터 존재론적 가치를 위협받게 된다. 그러나 과연 디지털 사진에 있어서 사진 속에 등장하는 지표들의 가상성이 이러한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사진 속에서 (그것이 디지털 사진이던, 아날로그 사진이던) 현실의 흔적들을 추적한다. 현실이란 지표는 그 자체로서 디지털에 이르러서도 본질적인 존재이유이며, 또한 충분히 매력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화한 것은 디지털로의 유전적 변화에 의해 사진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태도인 것은 아닐까. 만일, 디지털 사진에서 비현실적인 지표들에 의한 가상적 순간들이 발생되었다면, 감상자는 그러한 가상적 순간들을 지표가 지닌 가상적 측면이 아닌, 가상이 투영된 현실로서 이해하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데리다의 언급처럼, 감상자들이 그것이 의도된 코드에 의한 연출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귀속과정'을 거쳐, 필연적으로 그 지시대상을 연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보자. 문제의 핵심이 디지털 사진이 가능케 한 이미지의 '현실 조작 가능성' 및 그 '진실성'의 여부에 있다면, 이러한 문제 제기에 디지털 사진은 나름의 해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즉, 디지털 사진에서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가상적 지표들은 가상적 현실의 지표가 감상자들에게 그것이 지시하는 현실이 아닌 가상적 현실로서 이해되는 측면을 드러내고 있고, 다른 측면에서 현실적 가상의 지표는 그것이 의미하는 가상이 아닌 현실적 측면으로 인식되는 과정들로 나타남으로서 디지털 사진이 획득할 수 있는 진실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만약 과거 사진에서 드러나는 푼크툼의 순간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체험적 인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사진 작업들 또한 가상적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순간을 발생시키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다만, 흥미로운 지점은 현실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디지털 사진이 오히려 현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가상의 순간들은 감상자들에게 순간의 진실성을 판단하기 위한 근거로서 현실을 더욱 반추하게 만든다. 따라서 사진 이미지는 디지털이라는 유전 인자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을 추종한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본 글은 제 2회 기술미학포럼  <디지털 푼크툼의 순간, 그리고 진정성>에서의 발표글을 재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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