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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세상과 대화하는 자_안톤 문타다스 인터뷰_inter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3. 19:37


우리에게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는가? 동시대 예술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2010, 예술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진정 가능한 것일까? 다분히 씁쓸한 질문들을 머금고 있던 즈음, 명쾌한 답변을 해줄 것 같은 바로 그를 만났다. 지난 3월 현대미술의 거장 안토니 문타다스(Antoni Muntadas)가 서울을 찾았다. 현대미술의 거장이라는 다소 거창한 수식어구가 지나치지 않을 만큼, 동시대와 호흡하는 그의 작업은 60년대 말에서 현재의 이르기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첨예하고 날카로운 예술가의 시선과 그것을 작업에 담는 방식의 절묘함을 보여주어 왔다. 이번 서울 방문에는 13명의 동행자와 함께했다. 그가 교수직을 맡고 있는 미국 MIT대학 비주얼 아트 수업인 <퍼블릭 아트에 대한 대화들 Dialogues on Public Art>의 일환으로, 토탈미술관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방문을 기회로 만난 안토니 문타다스는 시대가 주목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함께 예술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는 안토니 문타다스의 특정 작업이나 현재의 프로젝트에 초점을 주기 보다는 그가 중시하는, 또한 그가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예술가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그리고 작품에 사회를 담는 그의 방식과 신념에 대해 들어보았다. 예술가는 정치가나 광고업자와는 다르면, 작업을 통해 세상과 이야기 해야 한다는 안토니오 문타다스. 그의 작업에서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던 문구, 주의: 지각은 참여를 요구한다. Warning: perception requires involvement” 이 말에 주목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앨리스온: 안토니오 문타다스는 사회참여적인 작가라는 수식어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방식으로 작업의 주제를 선정과 진행하는가?

 

안토니 문타다스: 내가 작업을 시작하는 계기는 누군가로부터 커미션을 받는 경우와 내 스스로 커미션을 주는 경우로 나뉘어 시작된다. 최근 몇 해 동안의 프로젝트들은 서로 다른 도시에 초대를 받음으로써 이루어 졌다. 현재까지 이스탄불과 상파울로에서 작업을 했고, 이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모든 곳에서 나는 도시를 이해하려고, 도시와 관련된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리서치, 그 지역 사람들과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다. 지역적인 내용에 관한 지역사람들의 코멘트를 담으려고 한다.

 

앨리스온: 도시마다의 콘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지역에 대한 코멘트를 제공할 수 있는 작품을 진행해오고 계신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그러한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은? ?

 

안토니 문타다스: 프로젝트의 방법론에 대한 질문일 텐데, 그것은 내가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선의 프로젝트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로부터 출발을 하는데, 아이디어는 상당 기간의 리서치와 실제 그 도시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이런 시간을 거쳐 프로젝트를 제안할 만한 준비를 마치게 된다. 이러한 준비를 마치고 나면 구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어떤 미디어를 통해서 구현하게 될지를 정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출발점이 되는 아이디어들은 이전의 프로젝트들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프로젝트는 또 다른 프로젝트로 연결된다. 즉 하나의 아이디어가 그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지금 서울에서 진행하려는 프로젝트는 아시아라는 지역에 대한 오버뷰를 담고자 한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프로토콜(통신 혹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규약)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중국, 일본, 한국의 프로토콜에 대한 생각은 프로토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할 아이디어일 것이다. 프로토콜은 도시의 규칙, 관계, 제도 등에 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 생각하고, 도시의 문화적, 사화적, 정치적, 경제적, 그 밖의 다양한 측면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앨리스온: 안토니 문타다스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액티비스트, 혹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개입된 예술 프로텍트들이 떠오른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안토니 문타다스: 우선 나는 정치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라든지, 비디오 아티스트, 인터넷 아티스트, 혹은 액티비스트 등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식의 분류를 원치 않는다. 작가라면 자유롭게 움직이고, 프로세스를 발전시키고, 모든 프로젝트에서 자신과 콘텍스트와의 관계를 탐구하고, 맥락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한 결과가 좀 더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은 내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이다. 

 

앨리스온: 그 지역 사람들과의 대화나 관계를 통한 부분이 작업을 진행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면,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슈를 일으키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인가?

 

안토니 문타다스: 나는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기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뭔가 나서서 연설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 작품을 통해 이야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업 자체가 이야기 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직접 나서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정치가가 되거나 광고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기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일어나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서,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앨리스온: 이번 서울 방문은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현재 MIT에서 가르치고 있는 수업의 일환으로 알고 있다. 학생들에게 이러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작업들을 진행하도록 가르치고 있는가?

 

안토니 문타다스: 나는 MIT에서 ‘dialogues on public art’란 수업을 가르치고 있고, 매년 이 수업은 학교가 위치한 보스턴이라는 도시와 다른 도시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파울로와 이스탄불에 이어 올해는 서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맥락을 보고 이해하는 것, 특히 매우 보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적인 맥락을 넘어서 이해하하도록 하는 교육적 과정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완전히 다른 도시와 비교하는......비교한다기 보다는 관계시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보스턴과 서울은 서로 다른 프로토콜, 역사, 전통, 정치, 그리고 공공의 공간(public space)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보스턴을 이해하고 여기에서 작업을 하는 것과 서울에서 작업을 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이해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러한 비교 연구의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보스턴에서, 혹은 서울에서, 또는 보스턴과 서울을 좀 더 적극적으로 연결시키는 프로젝트들을 구체화 할 수 있다. 서울에는 1주일간 머무르게 되며,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한 학기의 반 동안은 퍼플릭 스페이스란 무엇인 가에 대해 다루면서 서울을 방문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을 가졌다. 서울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이후에 한달 반 가량의 시간 동안 각자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게 된다.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은 전시와 출판 등의 다양한 형식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앨리스온: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선생님의 프로젝트의 일부로 참여하게 되는 것인가?

 

안토니 문타다스: 그렇지 않다. 나는 학생들이 나의 프로젝트에 어시턴트가 된다거나 종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의 프로젝트와 학생들의 프로젝트들은 엄밀히 구분되어 진행하되 정보를 모으고, 과정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돕게 된다. 학생들이 나를 돕기 보다는, 내가 학생들을 도우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프로젝트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을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 이 수업을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보여준다. 하지만 학생들이 나의 프로젝트에 관여되도록 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내 프로젝트를 돕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있다. 이것은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 나또한 이번 방문을 통해 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리서치를 하고 자료를 모으는 과정과 결과물을 학생들과 공유한다.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얻고 공유하게 될 것인데, 이러한 정보의 공유와 정보를 구체화 하는 과정은 나의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유용할 것이지만, 학생들 각자의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이용될 것이다.

 

앨리스온: 문타다스의 작품에는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미디어와 기술에 해석이나 반응이 작품의 형식이나 주제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기술미디어의 변화는 문타다스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처 왔는가?

 

안토니 문타다스: 1970년 말에서 1980년대에, 나는 미디어 풍경(media landscape)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미디어 풍경이라는 개념은 그 시대에 우리가 새롭게 가지게 된 또 하나의 풍경에 관련된 것이다.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고 풍경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풍경을 가지게 되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들이 우리를 둘러싼 새로운 풍경이 되었다. 나는 그러한 미디어 환경, 미디어 월에 대해서 분석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실재이지만, 또한 이미 매개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때 이후로 다양한 미디어들을 분석하는 작업들을 해왔다. 비디오 테이프, 사진, 설치 등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그 프로젝트에 맞는 다른 미디어를 선택하여 작업하였다. 즉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미디어를 사용한 것이다. 나는 70년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비디오가 텔레비전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이후에는, 인터넷이 또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때로는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그러한 기대와 현실은 또 다른 상황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디오가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텔레비전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문제에 빠지고 말았고, 텔레비전 방송국은 변함없이 건재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상당한 경제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되었지만, 상당기간 동안에는 아주 최소한의 변화들이 일어났다. 따라서 작가들은 많은 메시지들을 전달하려고 애썼지만, 나는 예술이 세상을 그렇게 크게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이러한 변화들에 대한 논의로 사람들을 이끌어 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세상으로 사람들을 불러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예술가로서 세상의 구체적이 이슈에 대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정치가들이나 광고업자들의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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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온: 그렇게 되면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란 것이 너무 소극적인 것은 아닌가?

 

안토니 문타다스: 그렇지 않은 것이, 우선 예술가는 일차적으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책임이 있다. 나아가서 예술가는 당면한 문제를 보도록 하는 사회의 필터이자 촉매로가 되어야 할 책임이 있다. 아마도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더 나은 논의를 이끌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지나치게 극단화된 담론으로 이끌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작가의 역할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작업을 발전시키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재에 논의되는 다양한 이슈들,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나 환경문제, 미디어가 어떻게 역할을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은 지속되어온 문제들이다. 다만 어떤 맥락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다루어 지는가, 그리고 어떤 이슈들이 좀 더 시급한 문제들인가의 차이가 다를 뿐이다. 세계 혹은 사회에 대해서 일반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에 직면한 이슈와 콘텍스트에 접근해야 한다.

 

앨리스온: 안토니 문타다스의 작가로서의 견해외 작업방식, 그리고 작업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의 견해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인터뷰에 응해 주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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