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흑표범의 Things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7. 21. 23:44

 

 갤러리 반디 초대로 기획된 흑표범의 세 번째 개인전《Things》는 2007년 이후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과 영상설치, 그리고 비디오 콜라주 영상으로 구성된다. 흑표범(Black Jaguar)은 세계와 대결하는 작가적 시선과 사유의 궤적들을 구체적인 신체행위로 표상한다. 사진과 영상 매체는 작가의 구체적인 신체 행위들을 기록하는 동시에, 행위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도구로서 존재와 경계에 대한 작가적 물음과 개념을 전개• 확장시키는 대결구도를 형성한다. 
  흑표범은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넘버링된 일련의 사진 제목인《Things》에서  냉장고 안의 생고기와 달걀, 각종 야채와 가공식품들 사이 어느 지점의 사물로서 제시된다. 냉동실에서 기한을 연장하고 있는 숨이 끊긴 고기 덩어리, 애초에 부화할 수 없는 무정란들, 냉장고 안에서 신선도를 유지하며 시들어가는 야채들, 새겨진 유통기한까지 무의지적으로 누군가에게 소비되기를 기다리는 가공식품들과 더불어 냉장고라는 사물세계 내에서 흑표범의 존재는 냉동실과 냉장실, 날 것과 가공된 것 사이에서 자연과 인공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무수한 경계지점들로 해체시킨다. 뿐만 아니라, 사진과 영상으로 재구성된 이미지 안에서 흑표범의 얼굴에 새겨진 과녁과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의 침묵과 부풀어 오른 풍선과 자명종과 마이크의 촉각과 청각적 인상들의 대비는 육체와 정신, 가시적 물질과 비가시적 물질, 중심과 주변, 체계와 비체계, 정형과 비정형, 언어와 비언어 사이를 오가며 불안정한 경계들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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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시계 (wheat clock), 영상설치, 루핑, 2007

 

  흑표범의 경계에 대한 사유의 궤적들은 퍼포먼스와 사진, 영상 모두에서 시계라는 사물로 은유된다. 흑표범은 시계바늘이 되어 1, 2, 3, 4...등 수로 규정된 정각, 그리고 규정되지 않은 정각과 정각 사이를 지나는 시간들을 지정하는 행위를 한다. 흑표범의 행위는 곧 행위의 흔적이 새겨진 시간적 공간인 시계를 구성하는 동시에, 기계적으로 수량 • 수치화된 사물세계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사물로서 사물세계 안에 갇히게 된다. 결국 스스로 행위의 중심과 주변공간의 경계들을 모호하게 뒤섞어버리는 모순적 상황은 세계와 대결하며 본래적 자아를 찾으려던 애초의 시도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존재의 물음에 대한 강박과 해결책도 탈출구도 없는 순환의 미궁으로 몰아간다. 흑표범의 퍼포먼스와 이를 담은 사진, 영상들은 세계로부터 자율적 의지가 위협받는 순간, 그리고 해답 없는 물음의 고된 여정 속에서의 울부짖음과 그러한 와중에도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의지를 드러내는 거친 숨이 뒤섞인 일련의 행위들을 콜라주할 뿐이다.(침묵 1,2,3,4) 우리는《Things》에서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강박적 바람과 세상을 향한 자기표상 욕구라는 인간적 욕망의 모순과 무한한 세계 속에서 유한한 삶을 재기하려는 시도와 좌절이라는 인간적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모호해지는 경계에서 흑표범의 언어화되지 않은 포효와 뒤얽힌 끊임없는 재기의 몸짓들은 사물세계에 사물화되어 수동적으로 내맡겨진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진과 영상으로 확장된 흑표범의 경계에 대한 사유는 사물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물질적 토대 너머로 관심을 이동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원이나 침묵(1,2,3,4)에서 음식물쓰레기들을 떼어내지 못하는 신체를 보여주며, 물리적 생에 대한 강박이야말로 경계에 대한 사유를 지속시키는 토대임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언어화되지 않은 행위들은 침묵(1,2,3,4)에서 라디오, 하이힐, 사진을 재료로 한 요리장면으로 명시적으로 삽입하고 있듯이, 사회적 상징 언어 체계로서 사물세계 속에서, 사물세계와의 관계적 대결을 통해서만 의미의 드러남이 발생함을 보여주고 있다.


  흑표범은 사진과 영상매체를 신체행위와의 경계이자 반성적 계기로 사용하며, 경계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주체적 행위에 대한 개념을 전개시킨다. 불완전한 원 Imperfect Circle에서 자신의 물리적,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 비물질적이고 추상화된 가상공간과 접속하는 순간, ‘숨’표의 불완전한 순환 원을 경계에 대한 메타포로 제시하고 있다. 숨표는 동일한 궤도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른 궤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일회적 시간들을 새로이 재현해내려는 정신적 의지와 시도들을 그려내고 있다. 동시에 기계적으로 추상화된 세계 속에 함몰된 인간의 부활과 구원에 대한 유일한 계기는 육체적 에너지의 분출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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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퍼포먼스 기록 사진

작가 웹사이트 : www.black-jaguar.com

                                                                                     글. SONGE (예술학,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