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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아트 센터는 그 이름답게 거장 ‘백남준’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활동에 대한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작가 자신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한 기획전입니다. 백남준 선생님의 타계 이후 많은 백남준 관련 전시와 행사가 있어왔지만 연구를 통한 재해석을 통해 드러나는 결과물인 전시는 그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첫 개인전이었던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의 <EXposition of music - ELectronic television>전을 재해석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시의 공식 명칭은 <EXPosition of Mythology - ELectronic Technology. 신화의 전시 - 전자 테크놀로지>입니다. 대문자를 따로 모아 생성되는 단어 EXPEL은 전시의 부제로 추방이라는 그 의미대로 서양미술의 추방, 백남준이 추구했던 새로운 미술과 이를 이은 한국 청년의 예술적 발악-발설-발기라고 백남준 아트 센터의 관장인 이영철씨는 설명합니다.

이번 전시는 오마쥬의 원본인 부퍼탈 전시의 구조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16개라는 어지간한 기획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방대한 테마를 가지고 진행되었던 부퍼탈의 모습 대로, 본 전시 역시 16가지 주제를 통해 작품들이 분류되어 선보입니다.

각 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성인을 위한 유치원,
선(禪)수행을 위한 도구들,
성스러움의 물신화,
70%로 만족하는 법,
20·21세기의 트라우마,
오브제 오노레 소리 나는 방,
메모라빌리아,
4개의 준비된 화장실,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스스로 하기(Do it Your …),..에 대한 경의,
18세 이상,
비인과적 관계의 원리로서의 동시변조,
내용 없는 시간이 가능할까?
유토피안적 바보학(Utopian Idiotology)



건물의 로비, 즉 전시의 초입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백남준이 생전 작업하던 다양한 용품들을 한 데 모은 설치물입니다. 일견 규칙없이 흩뿌려진 기술의 파편들은 평상시 경험치 못하는 독특함으로 다가옵니다. 전시는 기존의 신화에 대한 이해와 표현 부분을 시작으로 각 주제들은 다양하게 흩뿌려져 관람객들 앞에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각 주제들과 작업들은 이리저리 뒤섞이며 여러가지 관점을 혼합해서 드러냅니다. 때로는 테크놀로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도 하고, 종교와 신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라고 제시하기도, 관객을 비추며 공간을 섞기도 합니다.


2층의 입구를 지나 맞이하게 되는 것은 근대 이전 시기 사람들이 신화의 시대를 받아들이는 모습들입니다. 이러한 시각적 결과물과 더불어 현대의 과학적 사고와 신화적 사고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작업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Mary Bauermeister (프랑크푸르트, 독일, 1934- )
<클라이스트인형극장(Kleist Marionettentheater), 1975, 조각>


알프레드 그림 Alfred Grimm, 크로스(Cross), 1999, 조각




크리스토프 마이어 (비엔나, 오스트리아 1980- ), 셋팅 #15 (Setting #15), 2009, 설치



에이란드 (alan∂), 2008, 설치

다니엘 버크하르트 (Daniel Burckhardt 스위스), 로렌쯔 슈바르쯔 (Lorenz Schwarz 독일), 리누스 슈톨쯔 (Linus Stolz, 독일), 방자영 (Jayoung Bang 한국), 알렉스 벵거 (Alex Wenger, 스위스), 이윤준 (Yunjun Lee, 한국), 쥴리안 핀 (Julian Finn, 독일/영국), 필립 포콕 (Philip Pocock, 캐나다) 의 공동 프로젝트 작업인 에이란드의 모습입니다. alan∂(에이란드)는 Al-Andalus(알 안달루즈)의 축약되고 변형된 제목으로 인터넷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이 떠도는, 모든 이미지들의 바다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진행된 발전은 유라시아 모두로 전파되었고 현대의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됩니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지방의 이미지와 설치된 현실 공간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함께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융합된 유태교, 이슬람, 크리스트교의 문화를 통해 발현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발전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오노레 도 Honore ∂'O (우데나라드, 벨기에, 1961- )
<지금 바로 모든 전자제품의 전원을 꺼주세요(Please Switch Off All Electronic Devices)>, 2009, 설치

오노레 도는 이번 전시에서 설치와 영상 등이 결합된 작업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술관측은 ‘면봉’을 비롯한 일상용품을 ‘인류학적 손재주’, 즉 브리콜라주(bricolloge)의 수법으로 자기증식해가는 ‘원더랜드’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생활용품들로 구성된 작업의 중앙에서 강렬하게 드러나는 혀의 촉각적 이미지로 대변되는 욕망이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1층의 로비에서 잠깐 놓쳤던 우지노 무네테루 Ujino Muneteru (도쿄, 일본, 1964- )의 <- 닉-넥 롤(잡동사니가 연주하는 로큰롤)(Knick-Knack Roll), 2008, 사운드 설치>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빠르게 버려지는 여러가지 전기 용품들을 모으고 조립하여 새로운 악기로 재탄생시킨 작업입니다. 기존 사물의 성향과 용도를 해체하고 왜곡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백남준에 대해 한 평론가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까지 테크놀로지를 향한 인간의 태도는 딱 두가지였다. 열광적인 지지와 적대적인 반감. 하지만 백남준은 그 틀을 깨고 테크놀로지를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그것은 유희이고 풍자이다. 백남준은 테크놀로지를 풍자하였으며, 이를 통해 상호 부정적이었던 태도를 벗어나 테크놀로지를 인간화 하였다."즉 배타적이거나 숭배의 대상으로 사용자인 인간과 거리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테크놀로지는 예술을 통해 합일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관점과 시선’의 제시야말로 백남준의 위대함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합일, 정신과 물질의 합일 등의 주제가 녹아있는 그의 개념과 이상은 전시를 통해 이렇게 그 흐름이 제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정작 작품을 앞에 놓고 있자면 ‘어렵다’라는 인식을 그 선두로 곤혹스럽고 당혹스럽게만 다가옵니다. 그런 힘든 ‘불편함’을 녹여내어 거리를 허물 수 있는 것이 백남준식의 해학일 수 있지만 이번 기획전에서 그 모습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파해칠래도 한 두 삽이 아니라 수십 분 이상을 파내려가야 한다랄까요... 예지자에 가까웠던 백남준이 내어놓은 그 정수를 가공하여 전달하려는 시도가 바로 이 기획전이지만 그 불편함은 여전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소장되어 있는 기존 백남준의 작품들과 백남준 관련 자료, 기획전에 출품된 작업이 뒤섞인 독특하다면 독특하다 할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특히 자그마치 16개의 키워드(혹은 주제)로 구성되었기에 하루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작업과 자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대한 정보들이 배치된 만큼 각 주제간의 연결, 그리고 그 주제 안에서의 작품들간의 배치와 정리, 연결 등이 잘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장치들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이것이 백남준의 작품인지 참여 작가의 작품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로 애매하게 배치되어 있었던 태그들이라던지 도슨트의 설명 없이는 그 어디서도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내용을 얻을 수 없는 설명의 부재는 의도적으로 구성된 미로같은 공간과 복잡 다단한 작품 배치와 어울려 관람자를 더더욱 그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작품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려줄 배치도도, 각 작업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글도 없이 방대한 공간 안에서 부유하고 있는 작품들 사이에서 관객들은 현대 미술 작품들이 내뿜는 강렬한 아우라 아래 숨막힐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미술이라는 존재가, 작가와 작품이 오로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을 위해 눈높이를 낮출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간극을 매꿔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미술관이라는 공간입니다. 우리나라가 기획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주제어조차 한글화하지 않은것은 의아한 부분입니다. 포스터나 전시의 구성은 작가의 작품이 아닌 관람자라는 소비자에게 제시되는 디자인입니다. 전문용어와 번역이나 해석조차 없는 외래어의 나열 가운데 느낀 점은 전시를 통해 유익한 정보를 전달받는 교육의 느낌도, 재미있고 머릿속을 환하게 하는 영감을 건내주는 느낌도 아닌, 이건 이런 개념이야 라고 외국인에게 이해안되는 내용을 ‘설득받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기획적인 측면에서 아무리 참신해도, 학술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것을 소화하지 못하고 내용의 혼란스러운 바다의 연안에서 겉돌다 돌아가 버린다면 그 의미는 반감됩니다. 기획과 내용에 치중한 나머지 전달의 비중이 약해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식의 테크놀로지 읽기와 표현하기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최신의, 앞서나가는 테크놀로지를 소화한 뉴미디어 작품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를 새롭게 읽기, 미디어를 새롭게 바라보고 전개하는 백남준만의 방법을 이어받은 많은 작가들의 모습들이 보여진 장소이고 기회였습니다. 보다 빠르게, 보다 고성능으로, 보다 먼저를 표방하던 이전의 테크놀로지와는 다르게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보다 인간을 향해, 인간과 융합하는 인터페이스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백남준이 추구했던 테크놀로지의 인간화와도 연관될 수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신화의 전시. 백남준은 그의 놀라운 상상력을 통해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해와 시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의 상상력을 통해 테크놀로지는 합리적 사고를 통해 드러날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여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신화적 사고, 그 신화는 전시 안에서 부유하고 있습니다. 백남준. 그의 이름과 그의 이상은 신화의 원형으로서 뒤를 이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상상의 세계를 제공하며 여전히 존재하지 않을까 합니다.

글. 허대찬(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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