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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문화예술 채널 앨리스온(AliceOn)은 지난 2009년도를 돌아보며, 한 해동안 펼쳐진 주요한 미디어 전시 및 행사들을 돌아 봄으로서, 현재 한국의 미디어 아트와 다양한 미디어 문화의 전개 양상과 발전 방향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본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논의의 대상을 2009년 한국의 미디어 아트로 한정하고, 해당 시기의 국내 미디어 아트의 흐름을 세 가지 파트로 구성하여 분석해 보았습니다. 참석인원은 앨리스온의 전 멤버(수습에디터 포함 10명)였으며, 지난 해 각자의 활동 영역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의사 진행을 전제로 진행하였습니다.


2009-2010 앨리스온 라운드테이블 : 미디어 문화예술, 대한민국, 2009

1. 2009년 한국의 미디어아트 비엔날레/페스티벌/전시/프로젝트 : 기존의 미술관 및 전시 체제 중심

2. 2009년 한국의 미디어아트 전시/프로젝트/행사/이벤트 : 기존 전시공간을 넘어선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중심

3. 향후,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형식 / 발전가능성 모색




1부. 2009년 한국의 미디어아트 비엔날레/페스티벌/전시/프로젝트 : 기존의 미술관 및 전시 체제 중

들어가는 말: 2009년 미디어 아트 전시의 흐름을 간략히 되짚어 보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백남준 선생의 작품 <다다익선>에 강익중 작가의 설치 작업이 더해진 설치작품 <Multiple Dialogue>전이 있었고, 서울시립미술관과 코리아나 미술관에서는 미술과 영화, 미술과 애니메이션 등 장르 간의 연계에 관심을 보이는 전시가 있었다. 연례 행사로 자리를 잡은 대안공간 루프의 <Move on Asia>와 미디어극장 아이공의 <서울 뉴미디어 페스티발> 등이 꾸준히 개최되었습니다. 올해 새롭게 열린 행사로는 인천국제디지털미디어페스티발(인다프)이 있었다. 에디터로서 한 해의 전시를 돌아보았을 때, 이목을 끄는 전시가 많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신인 작가들의 전시에 비해 중견 작가들의 미디어 아트 전시가 적었기 때문인 듯 하다.

W : 장르가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파이는 넓어졌지만 다양한 것을 보여주는 작가가 나타나기 힘든, 나타나더라도 눈에 띄기 힘들었던 측면이 있다. 그 원인에는 기존 화이트큐브 등 공간성이 제한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J: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굉장히 유보적 용어이고, 레이어가 다양하지 않은가. 작품의 형식이나 전달 방식, 논의 영역의 층이 다양한데 한국에서 미디어 아트가 제시되는 환경을 보면 미술관이 가장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미술관이라는 곳 자체가 미술사를 바탕으로 하는 곳이고 현대미술 가운데서도 새로운 예술작품을 소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미디어 아트가 미술관을 중심으로 소개되다 보니 미술관에서 보여질 수 있는 형식이나 개념적 접근에 맞닿는 작품들만이 전시되고 그 외의 작품들은 보여질 기회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안적인 것이 아트센터인데 아트센터 나비에서는 매년 어린이를 위한 미디어 아트 전시를 매년 하기는 하지만, 국내 유일의 미디어 아트 센터로서 더 많은 역할을 소화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경우 다양한 기획과 연구를 많이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개관 1년이다 보니 백남준의 예술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연구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W: 아트센터가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을 거부하고 아트센터를 표방했을 때는 미술관이 할 수 없는 차별적이고 확장적인 역할들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화이트월로 대표되는 미술관 공간과 아트센터가 차별점을 갖지 못한다면 역시 미디어 아트의 소개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2009년을 돌아봤을 때 확실히 전이되고 확산되는 활동들이 있었는데 미술관의 전시와 여타의 활동들이 괴리가 있다면 어떤 요인 때문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I: 비엔날레라는 형식, 모듬전들(많은 작가들을 특별한 맥락 없이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들)을 보면 너무 모은다는 인상을 받는다. 인다프의 경우, 작품 간의 간섭이 가장 심했다. 미디어 아트 전시의 경우 작품 간의 공간 확보가 굉장히 중요하고 간섭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마치 동대문 시장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 전시를 기획할 때 내실보다는 규모를 중시한다. 내실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고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를 뛰어넘기 위해 너무 많은 작품들을 끌어온 것 같다. 전시 자체가 아니라 상위의 페스티발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 이런 패턴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J: 미술관에서 미디어아트 작품을 보여준다는 것에는 학예 연구와 수집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한국 미술관에서는 미디어아트의 수집과 보존 자체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MOMA 등 외국의 경우 미디어아트 담당 큐레이터와 전문 보존가들이 있다. 거기에서 모든 게 시작되는 게 아닐까. 작품 간의 간섭은 전시마다 나오는 비판인데 미술관이나 센터가 전시에 적합하지 않게 지어진 경우가 많은데, 그 보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본다.

W: 규모 위주로 진행되는 전시의 폐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것이 미술관의 시스템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사실 우리가 예민하게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은 미술관에서의 수집 보존 및 연구의 바탕이 없이 진행될 경우 전시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규모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에서 제시된 미디어 아트전시들이 규격화되어 지방의 중소 프로젝트에서도 공간 구성 같은 것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미디어아트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선례가 아닐 경우가 문제이다.
지금까지는 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 새로운 흐름들 제시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미디어 아트에서 새롭게 규정될 수 있는 세부 분야들, 그 이후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들이 미술관에서 선행된 연구와 분류를 통해 제시되어야겠다.

I: 좋은 선례가 될 만한 전시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 원인은 기획자들에 있을 것 같다. 미술관의 역할이 분명히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획자들이 내러티브에 따른 전시의 동선 배치에 대한 고려가 너무 적지 않나 싶다. 미디어 아트는 관객의 오감에 호소하기에 굉장히 효과적인데, 그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도 부족하다는 인상인 든다.

W: 기획력의 강화가 중요한 문제다. 미디어 아트의 장점들을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좋은 예로 들 수 있는 게 MOMA에서 열렸던 <Elastic mind>전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미술관에서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 전시에서는 7년 동안 작가들이 포럼을 진행하고 담론을 쌓았다. 그리고 전시라는 형태의 결과물로 제시된 것은 온라인이 주가 되었다. 온라인에서 인터페이스를 잘 설계했고, 그것을 서포트하기 위해 오프라인 전시가 기획되었다. 전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에 의해 가능한 그런 기획력이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 다른 사례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생각해보자.



J: 우리나라 미술관의 미디어아트 전시에서 전시 디자인의 개념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독일 트랜스 미디알레를 경우, 환경 문제에 관련된 이슈를 전시로 다루면서 남극의 거주지 형태를 디자인 컨셉으로 잡았다. 전시 디자인에 관한 논의와 비판이 있었는데, 그러한 세팅이 오히려 작품 전달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미디어 아트 전시 디자인 자체가 부재한 만큼 에 이러한 비판 자체가 불가능하다.

D: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고려가 너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미디어 비엔날레 같은 경우 전시를 일반에게 제시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다른 전달방식이 있을 것 같은데, 전통적 방식을 그대로 따를 뿐이어서 전시에 방해가 된다. 그것에 대한 제안이 없어서 아쉽고,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는게 <Elastic mind>전에서 보여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S: 문지문화원에서 기획된 텍스트@미디어전의 경우 주변 카페나 소규모 공간 등에서 관객들을 계속 만나면서 자신들의 시도의 맥락들을 소개했던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현상들이 감지되는 것은 긍정적 현상인 것 같다.


W: 네마프에서도 그러한 시도를 했었다. 여성, 소수자, 대안이라는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택했고, 제시의 형태도 상상마당 극장과 일반 전시장, 심포지움을 통해 주제를 심화시켰다. 그러나 아직 과도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이 아직 잘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방금 말씀하신 이야기의 경우 분화와 다양화는 긍정적인데, 연구를 토대로 다양화되고 있는가, 형식과 주제에 맞춰 기획되고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좀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미디어 아트 관련 행사들의 경우 반성의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나 소규모로 진행되는 행사들은 더욱 그러한 상황이다. 반성의 기회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J: 전시 또한 타겟 오디언스를 확실히 해서 어떤 관객들과 소통할 것인지를 정하고 그에 맞게 기획을 했으면 좋겠다. 규모 위주 전시도 타겟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많이 보기를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는 전시를 기획할 때 그런 스트레스를 버렸으면 좋겠다. 정말 그 논의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그리고 생산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 논의가 계속 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W: 미디어 아트 행사가 미디어 아트를 보급하는 데에는 역할을 했고,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제는 미술관이 무거운 책임감을 벗어던지고 연구에 치중한 기획력을 가진 전시가 필요하다.

I: 미술관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같은 전시들을 하더라도 센터에서는 다른 개성 있고 특화된 전시를 많이 해주어야 한다.

W: 미술관도 새로운 흐름을 보여줄 때는 그것이 왜 현대미술의 새로운 양상으로 소개할 때는 설득력 있는 전제 자료와 연구가 필요하고 밀도 있게 확장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의 일정 부분은 아트센터와 나눠서 서로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의 좋은 모델도 있지만 해외의 비엔날레 같은 행사는 연구 성과를 보여주는 장이 되고, 전시 자체는 그 결과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능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 시점에서 미디어 아트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들을 모아놓은 전시로만 제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 부분은 지양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미술관과 아트센터가 대학 내지는 외부 연구 단체와 연계를 해야한다. 미술관 내의 연구인력만으로 성과를 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유수의 아트센터가 다른 연구 단체들과 기반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모아서 비엔날레를 통해 연구의 흐름을 보여주고 전시로서 그 연구의 성과를 보여주는 시퀀스를 갖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역할 분담이 안 되어있고 미술관이 막중한 책임감을 껴안고 있는 듯 하다.

그럼 논의를 2번째 소주제로 이어가 다른 수준에서 국내의 상황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보자.



2부. 2009년 한국의 미디어아트 전시/프로젝트/행사/이벤트
      : 기존 전시공간을 넘어선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중심


들어가는 말: 올해 미디어아트가 다시 화두에 오르는 느낌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비엔날레처럼 미술계에서 주도해서 시작되었다면, 이번에는 대중적 측면에서 매체나, 국가정책으로 여러 이벤트가 있었다. 강남 미디어폴, 을지로 한빛거리처럼 대중적인 친화력을 미디어 포맷들이 만들어졌다. 인천 도시축전과 연계된 미디어 아트 행사였던 인다프 더불어서 여러 지자체들도, 비스타스 전시처럼, 미디어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사례도 있고요. 비록 보여주는 데에 그칠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미디어아트를 알릴 기회를 많이 제공했던 것은 사실이다. 기업에서 자금을 출원한 경우가 있다. 또 창의문화재단도 미디어아트 관련 행사를 많이 진행했다. 이런 부분에서 강조되는 것들이 기존의 어떤 미술작가들이나 아니면 미술 중심의 기획자들이 진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미술 외적인 부분에서 예를 들어 문화 컨텐츠나 디지털 컨텐츠 쪽에서 출발하여, 융합적인 양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 하나 분명한 점은, 국가정책의 영향력이 높았다는 점이다.

W: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확장되면서 우리한테 새롭게 미디어아트를 전달해주고 소통시킬 수 있는 좋은 어떤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고, 어떤 의견은 이건 미디어아트의 탈을 쓴 미디어 컨텐츠에 불과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아트 개념이 위협되는 그런 속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디어아트가 미술관 밖으로 갔을 때, 꼭 공공건물이나 거리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대안 공간들 내지는 다른 어떤 복합문화예술공간도 포함된다. 미디어 아트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미디어아트의 소통방식 혹은 전시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서울스퀘어 같은 곳을 생각해 보자. 미디어와 아트라는, 여기서 아트의 범주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미디어아트를 아주 생소하게 여겼던 사람들에게 미디어아트를 알리는 데에는 굉장히 큰 영향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서울역은 상징성과 실제로 유동인구가 많은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보여지는 미디어아트 영향력도 크다. 길가던 사람들이 자신의 모바일로 연동을 하면서, 미디어아트가 중시하는 상호작용성의 극대화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

I: 삼성이 체험관을 열면서 LED TV에다가 미디어 작품들을 디폴트로 넣는 형태들이 올해 나타났다. 기술력과 결합하고,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한 흐름도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W: 원래 작품이 LED TV의 특성을, 그러니까 휘도가 높고 총천연색이 잘 살아나고, 이런 특성에 부합하는 작품일 경우 아트로서의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LED TV에서 보여졌을 때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소통 방식의 확장 측면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W: 지금까지 미술관에서 경직된 차원에서 미디어아트에 대한 교육 내지는 전시가 진행되었다면, 그에 비해 굉장히 자율성을 얻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트라는 부담에서 벗어나서, 과학기술과의 협력도 더 원활할 수 있었다. 교육에 필요한 소통의 방식도 굉장히 자유롭고 다채로워야 한다.

J: 강남의 미디어폴이 흉물스럽지 않은 설치물로 남았으면 바란다.

W: 미디어아트 작가들이 꼭 얘기하는 게 있다. 전원이 오프되었을 때에도 작품의 조형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미디어폴이 지금 보면 벌써 지방광고들이 나타나는 등 컨텐츠 부재를 벌써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안타까운 것은 컨텐츠를 기획하고 미디어아트를 적용하려고 했을 때 충분히 연구를 했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J: 이러한 행태들이 미디어아트라고 너무 단편적으로 이용되고, 사람들도 인식한다는 게 안타깝다.

I: 그건 어떤 당의정이나 사탕 같은 역할이기도 하다. 하드코어나 난해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그 자리에서 보이기는 어렵다. 그 역할을 몇몇 작가들 작품만 계속 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 미디어아트 전체를 보여줄 필요는 없으니까…

W: 당의정이라는 건 몸에 좋은 약이 쓰니까 단 맛으로 감싸는 것이다. 말하자면, 몸에 좋다는 전제가 유효할 때,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다양한 시도들이 그에 부합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미술관은 미술관대로 미디어아트의 진정성이나 현대예술에서 한 조류를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미술관 밖에서는 미디어아트의 당의정 역할인 이벤트적인 부분들을 사람들에게 공감이나 소통의 극대화를 할 수 있다.



G: 내년에는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기간 밤에는 클럽데이 같은 이벤트가 있고, 낮에는 클럽이 가진 하드웨어를 활용하여 전시관으로 쓰는 계획도 있다고 한다.

J: 클럽문화 자체가 외국에서는 자연스럽다. 클럽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행사와의 연계는 외국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가령 트랜스 미디어 비엔날레 같은 경우도 클럽 트랜스 미디어 비엔날레가 같이 진행된다. 낮에는 클럽 공간에서 세미나를 하고, 밤에는 참석자들이 술을 마시며 토론하는 자리가 되고, 그 토론 주제에 맞는 작업이 상영되기도 한다. 장소라거나 문화가 자연스럽게 시너지 효과를 이루는 기획이 필요하다.

I: 우리나라에서는 클럽문화라는 걸, 너무 무비판적으로 외국의 것을 수용하는 것은 아닐까.
플래툰과 같은 공간도 서브컬처를 가져왔다는데 메이킹이 좀 애매모호해서… 그 자체가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을까.

W: 서양에서의 서브는 우리나라에서는 3rd,4th 일수도 있다. 오해의 소지가 좀 있다. 해외에서의 흐름이 국내에 들어올 때, 국내의 현실에 맞는 조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문화의 공간이라고 지칭했던 시도들이 이러한 측면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I: 아울러, 올해 가장 두드러졌던 흐름 중 하나는 대안공간의 몰락이 아닐까. 대안공간에서 미디어아트 전시도 많이 있었다.

J: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수용력이 빠른 젊은 작가들이 미디어 작업을 많이 했었고, 대안공간에서 젊은 작가들의 미디어 작업들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했다. 기금 같은 것들이 예전에는 공간을 끼고 제공되었는데, 올해는 공간에 지원이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W: 대안공간이라는 것도 원래 주어진 어떠한 것에 대한 대안이어야 하는데, 미술관 같은 공간도 대안공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기금의 문제도 있지만 그런 정체성 문제도 중요하다. 대안과 서브컬처라는 것은 기본과 메인가 있어야 하는데. 기본과 메인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정착되기 힘든 것이다. 특히 우리가 서양의 것을 받아들일 때 더 어렵다.

I: 메인스트림에 있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서브를 갖고 뭘 하려고 하는 흐름까지 있다.

W: 지금 거리에서 넘쳐나는 불빛들, 거리의 작품들을 본 사람들은 미술관으로 전시를 보러 갈 수도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아트를 인지한다. 예술의 한 형식이라고 사람들이 이해하기까지 미디어아트의 시도가 한 몫을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아직은 컨텐츠의 진정성을 논하기엔 부족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표현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채널이 마련되었다는 점은 2009년의 결실이다.

이러한 흐름들에서 3부에서 논의될 향후 국내(및 해외의)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형식과 발전가능성에 관한 모색을 시도해보자.




3. 향후,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형식 / 발전가능성 모색

들어가는 말: 2009년에는 미디어아트가 새로운 폼으로서 화이트큐브에 국한되지 않고 확장되는 경향을 보였다. 먼저, 굳이 올해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겠지만 작가와 관객의 관계설정이 변화했다.  작품이 있고 관객이 와서 감상하는 방식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작가적인 마인드를 갖고 뭔가 하는 것이 늘어났다. 이것들은 디지털 장비들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두드러진 현상인데, 그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사진이다. 또한 온라인 게임의 툴을 갖고 영화를 찍는 예처럼, 작품이 수용자에 의해 새롭게 발견되고 컨텐츠의 가치를 갖기도 한다. 관계적인 면에서 보자면, 관객들을 참여자들을 작품 내로 끌어들여서 협업이나 네트워크로 표현되는 형태의 미디어작업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되었던 트라팔마 광장의 ‘One & Other’ 라는 작품도 있다. 그런 식으로 작가는 판을 벌리고 관객이 들어와 작품의 일부분이 되는 방식이다. 최근에 ‘인터넷 문워크’라고 전세계 사람들이 문워크하는 모습이 연결되는 작품도 있다.  최승준 작가의 작업의 경우도 이런 트렌드를 잘 반영한다. 또한 모바일처럼 개인화된 디바이스가 발전하면서 기존의 TV나 신문처럼 공유하는 미디어 형태에서 벗어나서, 사적 매체를 통해 개인의 창조적인 면이 드러날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W: 미디어아트를 새로운 형식으로 볼 때 덕목들 외에도 문제점이 있다. 한국은 미디어환경이 좋은데, 작가들이 그것들을 작품 내 의미로 가져오는 경우가 적다. 포맷은 다양하고, 웹이나 모바일의 접근성도 좋다. 물론 몇몇 통신사가 구축한 제한이라는 요인도 있지만 말이다.

J: 거기에는 작가뿐만 아니라 전시 기획자나 예술 비평가의 역할도 크다. 작가는 환경에 적응하는데 느리고, 기획자나 비평가가 그 간극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

W: 저는 오히려 작가가 더 잘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이미 존재하는 맥락에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최대한 표현 가능하도록 외부 요인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기획자의 역할은 만들어진 맥락이나 작품을 조직해서 다른 맥락을 만드는 것이다.

J: 사실 우리나라에서 예술활동이라는 건, 정부의 지원에 의해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기회들이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콘텐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가 다양한 학문이나 문화를 연결할 수 있는데, 중간에서 연계할 수 있는 역할이 부족하다.

W: 물론 이제 기획자와 작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작가와 기획자 이상으로 총체적인 의미의 디렉터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다른 분야로 나뉘어진 영역들을 통합해서 조직화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런 사람을 길러낼 환경이 부족하다.

J: 외국의 경우 프로듀서 개념이 있다, YCAM이나 EMPAC에서도 기존의 기획자 역할에 더해서 예술가와 기획자 사이, 혹은 기술자와 예술가 사이의 역할을 수행한다.

D: 요즘 아이디어 공유 행사 같은 게 많다. 그런 곳도 예술가들과 연계되었으면 좋겠다. 지난번 MIT 워크샵도 더 많은 예술가들에 보여지면 좋겠는데, 디자이너나 기술자만큼 예술가들의 참여가 부족하다. 미디어아트에서 협업이라거나 통섭 같은 개념이 중요시되는데 실제로는 그 특징을 실현할 수 있는 행사나, 발현시킬 수 있는 환경조성이 부족하다. 또 그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J: 레지던스라는 형식도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작가에게 일정기간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수준이지만, 외국 같은 경우는 예술가 간의 교류 가능한 공간이다. 미디어아트에 적합한 방식인데 말이다. 학교에서도 가능할 테지만…

G: 올해 통섭이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과학과 예술의 융합과 같은. 한예종이나 카이스트에서도 그런 흐름이 있었다. 가령 조소과 출신의 미디어아티스트가 많은데 그 경우는 공학과 연계되어서 표현 확장이 이루어진 부분이 있다.

W: 정부의 정책을 통해 다른 학문 분야가 만날 때 장점은 분명 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작가들에게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다만 정책이 지속되지 못할 때의 그 폐해가 문제다.

J: 통섭에 관한 논의가 올해 특별히 새롭지 않았다. 통섭과 같은 흐름은 항상 단편적으로 지속되어 왔어요. 그런데 그러한 흐름이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단절되고 또 다시 시작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S: 영국의 경우 더글라스 고든 같은 경우는 군의 첨단장비를 지원받아 지단의 영상을 만들 수 있었어요. 미디어아트는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자본이나 권력의 제한이 많기도 하다. 가령 텔레비전 환경의 활용도 가능하잖아요. 파시즘적 속성을 드러낼 수 있는 거고, 인터랙션이 가능한 텔레비전도 응용할 수 있는데… 아직 미디어아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나 합의가 부족하다.

J: 외국 같은 경우는 예술 고유의 역할, 창작의 권리를 보장하는 역할을 국가가 하고 있다. 아트 카운실이라던가…

G: 아트카운실도 오랜 기간의 투쟁으로 현재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었다. 아직 우리는 그런 역사가 부족하다.

W: 그 문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 주도의 융합사업이나 통섭사업 외에 다른 부분도 이야기해 보자.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인터넷이나 모바일 환경은 참 좋은데, 그에 맞는 컨텐츠는 전무하다.

D: 시작부터 우리나라는 인터넷 소비국이었다.

I: 지금 아이팟에 제피라는 APP가 있는데, 자기가 그림을 그리면 어디론가 날라가고,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그린 그림을 받는다. 이처럼 작가는 툴을 만들고, 사용자는 이 툴을 통해서 예술적 교감을 할 수 있다. 이건 오픈된 정책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터넷이나 통신환경이 통신사 위주로 막혀있는 구조였다. 최근 있었던 서울버스라는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행정기관의 대응도 그런 면이 드러나는 예가 될 수 있겠다.

J: 새로운 미디어나 툴이 내 손에 있을 때 콘텐츠를 만들고 창의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을 보이는 게 미디어아트의 역할이다. 교육과 리터러시의 문제로 이어지는데, 그런 교육의 기회와 역할이 부족했다. 또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환경은 콘텐츠 생산에 대해 소홀하다는 생각이 든다.

D: 저작권 개념도 없다. 그 반면에 오픈소스라거나 자신이 만든 것들을 공유하려는 흐름도 미약하다. TED에서 본 어느 인도 기술자가 증강현실 부문에서 괜찮은 걸 만들었는데, 이걸 오픈소스로 만든다는 예도 있었는데 말이다.

J: 미디어아트에는 새로운 예술로서의 가능성도 있지만, 미디어아트를 통해 새로운 소통방식이나 지식이나 문화가 교류하는 방식으로서의 가능성도 있다. 2010년에는 미디어아트의 그런 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W: 과거 사람들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미디어 환경도 누구나 제작할 수 있다. 아울러 누구나 자신이 만든 것을 볼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이라는 것도 간과하면 안 된다. 창조 과정뿐만 아니라 전달하는 과정이나 소통하는 과정이나 환경에 대해 확장시켜 생각해야 한다.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폼을 생각한다면, 구현되는 환경이나 정책 등 여러 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저작권이나 교육 등의 화두도 함께 발전하고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래야 미디어아트가 현재 지닌 장점을 확장하고 단점들이 개선되는 보편적인 장으로 수렴될 수 있다.


마치며.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이제 정리해보자. 물론, 마지막 소주제인 '향후,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형식 / 발전가능성 모색'은 여전히 새로운 기술적 환경과 그에 연동되는 문화예술 정책에 관한 이야기기 때문에, 다양한 수준에서 보다 정밀한 분석과 예측이 필요하다고 본다. 본 라운드 테이블은 2010년을 맞이하여, 지난 2009년의 한국의 미디어아트의 상황을 돌아보는 데에 목적이 있었으므로, 마지막 파트의 주제는 새로운 2010년의 한국 미디어 문화 예술의 전개에 대한 기대감으로 또는 가능성으로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여전히 변화'가 필요한 국내의 상황(해외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에서 그러한 변화가 갑자기 진행될 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 공유하는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 조금은 과감한 시도 등이 필요할 것이다.


*** 본 라운드테이블은 실제 진행된 내용을 녹취하여, 1/3 수준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다소 축약되고 전제된 설명이 있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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