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영상과 소리 관계. 크리스찬 마클레이_exhibition

aliceon 2011. 2. 7. 17:09

사진 : leeum museum

Space
특정 형태의 작품은 작품을 감상하기에 이상적인 특정 환경을 가진다. 우리가 '화이트 큐브Whire Cube'라고 부르는 미술관 및 갤러리의 흰색 전시 공간은 회화, 조각 등의 작품이 가지는 분위기와 존재감을 이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상정된 공간이다. 리움미술관의 블랙 박스Black Box는 건축가 렘 쿨하스가 영상 매체 작품을 감상하는데 알맞은 어두운 공간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장소이다. 이곳은 그동안 리움 미술관 내 다른 공간과 연계된 기획전의 장소로서 사용되다가 최근 <블랙박스 프로젝트Black Box>라는 이름 아래 공간에 특화된 매체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 첫 발걸음인 이번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개인전 <소리를 보는 경험 What you see is what you hear> 전은 영상 작업들로 구성되어있다.



Artist
크리스찬 마클레 Christian Marclay 는 스위스 출신의 미국인 작가이다. 마클레이 작업의 주안점은 '보는 것을 들을 수 없는가' 라는 의문이었다. LP판, 즉 레코드판을 사용하여 즉흥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악보나 레코드판의 표지와 같이 '소리'를 떠올리게 하고 의미하는 '이미지'를 조각내고 붙이는 오브제 작업, 그리고 영화의 영상들을 소리와의 연결지점을 가지고 편집한 형상 작업을 진행해 왔다.

Artworks
블랙박스 프로젝트는 마클레이의 영상 작업 3개를 선보였다. 이 세 작업의 키워드는 사운드, 영상 그리고 편집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각 영상의 소스들은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들이다. 작가는 작품을 보았을 때 감상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로서 설명한다. 헐리우드 영화 이외에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등의 한국 영화들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또다른 소소한 재미였다.



<전화 Telephone(1995)>은 신호음이 울리면 전화를 받는 상황을 잡아내었다. 전혀 다른 시대와 다른 상황의 인물을 연결하여 소통하는 듯하게 교묘히 편집하였다. 이는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나누고, 끊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편집한 이 작품은 전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본질적 특성, 즉 소통매체로서의 전화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비디오 4중주(1999)>는 사운드-영상 양 자를 기본으로 한 편집의 절정을 보여준다. 마클레이는 700여개의 영화를 편집하여 4채널, 17분 길이의 작업을 보여주었다. 각각 3m, 총 12m의 스크린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수많은 영상 파편들은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각자의 소리-트럼펫을 불고, 비명을 지르고, 악기선을 퉁기고 피아노를 두드리며-를 보여준다. 처음 도입부에서 악기와 목청을 다듬는 것에서 시작해 다양한 악기들이 각자의 템포를 빠르게 하고,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커지며, 하이템포의 비명을 지르는 등 순차적인 절정으로 치닫다가 잔잔한 마무리로 끝나는 구성을 지닌다. 영상은 곧 그 영상의 행위, 음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수많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행위 영상들은 각자의 존재감을 뿜어내며 불협화음을 생성하지만 동시에 기묘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단연 <시계(2010)>일 것이다. 암실에 입장해 좌석에 앉아서 느끼는 맥락없는 단절의 영상은 시계의 연속적 등장, 그리고 이 시계가 실제의 24시간을 등가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깨달음에서 오는 경이를 가져온다.
단절된 수많은 영상클립을 연결하는것은 다름아닌 사운드이다. 전혀 다른 상황, 시대, 인물, 내용의 영상 클립들은 두서없이 오로지 시간이라는 선형적 평면 위에 주욱 나열된다. 이를 연결하는 것은 효과음과 배경 음악이다. 영상의 단절은 소리에 의해 융합된다. 사운드를 통한 연결이 작품을 완성시킨다. 시각중심의 환경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낯선 감각의 역전이다.



What you see = What you hear
이번 전시 제목은 소리를 보는경험, 그리고 What you see is what you hear이다. 보는 것 = 듣는것 이라니. 전시에 들어가기 전, 멀티미디어로도 느끼게 하기 힘든 공감각을 대체 어떻게 전통적인 싱글 채널 비디오를 통해 나타낼 수 있을까 의아해했었다. 그는 이 3개의 작업을 통해 시각이나 청각 어떠한 감각의 우위가 아닌 뗄 레야 뗄 수 없는 융합상황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업은 두 요소 중 어느 하나가 약하다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작업이다. 영상이 없다면 불협화음이었을 뿐이고, 사운드가 없었다면 영상클립의 짜집기일 뿐이었을 것이다. 두 요소가 한데 모여 있음으로서 그의 작업은 놀라운 일체감을 드러낸다.

그동안 미술 공간 내 영상 작품은 관람자가 보기에 상당히 불편한 형태였다. 영상이 지니는 시간은 감상자를 자리에 붙들고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주변이 격리되지 않아 끊임없이 유입되는 주변 요소는 작품을 감상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암실이라는 영상에 맞추어진 공간과 사운드 시스템을 완비한 상영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거장이라 불릴 수 있는 작가 마클레이의 사운드-영상 작업. 리움의 시도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전화 Telephone, 1995, video, 7'30" 중 일부

글. 허대찬(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