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분절된 현실의 이어붙임: 'Mise-en-Scène 미장센: 연출된 장면들'_exhibition review

kunst11 2013. 6. 12. 18:24


    '미장센(Mise-en-Scène)'은 무대예술인 영화와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연출상의 디자인 측면을 표현한다. 즉, 무대에 인물이나 사물, 조명, 의상을 어떻게 배치하는가란 물음에서 출발한 미학상 표현 개념이다. 미장센은 워낙 광범위한 뜻을 내포하므로 지금까지도 특별히 어느 한 가지 뜻만이 맞다고 정의되진 않는다.[각주:1]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미장센 - 연출된 장면들’전은 이러한 영화적 연출기법인 ‘미장센’을 소재로한 작가 8명의 영상, 영상설치, 사진 등 15점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초기 영화 배경이나 트릭샷에서 부터 매우 복잡한 특수 효과까지 미장센은 프레임 안에 위치한 요소들의 무한한 다양성을 제시함으로써 무한한 이미지를 재창조 할 수 있다.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공간, 다중시점 장면, 단순한 실제의 거리, 실제의 방, 실제의 공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혹은 작은 크기로 만든 실제 모형(특수효과 모형)같은 이러한 연출방식들은 영화적 형식이 되게끔 조명 기술, 카메라 워크와 결합하여 극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연출된 이미지는 픽션의 이미지로 가득한 시뮬라크르(simulacre) 공간이며, 현실 속 상상의 자유로움이 꿈틀대는 사이 공간을 매개한다. 

    그렇다면 미장센을 관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현실세계가 조작된 이미지들로 바뀌는 곳에서는 연출된 이미지들이 현실적 존재가 되고 또한 이미지의 한계를 넘어서 표현된 인물들이나 대상들의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새로운 도상을 제안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간구성 상 다양한 매개체들에 의존해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경향으로서 더 이상 세계를 직접 파악하지 못하고 ‘매개된 또 다른 세계’로 환기시킨다. 점철된 의식들 속으로 끊임없이 잠입해 오는 일련의 또는 무작위의 사건들, 그 낱낱의 사건들은 매개된 또 다른 세계로서 제시됨과 동시에 결국엔 우리가 볼 수 있는 현실 그 자체이자 ‘분절된 현실(fragmented reality)’로 도착한다. 연출된 이미지 생산의 특정 기술, 도구, 실행과정은 사진으로 재생되어 '거기에 있었음'이 분명한 지시대상물의 존재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보여줌과 동시에 실재를 가장한 조작된 이미지를 선사한다. 이러한 기술적 이미지의 증거적 측면은 다른 회화적 재현처럼 작가의 주관적 개입이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작가의 주관적인 상상적 재현이 실제 구체적 공간성을 지니는 조형적인 재현과 동일시 되면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 있는 3차원 공간의 건출물과 여러가지 요소들의 배치와 구성으로 고안된 공간은 한 프레임 한 프레임씩 원하는 만큼 창조적으로 조직되고 다양화될 수 있다. 이러식의 연출은 전적으로 가상적이고 허구적인 것이나 공간적 실재를 약간의 조작을 통해 오히려 실제를 벗어나게 하기도 한다. 때문에 이러한 구성주의적 시각은 실제적인 것의 이미지-스크린을 뚫고 그 틈새로 나오면서 탈현실화되어 또 다른 현실로 매개된다.

토마스 데만트 Thomas Demand_파이프오르간 Heldenorgel 2009
C-프린트/디아섹 240x380cm

1. 데만트의 사진은 현실공간의 오브제를 이용한 연출을 통해 가상의 공간을 연출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다시 재현함으로써 가상의 공간이 마치 실제 공간으로 존재하는 듯한 환영을 제시한다. 마치 회화적인 공간의 시각적 환영주의 속에서 리얼리즘의 흔적들을 남기고 환영주의적인 인식을 복합적으로 만들어낸다. 이것은 재현에 관한 문제로서 세계 내의 실제 사물을 모방하여 연출된 이미지가 결국엔 사물에 대해 지시적(referential)이거나 아니면 시뮬라크라한(simulacral) 것이 된다. 사진과 모형, 실재와 재현 사이의 관계에서 우리는 결국 환영적인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거나 그 사이의 틈 바구니 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맞이할 수도 있다.

아다드 하나 Adad Hannah
//////1초의 절반////////////Half a Second////// 2013
12개의 HD비디오와 모니터, 목재, 페인트, 섬유 등 가변크기

2. 아다드 하나는 공간구성과 영상의 관계를 연출된 이미지 속 인물들에게 집중하여 새로운 현실을 제시한다. 하나의 화면이미지를 실제 공간안에 배치된 12개 모니터로 분절시켜 우리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파편화시키고 새롭게 창조된 공간에 배치된 인물들의 심리극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12개의 이미지들은 장소에 의해 재규정되면서 주어진 장소에 순차적인 이동을 따라 그 심리적인 순간에 관람자가 상호작용하여 지각의 시간성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연출의 효과는 12개의 모니터를 따라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곳에 있는 무대세트같은 연극적 공간에 이르러 다시한번 실재와 허구 사이의 시공간을 구분해줌과 동시에 그 사이 매개된 공간의 간극을 상대적으로 위치시킨다. 결국 관객은 그 틈새 속에서 분절된 공간이미지 속 시간성을 체화하게 된다.

정연두 Jung Yeondoo
새–B 카메라 The Bird-B Camera 2013
이면화(Diptych) 사진 106×106cm

3. 정연두의 이번 작업은 영화의 한 장면을 재구성하는 이미지 연출의 방법에서 기계적 이미지와 수공적 이미지 그리고 인공적인 세트 사이의 구분을 전면에 노출하여 꼴라주처럼 이미지를 함께 결합시켜서 형태화하고 재조합시키는 사진 몽타주적 요소를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로만 작업을 하였다면 기법상으로는 이런 재료의 이질성을 시뮬레이션하고 컴퓨터에 의한 처리과정으로 인해 이음새 없이 가상적으로 무한히 이루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수공적인 이미지의 조합을 그대로 노출하여 가상의 연출을 통해 노릴 수 있는 실재같은 ‘리얼리티의 해체’를 의도적으로 노출하고 있다. 결국 연출된 구성물과 연출된 사진은 허구와 실제를 교차하고 있는 작가의 연출방법에 대한 탐구로 관객을 유도하며 이미지에 대한 신화적이고 노스텔지어적인 이미지의 시뮬라크라에 대한 반성을 제시한다. 

그레고리 크루드슨 Gregory Crewdson
장미 아래서 - 무제 Beneath the Roses - Untitled 2007

4. ‘사진 한 장짜리 영화’라고 불리운다는 그레고리의 작품은 작가가 연출가가 되어서 전문적인 스텝들의 도움을 받아 세트구성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촬영한 이미지를 디지털 기술로 가공하여 마치 사진이 아닌 회화 처럼 보이게 연출한다. 이처럼 가공된 이미지들은 실제 공간들과 인물들을 지시적이면서도 시뮬라크라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실제적이기도하고 가상적이기도 한 이미지 속 인물들은 마치 심리적 소외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주시하는 존재들로서 보여지는 우리의 페르소나(persona) 같은 존재로 위치시킬 수 있다. 작품 속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 사이의 거리를 통해서 우리들 각자에 내재해 있는 상상과 현실 사이의 심리적인 간극을 포착할 수 있듯이 말이다.

AES+F
트리말키오의 연회: 파노라마#2 The feast of Trimalchino: Panorama #2_2010
디지털 프린트/디아섹 120×255cm

5. AES+F의 디지털 이미지는 디지털기술을 적극 활용한 듯이 보인다. 서사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국적인 배경 속에 다양한 현실의 인물들을 합성시켜 만든 이미지는 디지털적으로 구성되고 조작되어 마치 하나의 거대 광고물을 보는 듯 하다. 이러한 스펙타클한 이미지는 고전회화에 나오는 구성주의적인 측면을 착실하게 따르면서 도상적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반면에 그 내재적인 구성 요소들인 인물들의 행위나 관계의 연관성은 몽타주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여주면서 환란적으로 보이고 불순해 보이는 불편함을 준다.


이브 수스만 Eve Sussman / 루퍼스 코퍼레이션 Rufus Corporation
알카자르의 89초 89 Seconds at Alcazar 2004
비디오 10:00 반복상영

6. 이브 수스만과 루퍼스 코퍼레이션의 <알카자르의 89초>는  유명한 고전주의 시대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각주:2]를 차용한 영상 작품이다. 벨라스케스의 작품 <라스 메니나스>는 첫 눈에도 매우 특이한 작품인데, 이 그림에 묘사된 이미지는 무대 뒤에서 바라본 궁정의 모습을 담은 일종의 풍속화이다. 이 작품에서는 왕궁의 주인인 필립 4세와 그의 아내 안나의 모습이 정작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화폭 속의 공간이 아니라 뒤의 벽면에 붙은 거울 속에 희미하게 존재한다. 작품 속에서 거울은 대상들을 반복하여 보여주는 매개체로 등장하고 그림이 설정하고 있는 공간 밖에 서 있는 왕과 왕비의 존재만을 암시한다. 그림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시선, 그 모든 과정을 바로보고 있는 왕과 왕비의 시선 등 이 작품에는 세 개의 시선이 교차한다. 이러한 파편적인 지각의 문제를 이브 수스만은 영화로 재현하여 전통회화와의 연결고리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명화 속에서는 그림 밖의 공간에 위치한 왕과 왕비를 그 중심에 놓고 흐르는 카메라 앵글은 벨라스케스의 명화가 보여주는 이미지 속 상황을 지속적으로 연출하고 각각의 인물들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현한다. 이렇게 재현된 영화는 명화 속 가시적 대상들 - 화면에 존재하는 모든 인물들 -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더불어 공간적인 문제를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재현에 대한 재현 속 공간’에 우리를 머무르게 한다. 결국 이러한 공간성은 관객이 주체가 되어 재현 속 세계와 실제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더불어 유명한 명화를 재현한다는 유희적인 측면까지 선사한다.

양푸동 Yang Fuddong
다섯번째 밤 The Fifth Night 2010
7채널 비디오 설치 10:37 반복상영

7.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상해영화제작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면을 여러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한 작품은 전시장에서 가로 폭 17미터에 이르는 7개의 스크린에 펼쳐진다. 확장영화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각각의 스크린에 다른 앵글로 촬영한 공간과 인물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관객은 각각의 스크린 속 이미지들을 관찰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물리적으로 어려움을 가진다. 인간의 기본적인 물리적인 시각장에 다 들어오지 않는 여러 채널들을 설치하고, 단조로운 반복 영상이 아닌 여러 시퀀스를 이루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의식적으로 개입하게 하여 관람자들의 지각경험은 분산적이고 능동적인 시각 편집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파편화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구조를 해체하여 제시하고 있다. 결국 파편화된 각각의 이미지는 나름의 각기 다른 스토리와 해석을 가지게되며 그 몫은 관객의 시선으로 다양해진다.

진기종 Zin Kijong
미장센 Mise-en-Scène 2013
2채널 비디오 설치 가변크기

8. 진기종은 작품 타이틀에 직접적으로 ‘미장센’을 드러내면서 모형을 만들어 촬영하는 실시간 영상의 과정을 통해서 연속되는 장면구성의 연출을 표현한다.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과 보여주는 과정을 동시에 드러냄으로써, 관객은 리얼리티로 무장한 허상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현실을 압도하는 조작된 리얼리즘은 위장된 가짜(모조)인 모형들과 기술의 조작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의 이미지가 왜곡과 조작의 시스템 속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도록 하고 이러한 이미지 세계를 의심하게하고 실재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보고 또한 보고 있는 것을 인식한다. 우리의 시각은 우리가 객관적 사실이라고 인식했던 경험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해석한다. 디지털 혁명이후 대부분 디지털 기술로 인해 사진가와 영화감독은 그들이 늘 해오던 작업을 보다 확실하고 빠르게 조작가능하게 되었다. 한 개의 키를 누르면 새로운 것이 옛 것을 대체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변화는 어떤 추적가능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회화와 사진의 일반적 구분을 흐릴 뿐만 아니라 기계적 이미지와 수공적 이미지 사이의 구분 마저도 모호하게 만든다. 이러한 환경에 처한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시뮬라시옹의 세계처럼 말이다. 연출된 이미지든 아니든 간에 이미지를 본다는 것은 우리의 눈이 머무는 것, 때로는 지나쳐버리는 것 사이에서 오는 진짜와 가짜 사이의 매개된 그 어떤 지점에 놓인 무언가의 세계를 가정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대상과 인물, 사건들의 이미지들을 세세하게 분석하여 하나의 정보값을 처리하는 과정으로만 본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상상이라는 환영적 요소의 유희를 즐기기도 전에 과잉되는 이미지 정보값에 의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생각하는 것과 심지어 상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조금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우리를 이루고 있는 세계에 대한 반성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새로운 재현들 속에서 세계는 드러나고, 새로운 지각들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스펙타클한 환상 속에 머무를 수 있게 된다. 분절된 현실을 이어붙임으로써 또 다른 세계를 매개하듯이.

                                                                                                                          

글. 정세라 (앨리스온 편집위원 / sera.j1124@gmail.com )


*<Mise-en-Scène 미장센: 연출된 장면들>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기획된 전시로 2013.3.28 - 6.9일 까지 진행되었습니다.





  1. wikipedia 참조 [본문으로]
  2.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 걸작이자 스페인 황금기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작품. '라스 메니나스'는 '명예로운 시녀들'이라는 뜻이며 궁정화가인 밸라스케스의 화실을 방문한 펠리페 4세의 딸인 5살 마르가리타와 시녀들을 그린 초상화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