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Sight Unseen (보이지 않는 시각)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_exhibition review

yoo8965 2013. 6. 26. 18:37


1.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마주할 때 무엇을 생각하며 보는가?

마주한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온 친구의 사진일 때와 전시장에 걸려 있는 작가의 작품 사진일 때, 우리는 각각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사진을 보게 된다.

일상의 공간에서 사진을 보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사진을 볼 때 사진의 ‘예술적 의미’를 고려하며 사진을 본다. 우리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상당한 ‘선입견’을 가지고 사진을 보게 되는 것이다.


Bruce Hall _Big Splash, 2013



우리 앞에 한 장의 사진이 놓여 있다.

한 명의 어린 아이가 야외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다. 튀겨진 물방울이 고속의 셔터스피드로 포착되어 매우 역동적으로 화면 전체를 수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앙에 위치한 어린 아이의 자세나 표정 역시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있다. 매우 잘 찍은 한 장의 스냅 사진이다.

이 사진은 미국의 사진가 브루스 홀이 촬영한 사진이다. 브루스 홀은 시각장애인이다. 그리고 사진 속 모델은 자폐증 환자인 자신의 아들이다.

다시 한 번 사진을 보자.

우리는 이제 무엇을 생각하며 사진을 보는가?


2.

세종문화회관에서 4월 18일부터 6월 3일까지 열렸던 <보이지 않는 이들의 시각Sight Unseen>은 11명의 시각장애 사진가들이 제작한 119점의 대표작들을 모아서 전시하는 국제 순회전이다. 한국에서는 브루스 홀의 신작 2점이 추가되어 총 121점의 사진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앞에서 본 사진이 브루스 홀의 신작 2점 중 하나이다.

이 전시의 큐레이터 더글러스 맥컬러우(Douglas McCulloh)는 이 전시가 “‘시각장애 사진가들이야 말로 가장 꾸밈없고 명확한 시야로 촬영한다’는 역설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색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고 말한다.

전시는 크게 3가지 구성으로 되어 있다. 3가지 구성의 소제목은 각각 ‘보이지 않음을 쏘다’, ‘우리가 지닌 시각장애에 대해서 눈감다’, ‘시력을 넘어서다’이다.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각장애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이해하고 볼 것인가를 중심으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전시장 구성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발견하게 되는 작업 경향은 크게 두 가지이다.


Gerardo Nigenda_The harmony of silence with the movement of water leads to serenity



첫 번째는 사진 매체에 대한 개념적 유희를 통해 진정한 시각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헤라르도 니헨다(Gerardo Nignda, 멕시코)는 사진을 촬영하여 인화하고 그 위에 점자 글을 타자기로 쳐서 작품을 완성한다. 점자 글의 내용은 사진을 촬영할 때 니헨다가 느꼈던 감정들이다. 니헨다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과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함께 해야만 한다. 니헨다의 작품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니헨다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사진 위에 입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점자의 구성은 매우 시각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점자를 읽을 수 없는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그의 작업은 충분히 ‘시각적으로’ 흥미롭다.


Rosita Mckenzie_Calton Hill


한편, 로시타 맥킨지(Rosita McKenzie, 스코틀랜드)는 먼저 사진을 촬영하여 인화한 사진을 걸어둔다. 그리고 동일한 사진을 만질 수 있는 엠보싱 프린트로 만들어서 함께 전시한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카메라와 렌즈 앞에 놓여 있는 모든 대상을 가감 없이 기계적으로 기록한 결과물이다. 맥킨지는 일러스트레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사진 속 대상들 중에 일부는 제거하고 중요한 대상은 남겨서 만질 수 있는 엠보싱 프린트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관객은 엠보싱 프린트의 작품을 만져보면서 맥킨지가 촬영한 사진을 촉각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맥킨지는 정상 시각을 가진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는 전시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맥킨지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입장이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시각장애 사진가들이 개념적인 사진 작업을 할 때, 그들이 강조하게 되는 것은 정상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진정한 소통’이다. 사진을 촬영하여 전시한다는 것은 전시를 통해 자신의 사진과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겠다는 목적의식의 발현이며, 그들은 개념 예술의 입장에서 사진 매체를 이용하여 이것을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개념적인 작업은 시각장애인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적 환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연 진정한 시각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정말 제대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인가?


두 번째 경향은 시각 장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것이다.

브루스 홀(Bruce Hall, 미국)은 안구진탕증, 근시, 난시, 약시, 시력 감퇴 그리고 외사시와 같은 다양한 눈 질환들을 갖고 태어났다. 법적 시각장애인인 홀은 보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다. 홀의 잔존 시력은 매우 미약하나 고해상도 모니터에 이미지를 띄우고 돋보기를 대고 보면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을 사진으로 촬영해 모니터로  보는 것이다. 홀에게 있어 카메라는 눈과 같은 존재이다. 홀은 자신의 자폐증 아들을 사진으로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촬영한 사진으로 수중 세계를 본다. 홀은 세상을 거의 볼 수 없지만, 홀의 사진은 놀랍게도 매우 사진적이며 시각적이다. 그의 시각 장애는 긍정의 예술로 승화되고 있다.


Kurt Weston_String Theory - The Space Between Us


커트 웨스턴(Kurt Weston, 미국)은 1991년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을 진단받고 1996년 바이러스로 인해 시력에 손상을 입었다. 웨스턴의 왼쪽 눈은 이제 전혀 볼 수가 없다. 웨스턴의 작업 대상은 시각 장애를 갖게 된 자신에게서 시작되었으나, 이제 노화에 의한 육체적 쇠퇴로 확장되었다. 웨스턴은 평판 스캐너 위에 반짝거리는 은사를 뿌리고 자신의 얼굴을 스캔함으로써, 시력을 잃어가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대상과 주제의 확장을 통해 웨스턴은 이제 임종이 임박한 노인들의 얼굴을 평판 스캐너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록은 곧 인간의 육체적 종말에 대한 기록이다. 시력을 잃기 전에 패션 사진가로 활약했던 웨스턴의 이력은 흑백으로 대비되는 강렬한 표현력으로 드러나고 있다.

세상을 조금은 볼 수 있거나, 정상적인 시력을 가졌던 작가들은 시각의 상실로 인한 자신의 정서적 상태를 예술의 형태로 승화하고 있다. 예술적 승화만이 그들의 장애로 인한 상실감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관객에게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효과적이며, 완성도 높은 작품성이 관객과의 공감을 예술적 승화로 이끌고 있다.


3.

시각 장애 사진가들의 전시라는 정보를 접하고 이 전시를 본다면, 관객은 전시된 작품들을 보며 많은 의문과 감탄에 싸이게 될 것이다. 먼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시각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시각 장애 사진가들이 놀랍게도 그것을 해내었음을 인정하고 나면, 그들이 정상 시각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시각 예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진보를 보여주고 있음을 깨닫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본인은 사실 이들의 작업에 대한 의문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지는 못하다. 법적 시각장애인 사진가를 제외하고, 전맹인 사진가들의 경우, 자신들이 촬영한 사진을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무엇이 어떻게 찍혀 있는지’ 설명을 듣고 그 설명에 기초하여 사진을 골라서 작업하고 전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진은 너무나도 시각적이며 사진 프레임 안의 피사체들의 구성은 너무나도 완벽하다. 한 주제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셀렉트’라는 에디팅 개념은 현대 사진 예술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부분이다. 볼 수 없는 사진가들의 ‘셀렉트’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하지만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업은 놀랍도록 뛰어나서 충분히 받아들이고 향유할 가치가 있다. 전맹인 니헨다와 맥킨지의 작업을 보라. 그들이 던지는 시각에 대한 개념적 사유는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예술가로서는 미처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들의 작업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시각 예술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그들의 작품과 전시는 시각 예술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하고 있다.


글. 정현목 (홍익대 사진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