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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의 영상문화'는 무엇인가?


본 컬럼에서는 근대의 영상문화 가운데서 주로 마술 환등(magic lantern)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양에서 대략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 말까지 성행했던 마술 환등은 영화 영사기의 직접적인 선조(前身)로 여겨지는 영상기구로서 映像史 연구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남아있다. 르네상스 이후 17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에 해당되는 ‘근대에는 영상과 영상을 보는 문화가 있었나?’ 하는 질문이다. 영화를 기준으로 볼 때 이것은 ‘영화 발명(1895) 이전에 영상이 존재했는가?’ 하는 문제이며, 映像史 연구가 매우 미진한 국내에서 이런 질문은 대단히 생소하게 들린다.


그러나 유럽(특히 영국/독일/프랑스/이태리)에서는 ‘영상의 역사’(History of Moving Image)에 관한 연구서들이 여럿 나와 있고, 전시회도 종종 열린다. 학계에서는 ‘영상의 기원과 발전과정’, ‘영상매체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이런 주제의 전시회들이 여러 박물관에서 열리며 우리 시대에 필요한 영상교육에 기여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오늘날 우리의 일상 문화에서 주요 요소가 되어버린 ‘영상’을 다시 되돌아보고, 정확하게 알아보려는 시도이다. 사실, 영상에 대해서는 문학이나 미술 음악의 역사에 비해 매우 미흡하게 알려져 있어, 앞으로 탐구 대상, 시각 매체 및 시각 문화의 발달과 연결되어 있어 매우 흥미로운 테마이다.


그러면, 이번 컬럼의 주제인 <근대 마술환등의 영상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역사 속에서 시간ㆍ공간적 좌표를 설정하고 映像史에서 맥락을 찾아보자. 카메라의 원형이자 마술 환등의 선조격인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의 원리는 17세기 중엽 이후 과학적 원리가 발전되었다. 어두운 상자 속에서 빛을 밝혀 그림을 확대하여 보는 그림상자(peep box)가 18세기 후반부터 사용되었고, 유리 슬라이드를 통해 그림을 보는 마술 환등(magic lantern)도 유럽에서는 18세기 말부터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으며 19세기에는 폭넓게 사용되었다. 이와 더불어 19세기 중반이후 사진술(photography)과 필름의 발달에 이어 19세기 후반에는 동영상 기구들이 발달되었으며, 19세기 말엽에 영화 영사기(cinematographe)가 탄생되었다. 사실상,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듯이 보고 즐기고 있는 ‘영상’은 17세기부터 최소한 250여년, 길게 보면 400여년의 역사 동안 점진적으로 발달되어 오며 실현된 것이다. 또한, 영상문화의 발전에는 科學史와 文化史가 결합되어 있는 있음을 알 수 있다.


2. 카메라 옵스쿠라와 그림상자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는 ‘어두운’(obscura) ‘방’(camera)라는 暗室을 뜻하며, 외부의 이미지(像)를 암실 상자 속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기구이다. 즉, 기독교적 세계관과 해석에 종속되었던 중세 시각을 벗어나서 인간이 관찰자로서 스스로 세상을 인지하려는 점에서 인간이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를 하려는 매체이다.





요하네스 차안(Johannes Zahn)의 카메라 옵스쿠라 (1685)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를 바탕으로 어두운 상자 속에서 그림을 보는 그림상자(peep box/peep show)가 18세기 후반이후 발달되었다. 그림상자는 외부의 이미지를 상자 속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기구로서 먼 세계, 이국적 풍경에 대한 모습 등을 보여주며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3. 마술 환등의 환영세계


독일의 예수회 교단의 사제이자 수학자 철학자이었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 1601-1680)는 환등의 원리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저술 《빛과 그림자의 위대한 마술》(Ars magna lucis et umbrae, 1671)에서 렌즈의 성질, 슬라이드 투영의 효과, 환등의 원리와 개요에 대해 설명했다. 사실은 이보다 조금 전에 네덜란드의 物理學者 크리스티안 후이겐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가 마술환등 기구를 구성했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어두운 실내 공간에서 밝은 바깥의 이미지를 보게 하고, 마술 환등은 밝은 실내 공간으로부터 어두운 주변에 설치된 스크린 위에 이미지를 투사하므로, 훗날 이 두 기구의 결합에서 영사기가 탄생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작동하는 환등기가 제작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키르허의 마술 환등 <빛과 그림자의 위대한 예술>
(Ars Magna lucis et Umbrae>(1671)



이후 유럽에서는 슬라이드를 환하게 비추며 영상을 보여주는 환등술이 발전되었는데, 슬라이드를 지렛대나 톱니바퀴로 이동하게 함으로써 환상 효과를 증대시키기도 했다. 그후 18세기에는 유랑하는 예능인들이 더 개발된 환등기를 들고 다니며 일반 민중들을 상대로 ‘보고 들려주는 오락물’을 제공했다. 이런 환등술은 ‘마술적 영상’(magic image)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라고 불렸는데, 민중들은 非現實的인 환상을 보여주는 마술 환등의 경이로운 매력에 사로잡혔다.


벨기에의 에틴-가스파르 로버트슨(Etienne-Gaspard Robertson)는 1790년대에 실내 무대에서 환등 기법을 이용하여 공중에 떠나니는 유령과 귀신을 출현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공연에는 많은 관객이 모여들어서 런던과 에딘버러, 뉴욕에서 모방 공연이 연이어 있었고, 그는 스스로 1825년과 1834년 미국으로 원정 공연을 가기도 했다.




유럽에서 1800년대 초반 이후 제법 성행하기 시작한 마술 환등(magic lantern)은 근대 영상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마술 환등 상연에는 유령을 보여주는 공포 영상, 동화적 이야기나 성탄절 때의 이야기에 관한 영상들이 보여지며 인공적 이미지의 세계를 제시하며 많은 시민들에게 오락을 제공했다. 영상기구들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 세계에서 간과한 것이나 숨겨진 것’, ‘먼 곳에 있는 것’, 즉 異國的 風物 등을 환등기 映像을 통해서 보고자 했다. 근세의 시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의 세상 지식과 기록은 世人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5. 19세기 후반의 動映像 기구


19세기 중반 이후 사진술이 발달되었고, 19세기 후반에는 움직임(movement)을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동영상 기구들을 거쳐 뤼미에르의 영화 영사기(cinematographe)가 탄생하게 되었다.





글. 이상면(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 연구소) zenit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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