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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게임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III: 커뮤니티의 변화, 생태계의 확장 _voice

로아 2019. 12. 9. 18:57

 

14. 사실 이런 게임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게임은 아니다. 상처 받는 게 취향인 사람도 있겠지만 극소수일 테고, 최단기간 ‘클리어’하는 고수를 위해서 게임을 개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각도에서 응시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첫 번째 조우에서 보는 게임은 스포츠로서 제시됐다. 그러면 두 번째 조우에서 게임은 어떤 것으로 제시될까. ‘엔터테인먼트’다. 게임이 재미가 없어도 보는 것이 재미있다면 방송플랫폼에서 통하지 않을까. 이것은 게임방송을 보는 시청자의 쾌락과 연결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 게임방송은 그 ‘노력’을 제거한다. 게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어려운 게임을 하면서 ‘멘붕’에 빠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밋거리다. 이 지점에서 스트리머의 역량이 드러나고, ‘엔터테이너’로서 스트리머의 지위가 형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15. 여기서 또 한 가지 고려할 대상은 커뮤니티다. 기존의 게임커뮤니티는 게임의 정보를 집적하고 교환하는 게 중심이다. 텍스트를 통해서 정적인 소통으로 이뤄진다. 한국의 경우 인벤(www.inven.co.kr)이 대표적이고, 해외는 커뮤니티사이트 레딧(www.reddit.com)이 유명하다. 새로운 게임이 나왔을 때 사용자들은 게임을 접하며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 구할까. 물론, 공식 게임 홈페이지에서 찾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사용자들이 직접 경험하며 획득한 체화된 정보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후발주자였던 웹진 인벤이 선두주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라. 당시 최고 인기게임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집적하면서 사용자의 구미를 당겼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견고하게 유지됐던 이 체계는 방송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구태여 게임 외부에서 정보를 얻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점차 닥친 것이다. 2013년 출시된 <도타 2>는 처음으로 게임 내부에 시청기능을 넣었다. <도타 2>는 100여명이 넘은 영웅이 존재하고 영웅마다 스킬이 다르다.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영웅 하나하나 검색하고 스킬이 무엇인지 아이템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도타 2>는 전과 달리 게임외부에서 정보를 구할 필요가 없다. 시청기능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영웅이 있다면 고수들의 경기를 찾아서 보면 충분하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아이템을 사용하는지 눈으로 즉시 확인할 수 있다. 내부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물론, 방송 때문에 기존의 커뮤니티가 완전히 소멸되진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등장했다고 해서 라디오가 사라지진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매체는 옛날 매체를 쓸모없게 하지 않으며, 체계의 다른 자리를 할당한다.” 

16. 방송을 통해서 구축되는 커뮤니티는 기존의 텍스트 중심의 정적인 커뮤니티와 달리 동적인 성격을 띤다. 이른바 팟수로 트수로 불리는 시청자는 개인방송 플랫폼을 통해서 스트리머와 직접 소통하며 실시간 커뮤니티를 게임의 안과 밖에서 구축한다. 여기서 소통의 매체는 전과 달리 말(채팅)이다. 그들은 서로 말을 하면서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면서 게임의 내부와 외부에서 실시간 (순간적)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사실 보는 것만 생각하면, 방송에 적합한 장르는 명확하게 선별된다. 우선 저변이 확보되어 있으며, 스포츠처럼 규칙이 단순하고,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며, 보기만 해도 과정과 결과를 알 수 있는 게임이 유리하다. 이나 <도타 2>가 오랫동안 트위치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바로 그 이유다. 위에서 열거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MMORPG는 보는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 오래된 게임이며, 그 탓에 게임이 복잡하고, 핵심콘텐츠 레이드는 너무 오래 걸린다. 대체로 시청하기에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 그런데 <로스트아크>의 사례를 보면, 시청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 가능성은 앞서 살펴본 퀸69의 방송에서 드러난다. 여기서 시청자는 게임의 안과 밖에서 게이머의 지위를 오고가며,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구축한다. 스트리머는 방송에서 처럼 극단적으로 보는 게임의 성격을 보여주진 않지만, 게이머-리뷰어-엔터테이너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17. 이상과 같은 현상들 외에도 방송이 게임생태계에 끼치는 변화는 존재한다. 첫째 방송은 이제 게임의 외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내적인 콘텐츠로 간주된다. 이것은 최근 OGN과 라이엇게임즈가 리그운영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던 사건에서 확인된다. 한국은 이스포츠의 개척자로서 지금까지, 리그운영 프로구단 관련 제도 등 선도적인 체계와 제도를 구축했다. 여기서 방송사의 역할은 지대했다. 방송사가 주도적으로 해당 게임의 리그를 조직해 직접 운영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 관례는 게임사가 리그운영을 직접 하는 형태로 바뀌면서 깨지고 있다. 이것은 게임사가 이스포츠를 포함하는 방송까지 자사의 자산으로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스포츠의 가능성이 게임의 지속성을 담보한다는 것. 장수하는 게임들이 모두 이스포츠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스포츠를 잘 운영하는 게임들은 게임의 지속성이 보장된다. 은 권역별 리그운영과 롤드컵을, <도타 2>는 다양한 개별 프로모터와 The International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도타 2>는 개인프로모터가 존재하며, 각기 독립적으로 리그를 운영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리그는 게임 내에서 여느 스포츠처럼 티켓을 구매해 시청할 수 있다. 밸브가 직접 주관하고 사용자의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운영되는 The International의 경우 2018년 상금이 2천5백5십만 달러, 한화로 무려 280억에 달한다. 최근 에픽게임즈의 <Fortnite포트나이트>가 한국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한국의 사용자의 참전을 독려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포트나이트>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지만, 한국에서 성적은 신통치 않다. 한국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게임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맞지만, 사실 시장으로서 매력은 상당히 떨어진다. 시장도 작으며 선점한 게임이 해당장르 게임의 성장을 쉽게 막기 때문이다. 요즘 주춤하긴 하지만 <배틀그라운드>의 인기는 여전하다. 이러한 현실을 모를 리 없는 <포트 나이트>가 지스타의 메인 스폰서를 맡는 등, 공격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에픽게임즈는 총상금 1억 달러를 내걸고 2019년 포트나이트 월드컵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스포츠 강국 한국의 참전을 유도하는 동시에, 이스포츠에서도 딱히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배틀그라운드>를 확실하게 밀어내고 생존형 배틀게임 스포츠시장을 선점할 의도가 아닐까. 

18. 지금까지 지적한 사항들은 그래도 게임의 외적인 측면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방송은 어쩌면 게임자체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개발자들은 트위치가 싱글플레이어 게임을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Developpers Say Twitch is Hurting Single-player Games.” 골자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스토리 중심의 싱글플레이어 게임의 경우 트위치나 유투브의 방송 때문에 게임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행태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화가 재미있어도 두 번 보는 경우는 드물다. 트위치에서 유명 스트리머가 플레이한 게임을 봤던 시청자가 게임을 구매해서 할 것인가. 이보다 강력한 스포일러는 없을 것이다. 방송을 통해서 게임을 하고 싶게 하는 게임도 있지만 반대도 있다. 그래서 <페르소나 5>는 엄격하게 스트리밍제한을 걸었으며, 위반했을 경우 제재를 가하고 있다. 방송이 구매력을 감소시키는 게 확실하다면, 게임사로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스트리밍을 제한하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겠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 생각한다면 이러한 게임을 아예 개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높다. 장르자체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 현재 게임을 둘러싼 매체지형은 급격하게 재편됐다.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또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책의 측면에서 몇 가지 생각해 볼만한 것은 우선 다음과 같다. 첫째 게임의 방송과 소비는 국경과 무관하게 이뤄진다. 예전 스팀게임의 심의문제가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라. 오늘날 사용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각종 수단을 동원하여 구매하여 소비한다. 이 상황은 <로스트아크>에서 봤던 것처럼 개발사의 의지와 무관하다. 제도든 규제든 글로벌 차원의 대응을 고민해야 하다. 둘째 통합매체적 관점이 필요하다. 현재 게임을 포함한 매체는 여전히 급변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흡수하며 예상치 못하는 변화를 끊임없이 끌어내고 있다. 여기서 게임이 근간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게임을 중심으로 법과 제도의 개선을 주도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셋째 방송과 관련된 규제가 게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실제 여성가족부는 인터넷 개인방송 ‘성차별’ 규제 지침을 마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넷째 저작권 문제가 새롭게 논란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스트리머는 게임이란 지적 자산을 통해서 방송・제작하여 수익을 얻고 있다. 방송을 통해서 게임의 구매나 소비가 촉진되는 경우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반대라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페르소나 5>는 제한을 걸었지만, <갓오브워>처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여기서 소비자의 권리나 공연권 등, 새로운 형태의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글. 김상우. 앨리스온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