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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사회, 확장하는 예술, 그 속의 창조자들 #2] MAAP: 아시아 태평양의 관점으로 아시아의 미디어아트를 추적하는 여정, 킴 마찬 _voice

aliceon 2020. 1. 17. 09:00

2000년 전후에 미디어아트 관련 일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작가들의 전시 이력에서 MAAP라는 이름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MAAP는 Media Art Asia Pacific의 약자로, 1998년 처음 설립될 당시에는 Multi -Media Art Asia Pacific의 약자로 쓰이기도 했다 호주의 브리스번에 위치한 기관이지만, 지금까지 MAAP의 프로젝트는 호주뿐 아니라 싱가폴, 중국, 한국 등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걸쳐 진행돼 왔다. 한국에서는 2014년 아트선재센터를 비롯한 이화익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등 삼청동 일대에서 LANDSEASKY라는 쉴파 굽타, 얀 디벳, 정연두, 심철웅, 김수자, 왕 공신 등이 참여한 페스티벌 형태로 조직했다. 

 

MAAP 웹페이지

 

MAAP(www.maap.org.au)을 설립하고 운영해온 것은 킴 마찬(KIM Machan)으로, 킴은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MAAP의 운영과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MAAP에 대해서 오랫동안 들어왔지만, 정작 누가, 어떻게 운영하는지는 잘 몰랐다가 2014년 2월, 서울에서 LANDSEASKY가 진행될 때, 멀티텍의 엄현수 테크니션의 소개로 처음 킴을 알게 되었다. 변지훈 작가와 김기철 작가의 전시이력에서 MAAP를 본 적이 있다고 얘기를 건냈고, ‘아시아 태평앙 지역의 미디어아트’라는 거대한 이름을 한 사람의 큐레이터가 운영한다는 사실에 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아트센터 나비에서 호주와 공공 장소에서의 프로젝션에 대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호주의 미디어아트가 발달된 편이라고, 기술적으로도 선진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KIM도 원래부터 호주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킴은, 그녀의 이름인 'KIM'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성씨이기 때문에 예전에 어느 한국 작가님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 후보로 추천해주셨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성이 김이고, 이름이 마찬이라고 유쾌하게 웃었다. 사실 킴은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다가 호주로 이주해서 정착하였는데, 비엔나에 머물던 20대 시절, 미디어아트의 실험적 활동들을 경험하고 거기서 가능성을 발견하였다고 했다. 

 

킴 마찬(Kim Machan)

 

그 후로 종종 서울을 방문할 때 만나거나, 이메일을 통해 자료를 교환해왔는데, 2017년 12월 초 서울에 온 킴은, 박사과정에서 <동아시아의 비디오아트>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고, 연계하여 한국과 중국 등에서 전시와 학술행사를 조직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러 개의 미술관이 함께 조직해야할 만큼 거대한 사업인 것 같다고 했더니, 그래서 미리, 시간을 오래 두고 준비할 것이며, 꼭 관련된 책을 출판할 것이라고 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나온 미디어아트의 역사나 미학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 유럽 중심으로 쓰여지기 때문에, 아시아의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거나 혹은 간략이 다뤄지고, 더 심한 경우, 그들의 관점에서 왜곡되기 때문에, 꼭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관점에서 서술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관련해서 중국, 한국 등의 주요 작가와 대표작을 연구하고 있었고, 예산과 공간 등 전시 실행을 위해 오랜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준비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 대만, 중국에서 과학과 예술의 결합이 미학적 동인에서라기보다는 산업의 관점, 혹은 국가나 도시 브랜딩 측면에서 단기간에 새롭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에서 시도되는 사례가 많다 보니 성급하게 추진되고, 작가들의 미학적 고민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공감하기보다 급히, 표면적으로, 과도한 낙관론에 기반한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킴은 중국의 장 페이리나 한국의 박현기 같은 초기의 실험적 비디오 작품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올 11월, 과천관에서 열린 <비디오아트 7090>와 <김순기:게으른 구름>전 등 전시를 보기 위해 다시 서울에 온 킴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카페 그라노에서 그간의 활동들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Paul Bai, Ji-Hoon Byun, *Candy Factory, Shu Lea Cheang, Xing Danwen, Kim Kichul, Yves Klein, Paul Lincoln, Marcus Lyall, Tim Plaisted, Grant Stevens, Tsunamii.net, Tan Teck Weng, YOUNG-HAE CHANG HEAVY INDUSTRIES

 

킴과의 대담

 

1) 2000년 초반에는 인터랙티브 아트나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아트가 발표되고 이해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MAAP를 설립해 주도적으로 장을 만들어왔다. 2004년 싱가폴미술관에서 열린 MAAP 2004에서는 슈레아 챙, 장영혜중공업, 이브 클랭 등과 함께 한국의 변지훈, 김기철이 참여했다. MAAP를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추구하는 비전, 주변 환경, 미디어아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A. 2000년 초반에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낙관이 있었고, 다들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새롭게 영역을 확장하고 도전하는 작가들과의 작업이 즐거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기술적 혁신을 넘어서는 의미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기술적으로 화려하고 스펙터클함을 추구하는 것에 오히려 반발이 들었다. 오히려 기술을 적게 사용하더라도 미학적으로 혁신을 이룬 중국의 초기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작품, 장 페이리의 작품이나 박현기의 실험적 작품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별도의 펀드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MAAP를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멀리 내다보고 계획을 짜고, 관계를 맺고, 준비해오는 방식을 취해왔다. 나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좋은 협력자들과 함께 하면 실현해올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국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과 일해왔지만, 가장 의미 있는 협업은 상하이에서 장 페이리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공동체이고, 그들과 함께 교류하며 전시를 준비하는 일에서 큰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다. 

 

김기철, Sound Drawing, 《2004 MAAP Singapore: Gravity》전

 

2) 오랜 기간 변지훈, 김기철, 정연두 같은 한국작가, 아트선재센터 등과 같은 기관과 교류해왔다. 그간의 경험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가. 특히 어떤 작가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가. 

 

A. 싱가폴에서 2004년에 MAAP를 개최할 때, 변지훈과 김기철 모두 젊은 작가들이었다. 기술적으로도,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가들이었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일이 즐거웠다. 한국 작가 중에서 박현기의 작품에 관심이 있다. 과천관에서 그의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 실험성과 도전정신이 매력적이었다. 김수자, 김순기 등 여성 작가에 대해서도 연구 중이다. 

 

3)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한다면? 동아시아의 비디오아트에 대한 책, 전시,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중국에서 전시와 연계된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작가로는 박현기, 김순기 등이 포함될 예정이며, 전시와 연계해서 개최할 심포지엄과 책에서는 아시아의 관점, 특히 아시아에서 직접 활동해왔던 작가와 연구자들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기록하는 데 중심을 두고 있다. 

 

4) 중국의 기관들과 협업하는 일이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의 여러 도시에 있는 미술관과 협력하였고, 특히 국가미술관에서 열린 뉴미디어 트리엔날레에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고 계속해서 협력해오고 있는데, 비결이 무엇인가. 

 

따로 비결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꾸준히 준비한다. 공감하고, 연구하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알아온 좋은 작가들이 도와준 덕분이다. 중국에 가게 된다면 알려달라. 만나야할 사람, 가야할 곳을 알려주겠다. 작가들이 운영하는 기관들 중에서 의미 있는 곳이 많다. 

 

5) 최근 한국에 연구차 방문해서 한국 미디어아트에 관한 여러 전시를 보았다. 어떻게 보았는가. 

 

김순기의 전시를 보고, 작품을 보았는데 그녀의 실험성과 아방가르드함, 작업의 방대함, 에너지에 놀랐다. <한국 비디오아트 7090>도 긴 시기 동안 어떻게 변화하고 전개되어 왔는지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역사적 전시로 연구자로서 큰 도움이 되었다. 

 

 

 

킴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날은 마침, 파리에 있던 김순기 작가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김순기 작가의 전시를 보고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는 요청에 공항에서 혹시 잠깐 인사라도 할 수 있을까 해서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고, 극적으로 만난 뒤 김순기 작가는 잠깐의 만남이지만 진심으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며, 장소도, 기간도 확정되지 않은 킴의 전시에 무조건 참여하겠다고 하셨다. 예산도 있고, 공간도 있지만, 때로 대규모 기관에서 오히려 하지 못하고 놓치는 것, 긴 시간에 걸쳐 작가와 작품을 지켜보고, 그들의 곁에서 함께 하는 일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전시와 책, 심포지엄이 모두 성공적으로 잘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MAAP의 홈페이지에는 협력자들과 파트너, 함께 작업했던 작가들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잘 정리되어 있다. 함께 일하고, 협력한 동료들에 대한 기록, 빠르고 번잡한 미술행사들에서 잘 품어내지 못하는 것들이 여기 기록되어 있다. 

 

 

글.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연재글 목록 | 변화하는 사회, 확장하는 예술, 그 속의 창조자들

#1  C-lab: 문화혁신을 위한 새로운 시도, 라이샹린과 우 다쿠엔

#2 MAAP: 아시아 태평양의 관점으로 아시아의 미디어아트를 추적하는 여정, 킴 마찬

#3 비디오브라질: 비디오 예술의 관계와 영향 연구, 솔랑주 파르카스

 

참고자료

MAAP (Media Art Asia Pacific) 공식 웹페이지 : http://www.maap.org.au/

 

 

* 본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19 비평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