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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게임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II: 볼거리로서 게임, 그리고 스트리머 _voice

로아 2019. 10. 28. 18:45

6. 앞서 언급한 해외 인기스트리머의 사례에서 단서를 확보해 보자. 퀸69는 원래 <디아블로 3>의 하드코어 수도사로 유명한 스트리머다. <디아블로 3>는 한국에도 많은 사용자가 하는 게임인 만큼 골수 팬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네임드 게이머다. <로스트아크>가 워낙 오랫동안 개발되기도 했고 기존에 홍보용으로 보여준 콘텐츠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전’이 예상되긴 했다. 아시다시피 현재 PC RPG는 주류장르가 아니다. MMORPG는 일치감치 ‘사양장르’가 된지 오래며, 액션 RPG 역시 <몬스터헌터>와 <패스오브엑자일> 외에는 두각을 보이는 게임이 없다. 그래서 <로스트아크>는 퀸69와 비슷한 성향의 스트리머의 기대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블리즈컨BlizzCon에서 블리자드가 <디아블로 4>가 아니라 <디아블로 M>을 발표하는 바람에, 예상치 못했던 기대와 관심을 받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디아블로> 후속작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디아블로 M> 때문에 굉장히 실망했고, 대안을 찾아서 <로스트아크>를 선택한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퀸69는 자기가 창설한 길드의 이름을 ‘Bcuk Flizzard’로 지었고, 한국의 <디아블로> 스트리머 아크로는 방송에서 <디아블로> 영결식을 치르고 <로스트아크>로 전향했다. 해외 스트리머들 가운데는 실제로 <로스트아크>를 ‘korean version diablo’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7. 해외 게이머가 한국의 게임을 콘텐츠로 삼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흔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로스트아크>는 해외에 출시한 게임도 아니다. 그래서 퀸69가 방송을 시작했을 때 호기심과 반발심 때문에 오래 할 서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최상위 콘텐츠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대략 한달 동안 <로스트아크> 방송을 했다. 인기 스트리머이기 때문에 고정된 시청자도 꽤 많았다. 5천에서 6천에 육박하는 시청자를 늘 유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고정된 시청자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의 시청자가 가세했다는 것이다. 사실 적잖이 의아한 현상이긴 하다. 한국의 게임을 하는 외국의 스트리머가 신기할 수는 있지만, 그렇기만 하다면 잠깐에 그쳐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퀸69의 방송을 보는 한국의 시청자는 딱히 줄어들지 않았고, 여느 한국 스트리머 방송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채팅창에서 한국인끼리 티격태격 하며 싸우기도 하고, 영어로 훈수를 두는 등 하등 다르지 않았다. 

8. 사실 ‘시청’의 측면에서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긴 하다.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 핵심일 텐데, 언어가 되지 않으면 소통이 원천 봉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했다. 퀸69가 열과 성을 다해서 재미있게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외부인 트위치에서 훈수를 두는 정도를 넘어서, 게임 내부까지 들어간다. 같이 파티를 하고 길드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면모는 퀸69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국어를 익히는 모습도 보였고, 한국의 시청자와 교류하며 반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리해 보자. 해외의 유명스트리머가 한국의 게임을 하면서 한국의 사용자와 소통하고 파티를 만들고 길드를 창설해서 플레이한다는 것, 이 과정에서 지역을 초월하는 게임 커뮤니티가 실시간으로 구축됐다는 뜻이다. 퀸69의 사례는 게임방송의 성공공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즉, 게임의 성공은 방송이 증명하며, 방송의 성공은 커뮤니티의 형성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과정과 현상은 국내의 스트리머가 아프리카 같은 방송 플랫폼을 통해서 일치감치 구현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제 본질적인 질문을 할 때가 왔다. 게임은 무엇이고 방송은 무엇이며, 그것들이 만났을 때 게임의 생태계에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는가. 이 질문들은 이후의 게임계를 이해하고 진단하는 핵심적 열쇠가 될 것이다. 

9. 주지하다시피 게임은 본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게임이 여타의 문화예술 장르와 구별되는 핵심이라고 많은 이들이 주장했다. 참여 상호작용 열린 작품 등 여러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지만, 결국은 일정한 ‘능동적 행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창기 게임이론은 행위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놀이론ludology과 서사를 핵심으로 간주하는 서사론narratology이 자웅을 겨루었고, 이후에는 각기 입장에 따라 이쪽의 공백을 저쪽의 내용을 통해서 보완하는 형태를 띠었다. 게임이 21세기 디지털문화를 선도하는 엔진으로 기능하면서, 기존의 모든 문화예술의 내용과 형식을 모조리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 입장만으로 게임전체를 분석하는 게 요원한 게 사실이기도 하다. 간단한 퍼즐게임 <애니팡>과 영화 같은 서사를 지향하는 배리어블 스테이트Variable State의 <버지니아Virginia>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10. 어쨌든 게임에서 행위가 게임의 근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방송은 게임의 이 같은 성격을 흔들어 놓는다. 게임이 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기도 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방송이 게임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 번째 조우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 바로 이스포츠다. 게임장르 가운데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 즐겼던 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전세계적 인기는 기존의 게임담론으로 설명하기 힘들었고, 예외가 아니라 본진이 되었던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조금 과장해서 전국민이 즐기는 게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방송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익히 알려진 이스포츠였다. 이때 방송을 주도한 곳은 이른바 매스미디어 방송사다. 현재는 OGN으로 이름을 바꾼 온게임을 필두로 메이저 마이너 방송국이 속속 등장하여 게임리그를 개최하며 이스포츠의 판을 키웠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스타크래프트>를 하거나 알지는 못해도, 방송에 나오는 임요환이 누구인지 알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방송의 성격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볼거리가 된 것은 맞지만, 시청자의 성격은 기존의 방송구조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는 게임리그를 할 때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이 방송사 화면에 잡힐 때나 겨우 드러났다. 그들은 주체가 아니라 철저히 객체였고, 그들이 방송에 참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트위치 같은 개인용 방송플랫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러한 판도 역시 변화를 맞게 된다. 

11. 첫 번째 조우에서 나타난 변화는 어쨌든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됐다. 게임은 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기도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경험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발판 같은 것이리라. 두 번째 조우는 이러한 발판을 담보로 한층 나아간다. 구조적 측면에서 게임방송에는 세 종류의 주체가 존재한다. 행위자, 매개자, 시청자. 행위자는 게임을 하는 주체를, 매개자는 게임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를, 시청자는 게임과 정보를 수용하는 주체를 가리킨다. 개인용 방송플랫폼의 등장은 엄격하게 구분됐던 이 삼각관계와 성격을 기묘하게 뒤섞어 놓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 이른바 스트리머는 행위자와 매개자를 겸한다. 그들은 게임을 프로게이머처럼 직접 게임을 수행하는 동시에, 시청자에게 해당게임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스트리머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것은 무엇일까. 

12. 한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이 변화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올해 상반기 트위치를 비롯한 게임방송 플랫폼에서 굉장히 이상한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오래 유지하진 못했지만 트위치에서 10위권에 들 정도로 이례적인 화제를 모았다. 범인은 일명 항아리게임으로 불리는 다. 게임의 구조는 단순하다. 항아리에 몸을 넣고서 망치를 손에 든 캐릭터를 조종해서 꼭대기까지 등산하는 게 콘텐츠의 전부다. 다른 것은 일절 없다. 그러면 <스타크래프트>나 처럼 스포츠 같은 보는 맛이라도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망치를 사용해 교묘하게 배치된 장애물을 피해서 등정하는 것밖에 없다. 여기서 개발자의 의도를 알아보는 게 좋겠다. “이 게임은 고통스럽고 변덕스럽다. 야망에 불타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고, 자비가 없으며 기분이 나쁘며 비인간적인 게임이다…나는 특정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해서 이 게임을 만들었다.” 굉장히 기이한 기획의도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은 사람이 할 만한 게임이 아니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보기보다 조작하는 게 어렵고 장애물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적극적으로 ‘멘붕’을 일으킨다. 교묘한 ‘낙사’ 구간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몇 시간을 허비하고 출발점인 태초마을로 굴러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탓인지 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져서 한 두 시간 하고 빠르게 ‘언인스톨’했다는 후문들이 쏟아졌다. ‘Getting it Over’가 ‘지난 일 잊고서 새 출발하자’는 의미란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역설적인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트위치에서 10위권을 달성할 만큼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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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본인이 직접 하면 재미가 없지만 타인이 하면 재밌는 상황, 여기서 실마리는 ‘야망에 불타는 사람들’이다. 몇 가지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 스트리머를 지칭한다고 간주된다. 결국 는 스트리머를 괴롭히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게임이란 것이다. 실제로 항아리게임 방송영상은 대부분 스트리머가 게임을 하면서 일명 ‘멘붕’하는 영상들이다. 고수가 단기간에 깨는 영상도 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을 하는 중간중간 나오는 내레이션도 스트리머들의 신경을 적극적으로 건드린다. “인생이란 괴로운 것이며, 산다는 것은 고통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는 것이다.”(니체) 듣기에 따라서는 인생의 가치를 되새길 만한 경구로 보이지만,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이 말을 들으면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게임을 하는 방식, 조작감, 배경음악 등, 게임의 모든 것이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면서 질문하게 된다. 내가 이 게임을 왜 하는 걸까, 게임이란 도대체 뭘까 등등. 일종의 메타게임으로서, 게임을 하면서 게임을 성찰하게 한다.

 

김상우(앨리스온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