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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출처: 연합뉴스)

 

한국인은 왜 유독 아파트에 열광할까? 전 세계적으로 이렇듯 아파트 사랑이 유별난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고층의 공동 주택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서구권에 비하여,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부의 상징으로 혹은 유행하는 주택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꿈꾸던 ‘공동 주택’에 대한 이상이 가장 열성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여기, 한국이다.

 

르 코르뷔지에,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

18세기 중반 산업 혁명 이후 유럽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공해, 질병, 빈곤 등의 도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럽 각국에서는 도시계획법 및 빈민에 대한 주거 구제 대책을 논하게 되는데, 이 가운데 선보여진 것이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의 "현대 도시(Ville Contemporaine)" 계획안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 도시는 십자 모양의 60층 고층 건물들의 집합체로, 각 건물은 거대한 유리의 커튼월(Curtain wall)로 둘러싸인 강철 뼈대 구조의 사무용 빌딩이다. 이들은 공원과 같은 넓은 녹지 안에 세워지며 건물 사이로는 철도 역과 버스터미널, 고속도로 교차로 등의 교통 시설이 개설되어 있다. 그는 상업용의 여객기가 거대한 고층 건물들 사이에 착륙하며, 인도와 차도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자동차 사용이 훨씬 용이해지는 도시를 상상하였다. 고층 건물과 저층 건물을 지그재그로 배치시켜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주거민이 분포하여 살 수 있도록 하였다. 르 꼬르뷔지에는 자신의 새로운 건축 형태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끌어 올리는 혁신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Figure 2 르 꼬르뷔지에, 파리를 위한 부아쟁 계획, 1922년.
(출처: 2013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ADAGP, Paris / F.L.C.)

 

이후 르 코르뷔지에는 1925년 파리장식예술박람회 관에서 부아쟁 계획(Plan Voisin)을 전시하며 그의 도시 계획 이론을 소개하고, 1935년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를 출판하는 등 자신의 도시 계획을 이론화 및 재공식화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그러나 르 코르뷔지에의 이론은 기계적이고 인간미가 없는 주택 양식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미 중세와 근대의 건축물로 포화 상태였던 유럽의 토지에 새로운 도시 계획을 실현시키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아 파리 교외나 마르세유 등에는 아파트 단지들이 일부 세워지기도 하였으나, 이것 역시 대다수 유럽 시민에게 외면 받으며 저소득층이나 무슬림 이민자들이 모이며 슬럼화되었다. 사실상 완전하게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안은 도시의 좁고 불결한 환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을 생성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넓은 땅을 가졌던 미국과 구시가지 등을 개발해야 하는 개발도상국들은 이러한 제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만들어진 한국의 계획도시와 신도시들은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시기 국가의 주요 목표였던 경제 개발 계획을 위해서는 대규모 도시 개발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탑다운(Top-Down) 방식의 도시 개발에서는 속도와 효율성이 불가결의 요소였다. 용도에 따라 토지를 구획하고 개편하였으며, 도로망 개선, 지하철 건설, 교량 건설 등이 시행되었다. 도심 빈민가를 비롯한 서울의 여러 구역들이 새로운 도시 인프라 양산을 위하여 재개발되었다. 주변의 아파트 단지들을 둘러보자. 자동차를 중심으로 주거 지구를 구획하며 고층의 건물들로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곳곳에 자리하는 훌륭한 조경의 공원들 역시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계획 원칙과 매우 닮아있다. 이처럼 아파트 공화국이 된 한국에서는 여전히 르 코르뷔지에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란

한국전쟁 이후 마당이 딸린 한옥이 사라지면서 서울의 주거 단지 형태는 일부 변화를 맞게 된다. 전쟁은 서울 대부분을 파괴했고, 심각한 주거문제를 야기했다. 조선주택영단이 한국전쟁 이후 건설한 개인주택지구에는 한옥과 달리 장방형의 단순한 형태를 띠며 마당이 생략된 ‘표준화주택’ 이나 시멘트블록으로 외벽을 처리한 ‘국민주택’ 등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즉, 1950년대 서울의 주거 단지는 대부분이 개인 주택으로 이루어졌으며, 2층이나 공통주택의 경우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변화를 주지 않는 소건설 계획에 국한되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 vol 15, pp.325-326) 그러나 비로소 1958년 서울 성북구에 종암아파트가 건설되며 서울의 주거 단지에는 ‘공동 주택’이라는 새로운 주택의 형태가 등장한다. 처음으로 ‘아파트먼트’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국내 건설사가 독자적 기술로 최초 시공하였다는 점에서, 이것은 오늘날 한국의 가장 보편적인 주택 형식인 ‘아파트’의 시조 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층의 콘크리트 벽이나 실내 수세식 화장실 등으로 종암아파트는 그 “현대성”으로 크게 화제를 모았으며, 초기에는 예술인과 정치인, 교수와 같은 상류층이 입주한 고급 주택으로서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종암 아파트는 이후 서울 곳곳에 건설되는 서구식 공동주택의 선구적 모델이 되었다. 

 

Figure 3 완공 직후의 마포아파트 (출처: 국가기록원)

 

1964년 완공된 마포아파트는 ‘단지’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아파트로, 이전과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초기 근대식 아파트의 첫 모델이다. 종암아파트를 비롯한 이전의 아파트들이 단독 건물의 형태로 지어졌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포아파트는 Y자 형태의 6개 동 아파트가 상가와 놀이터, 유치원, 공원 등의 공동 시설들과 군집한다. 주거에 필요한 다양한 공간과 시설들이 용도에 맞게 명확하게 구분되어 단지 내에 모여있으며, 낮고 빽뺵한 주변의 개인 주택 지구와는 완전히 단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마포아파트 단지는 주변 지역으로부터 독립적이며 자치적인 주택지구로 고안되었으며,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계획 이론과 성격적인 면에서는 물론 외형적으로도 매우 닮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거주지로서 보편적인 호응을 얻고있지는 못했는데, 공동주택의 연탄 사용에 대한 불안감이나 1970년에 일어났던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등으로 인한 시민들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마포구 와우산 일대에 건설되었던 이 아파트는 입주 개시 후 몇 주가 지나지 않아 무너지며 사망 33명, 부상 40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이 참혹한 사고로 아파트는 불안전하고 결함이 있는 건물로 인식되며 한동안 시민들의 외면을 받기도 하였다.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어가게 된 데에는 1971년 강북의 동부이촌동단지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총 3,260세대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는 우선 규모의 측면에서부터 이전 세대의 그것들과는 큰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입주 대상의 주민층 역시 확연하게 달랐는데, 서민용 소형주택과 공무원아파트, 서울 거주 외국인을 위한 외인아파트, 고급대형아파트의 네 개 유형으로 구성되어 상류층을 위한 주거 단지임을 내세웠다. 아파트 전 세대가 기름보일러식 중앙난방을 사용하며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 문화생활’을 가능케 하였다. 가장 큰 평수인 대형 아파트의 경우 ‘맨션(mansion)’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모델하우스를 통해 홍보하면서 고급 아파트의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초기 저조한 입주율을 보이며 몇 차례 고비를 맛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동부이촌동단지는 미분양 사태를 모두 해결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결과적으로 맨션아파트는 중산층을 위한 주거지로 각광받으며 구반포와 여의도 등지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는 중산층의 주거 환경 욕구를 안정적으로 해소시키는 수단으로서 맨션 아파트 단지가 최선의 방안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한편 강 너머에서도 새로이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1974년 완공된 반포아파트는 처음으로 한강 남쪽에 건설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강남 아파트 시대의 서막을 여는 첫 신호탄이었다. 22평부터 복층 64평까지의 평수로 구성된 이 아파트 단지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수요가 넘쳐 매물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반포단지의 대성공으로 한강변 남쪽에는 연이어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1977년 완공된 잠실 아파트 단지 역시 정부가 주도한 대규모 개발 계획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것은 내부에 행정기관과 병원, 학교, 커뮤니티 시설 등을 함께 두며 단지 자체로 10만의 미니 도시가 되기를 표방하였다. 이 초대형 단지는 ‘잠실 뉴타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며 인기를 끌었다. 잠실 아파트 단지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최소 7.5평형부터 최대 36평형까지 다섯 단계로 평수를 구분하며 같은 단지 내에서도 아파트 간의 차등을 주었다는 점이다. 저소득, 중소득층까지도 입주할 수 있도록 매우 적은 평수에서부터 설계되었던 이 미니 도시는 계층 간의 형평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려던 최초의 의도와는 달리 계층 간의 격차를 더욱 뚜렷이 구별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제 단지 내 주민들은 누가 어느 동에 사는가에 대한 정보를 통하여 그가 사는 집의 평수는 물론 그의 사회적 혹은 경제적 계급까지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주거지가 주거민의 경제적 계급을 수치적으로 가시화하여 드러내는 데에 아파트가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이후 잠실에서 압구정동으로, 신반포로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들이 한강변 남쪽에 펼쳐졌다. 마치 군사 기지를 연상케하는 거대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의 축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단지 내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과 지역을 편가르며 서로의 격차를 가늠하고 체감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경제적 수준 향상에 따라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혹은 더 비싼 분양가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며 계층 상승의 쾌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 가운데 특히 1976년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강남 아파트 거주자들이 도달하고자하는 욕망의 정점으로, 고소득 중산층들과 상류층이 몰려들며 ‘명품’ 아파트로 명성을 떨쳤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분양권은 무려 아파트 한 채 값의 프리미엄이 붙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에 초반을 거치며 강남의 아파트 단지들은 그 세를 더욱 확장하는데, 강남 일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개포동, 도곡동, 대치동에도 연이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신중산층'이 우뚝 서있었다. 박해천에 따르면 이들은 1940년대에 지방에서 태어나 이제 막 출세의 초입에 들어서려는 찰나에 있는 집단을 일컫는다. 이들은 산업화와 더불어 생성되고 발전해 왔으며, 정부 관료와 대기업 관리직, 고소득 전문직과 같은 화이트칼라나 고소득의 자영업자로서 성공의 발판을 탄탄히 다지고 있었다. 이들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주로 출신 대학의 인근 지역이나 사대문 바깥에 머물러 있었는데, 서울의 구도심은 진입 장벽이 높은 토박이들의 오랜 거처였기 때문이다. 이에 당시 나이 40대 정도의, 당장 서울의 구도심으로 진입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부족하지만 입신과 출세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중산층’이 되기를 열망하는 이 ‘신중산층’ 집단은 서울 변두리를 벗어나 한강 이남의 ‘명품’ 아파트 단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아파트란 자신들의 사회적 계층과 신분을 보여주는 지위재로서 매우 훌륭한 수단이 되었다. 

 

80년대, 신중산층, 아파트 그리고 영화

신중산층의 지위재로서 아파트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공간 디자인되며 그 의미와 역할을 보여주고 있을까? 신중산층은 어떻게 그들의 주거 환경을 디자인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을까? 1980년대 흥행하였던 한국의 대중 영화에서는 이들의 시각적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영화는 시대상과 대중의 보편적 의식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며, 때로는 실제의 모습을 단면화하며 이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의 매체적 특성을 활용하여 80년대 한국 대중 영화에서 나타나는 아파트 주거 문화를 들여다보자. 또한 이러한 특성들이 당시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시대적, 문화적 현상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함께 읽어보자. 본 글에서는 80년대 흥행 순위 50위 내의 한국 영화들 중 아파트 실내 공간이 자주 등장하는 다음의 영화 8개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매춘 (유진선, 1988)
애마부인 (정인엽, 1982)
무릎과 무릎사이 (이장호, 1984)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강우석, 1989)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불의 나라 (장길수, 1989)
겨울로 가는 마차 (정소영, 1982)

 

(2부에서 계속)

 

안다영 (디자이너, 디자인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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