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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 미디어 히스토리] 매체로서 작동한 지하철 - 한국 근대의 시각성 _voice

aliceon 2019. 2. 20. 02:44

* 타이틀 이미지에 삽입된 사진 : 1974년 지하철 1호선 시청역의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인류세 워킹그룹(Anthropocene Working Group)의 대표인 얀 잘라시에비치 교수(영국 레스터대)는 "지구상의 모든 인공물질을 수치적으로 환산하면 30조톤에 이르며, 이는 1m²당 50kg의 인공물질을 쌓을 수 있는 양"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간이 지구를 통째로 바꾼 지질시대가 그가 말하는 '인류세'이다. 국제지질학 연맹 등 학계에서 정식으로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물건들이 '기술화석(technofossil)'으로서 전 지구적으로 연속적 퇴적층을 생성하고 이것이 인간의 시대를 증명할 것이라는 그의 사고는 흥미롭다. 인간은 단순히 자신의 생존에 대한 자취를 남기는 것을 넘어 주위의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며 조성한다.


‘생산’은 바로 인간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 활동은 자본주의의 탄생을 기점으로 가히 폭발적인 변화의 양상을 보였다. 지층을 이루고 화석이 되리라 예견할 정도로 플라스틱이, 강철이, 그리고 콘크리트가 생산되고 쌓여왔다. 이렇게 환경을 구성한 생산물은 단지 인간 주위의 풍경이라는 사실을 넘어 역으로 인간의 사고와 삶을 규정할 수 있는 양식이 되었다. 자본주의 안에서 대중 주체의 생활양식은 바로 생산양식에 의해 영향받고 결정된다. 이 생산된 결과물로 구성된 양식은 거의 대부분 기술 기반의 생산물, 즉 기술적 대상이다. 


생산의 결과물이, 기술적 대상이 높은 밀도로 몰려있는 장소가 도시 환경이며 오늘날 인간 대다수가 생활하고 있는 환경이 바로 도시환경이다. 이 도시안에서 사람들이 접하는 가장 대중적이고 영향력있는 기술적 대상은 무엇일까. 도시를 구성하는 거대한 혈관으로서의 이동 시스템으로서의 교통수단이다. 그리고 시간표에 따라 빈틈없이 돌아가는 강철의 톱니바퀴, 도시 안 사람들이 시간에 맞춰 이동하는데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교통수단, 그것은 바로 지하철이다. 


지하철이라는 매체는

매체는 단순히 라디오와 신문, 텔레비젼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사물과 시스템을 넘어 ‘무언가를 전달하는’ 어떠한 대상 모두를 포괄한다. 특히 기존의 이해에 기술이 개입되어 양적, 질적으로 파급력이 커진 현실이 더해져 기술 매체가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기술 매체는 단순한 대상을 넘어 거대한 매체환경을 조성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오늘날 세계를 구성하는 매체환경 중 교통매체, 특히 지하철을 대상으로, 그리고 지하철 시스템이 조성되기 시작한 80년대를 기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 한다. 지하철은 단순히 탈 것, 즉 사람들의 이동과 수송을 위한 수단 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미디어 이론가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경구에서 드러나듯, 매체는 투명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특정한 의미를 지닌다. 즉 지하철은 무언가를 투명하게 운반하는, 수송 기능만을 가지는 매체가 아니라 지하철 스스로가 담보하는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는 양식으로서 작동하여 사용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친다. 그 의미와 영향은 무엇일까. 


이를 찾기위해 맞춰본 초점은 바로 1980년대의 우리를 규정하는, '근대성'이다. 당대의 근대성은 많은 한국 근현대 연구에서 언급했던 바 경제논리, 발전논리, 그리고 국가주의이다. 이 근대성은 당시의 지배권력이자 통치권력이었던 당시의 박정희 정권이 주입한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는 인간의 발의 확장이기도 한 지하철로서 인간 기능의 대체를 넘어 수동적으로 미디어에게서 오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즉 지하철로 인해 ‘맛사지’로서 체화되는 의미와 규범으로서 작동했다. 지하철은 단순히 사람들의 이동과 수송을 위한 수단만을 넘어 사람들의 사고와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지하철은

서울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 중 지하철을 한번이라도 이용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울 지하철은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점유하고, 이용하며, 체험하는 대표적인 매체이다. 1974년 8월, 1호선 개통당시 약 3,200만명이었던 연간 수송인원은 2015년 기준 15억명으로, 이는 현재 서울 시민의 절반이 하루 1회 이상 이용하고 있는 수치이다. 지하철은 그것이 개통되기 이전 도심 대중교통수단이었던 전차나 버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빈도와 단위수송량, 즉 질적, 양적 규모를 체험케 했다. 또한 그러한 압도적인 노출 빈도를 일찌감치 잡아낸 자본은 그 표면 위로 수많은 생산물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도포해왔고 그 결과 또다른 층위의 압도적 이미지 표면를 제공했다. 지하철은 서울 시민 대부분에게 체화된 스펙터클로서 삶에 밀착해있다. 그렇기에 개인과 개인, 국가권력과 시민, 자본 또는 매스미디어와 대중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장으로서의 지하철은 한국 근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대상 중 하나로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한국 근대화의 상징 이미지

앞서 언급한 한국 근대 형성에 있어 지하철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한국 지하철 시스템의 시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최초의 지하철인 ‘1호선’ 개통의 주도적 배경은 해당시기 급격하게 증가한 서울의 인구수이다. 전쟁 이후의 베이비붐은 확연한 한국의 인구수 증가를 가져왔다. 더불어 탈농촌화와 급격한 도시화는 서울 인구의 증가율을 더욱 높였다. 그 결과 서울은 인구의 폭발로 인한 다양한 문제에 당면했다. 많은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도로교통 체증이었다. 시민들의 심리적, 육체적 불편과 시스템에 대한 불만, 체증때문에 발생하는 시간적, 금전적 손해 등의 경제, 사회 부문 등의 총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기존의 대중교통수단이었던 노면 전차를 없애고 보다 많이, 빠르게 사람들을 수송할 교통수단을 강구했고 1968년, 그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지하철 노선 신설을 결정하였다.


한국의 근대성은 발전과 성공이라는 기의를 실은 시각적 상징물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파되었다. 포항제철소, 경부 고속도로, 그리고 지하철로 대표되는 근대 한국의 건설풍경이 바로 그 사례이다. 지하철은 바르트가 이야기한 바 신화로서 늘 허구와 과장이 섞인 사실과 닮은 현실이었고, 이는 곧 한국 근대의 성공 신화의 원형이었다. 대중들은 그 시대의 지도자가 늘 강조했던 “우리도 하면 된다”와 “우리도 잘 살아보세”의 결정체 위에 앉고 섰고, 그 메시지에 자신의 시간과 공간 모두 동기화되었다. 그들은 또 다른 발전과 성공을 향해 끊임없는 이동을 지속했고 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자세를 체화시켰다. 이런 현실은 국가 이데올로기로서 신문을 대표로 하는 매체에 의해 전파되고 순환되었다. 



국가의식 고취, 그리고 통치자의 업적 각인

지하철의 구축의 시작은 도시 공간 재설계와 인구의 재배치 계획의 핵심으로서였다. 즉 도시의 통치가 발단이었고 목표였다. 서울의 인구가 가히 폭발에 버금갈 정도로 늘어난 상황에서 새로운 교통 시스템이 절실해진 가운데, 근대화 주권자의 통치행위로서 지하철 건설은 결정되고 실행되었다. 이에 따라 지하철은 실용적 목적과 더불어 통치주체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문명의 신화로서, 조국 근대화의 결정적 증거로서, 그리고 민족의 우수성을 전파하기 위한 증거로서 대중들에게 제시되었다.


지하철 공사 현장은 “성장 주도한 근대화의 현장(1974년 3월 23일 매일경제)”이었다. 지하철의 개통일은 “광복 29주년을 기념하는 이 날, 교통혁명의 신기원을 기록하는 제 2의 환희가 수도권에 넘쳐흐른(1974년 8월 15일)” 날이었다. 또한 지하철은 대중들에게 “민족의 저력을 발휘하여 이룩한 금자탑(경향신문 1974. 4. 13. 지하철시대의 성공적인 시동)”이자 “우리나라 교통수단의 신기원’(매일경제 1974. 8.14. 지하철 가이드)”이었다. 즉 한국은 이런 문명의 혁명을 이룩한 자랑스런 국가였고 국민은 이를 만들어간 국가의 훌륭한 구성원이었다.


통치자는 이를 이룩해 낸 주체로서, 그리고 이 시스템을 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다루며 이룩해나가는 행위자로서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국내기술을 총 동원하여 지하철 공사에 완벽을 당부(1971년 7월 16일 경향신문 정치면)”했고, “지하철 건설은 문화, 경제, 사회의 모든 집약적인 수도 서울의 자랑할만한 긍지 뿐 만 아니라 경제발전의 상위중진국으로 올라서는 길이라고 강조했으며 수도권 지하철 건설이 국내의 기술진에 의해 착공되고 있는 것은 더욱 흐뭇한 일이라고(1971년 4월 12일 매일경제 정치면)”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 대업을 이루고 있는 주체로서 자주 현장을 방문했고 곧 발전과 성장의 대표이자 주도자로서 대중들에게 스스로를 각인하였다.


1974년 8월 15일 동아신문 만평


‘우리’가 이룩한 진보와 발전의 시각화

한국 근대화의 표상으로서 제시된 지하철은 새 시대의 진보된 교통수단이었고 기존의 낡은 과거를 교체할 신문물이었다. 1974년 8월 15일 지하철 개통식의 동아신문 만평에서는 짚신을 손에 들고 지하철을 신은 정장입은 남성이 등장했다. 지금껏 우리가 신어온 낡고 느린 전근대적인 짚신 대신 새롭게 등장한 빠른 기계 교통인 지하철을 신은 현대식 정장을 입은 도시인의 모습이었다. 서구의 선진 기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한국 기술자들의 열정 아래, 포항의 거대한 제철소에서 뽑아낸 수많은 강철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완성된(도시 지하철 최단기 공정 기록, 아시아에서 3번째 지하철 보유국, 1974년 경향신문) 기술의 결정체로서 서울 시민 앞에 놓였다. 구태의연한 전통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신문물에 걸맞는 자세와 모습으로 능숙하게 이용해 나가는 서울 시민의 모습은 바로 선진 시민의 자세이고 양식이었다. 


또한 기사 지면상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지하철 도상은 바로 곧게 뻗어 막힘이 없는 사선 구도의 레일의 모습이다.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발행된 대부분의 지하철 관련 기사는 하나의 소실점을 기준으로 일정하게 퍼지는 레일과 기둥의 조합 구조를 취한다. 밝고 깨끗하며 통제되어있는 공간은 대중들에게 규칙과 통제가 가져오는 쾌적함과 안정감을 전달한다. 또한 어두움을 빠져 나와 밝은 곳으로, 우리의 앞으로 다가오는 지하철의 모습과 구도는 그러한 근대와 현실 자체가 바로 우리 곁에 있다는 ‘바로 지금’의 동시성을 전달하고 있다. 진보되고 발전된 미래는 지금 실현되어 먼 소실점에서 레일을 타고 와 사람들의 눈 앞에 놓인 것이다. 이 교통수단은 모두 사람들의 이동을 보다 편하게, 빠르게 효율과 편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인간 능력의 산물이다. 동시에 ‘대한한국’이,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이었다. 



특정 행동양식과 사고의 체화 수단으로서 기능한 지하철

대중들 앞에 놓인 지하철은 현대 문명의 이기이자 상징이었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곧 선진 시민이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울 시민들은 적게는 10분 내외에서 길게는 1시간 여를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보내야했다. 기존의 도보와 전차, 버스와는 다르게 외부의 풍경은 존재하지 않았고 10평 남짓의 공간에 오로지 단절된 내부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 또는 보아야하는 어떤 대상을 찾아야했다. 선진 시민으로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한 코드가 필요했다. 할당된 공간만을 사용하기 위한 몸가짐으로서,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특정 행위로서의 독서의 양식이 발현되었다. 신문에서는 지하철 내에서의 올바른 행위에 대한 다양한 기사를 제작했고 독서가 권장(간이도서코너 설치추진 한창, 1974. 8.22. 경향신문)되었다. 지하철이라는 시스템에 어울리는 정숙하고 분리된 집중을 위한 에티켓의 등장인 것이다. 지하철은 티비와 신문만큼이나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크게 끼친 교통, 교육 매체였다. 신문 등 인쇄매체를 통해 전달된 선진시민으로서의 긍지와 에티켓은 지하철을 통해 반복, 체화되었다.



1974년 8월 22일 경향신문


지하철 1호선을 통해 드러나는 당대의 시각성은 서구의 그것과는 다르다. 디자인 연구자 재닌 하드로(Janin Hadlaw)는 런던 지하철에 대한 연구에서 지하철의 시각성이 근대 자본주의의 효율성에 따른 거리와 위치에 대한 공간 지각과 체험을 진행케 했다고 언급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근대 공간 지각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또 다른 의미체계로서 작동했다. "역사상 최단공기 수립, 최소 공사비 진행 기록을 수립"한 지하철로서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된 1호선은 한국 국민들에게 한국 근대화와 국가 발전에 대한 대표적인 신화로서 주어졌다. 이러한 자격으로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자리잡은 지하철은 그들의 눈과 귀, 피부에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지하철에서 계단을 이동중에 마주하는 시선과, 지하철 차량 좌석에 앉아 앞에 마주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선진 시민으로서의 규율과 규범을 익히는, 교육받고 규준받는 장으로서도 활용되었다. 서울지하철 구축의 역사는 박정희 정권이 견지한 당시의 억압적, 폭력적 ‘지배’에 덧붙인 행정적, 인구 관리적 ‘통치’의 일환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시민생활 및 활동의 가능한 장을 구조화하는 능력, 힘 의 행사로서의 통치이며 지하철은 그 훈육의 체화의 장으로서 시각화되었고, 실제의 공간은 그 체화의 장으로서 기능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허대찬 (aliceon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