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YCAMPost#07 완벽함의 해체 vs. 창조_world report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9. 23:15



2003년 11월 개관 이래, YCAM에서는 다수의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제작, 전시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그 동안 이 곳에서 제작되었던 여러 작품들 중 두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1996년부터 활동해온 일본의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엑소네모Exonemo의 오브젝트BObjectB로, 그들의 활동 10주년을 기념하여 2006년 YCAM에서 개최된 ‘엑소네모전: 월드B WorldB’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다른 하나는 사운드 아티스트 시부야 케이치로와 복잡계 이론과 인공생명 분야의 전문가인 이케가미 타카시가 함께 제작한 사운드 설치 작품 필름머신filmachine으로, 2006년 YCAM전관에 걸쳐 사운드 아트 작품을 전시하고, 워크샵을 개최했던 ‘Mapping Sound Installation’전의 핵심 작품이다. 미디어 아트라는 영역 안에서,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두 작품을 만나보자.


오브젝트BObjectB

엑소네모Exonemo,
http://exonemo.com/

센보 켄스케千房けん輔와 아카이와 야에赤岩やえ로 구성된 2인조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으로 넷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0년 이후 미디어 기술과 네트워크를 활용한 설치 작업들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탁월한 기술 감각과 특이한 미디어 믹스의 균형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프로젝트들을 해왔다. 국제적으로도 넷아트, 라이브, 미디어 아트 설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월드B’전의 부제는 ‘의식을 뒤집어 B면을 틀어보자’이다. 주류로서의 A면, 완성품으로서의 트랙이 담겨 있는 A면 대신에, A면의 완성된 트랙을 리믹스하거나 변형시킨 B면적 의식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대중적인 취향, 즉,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고방식 혹은 일반대중에 대한 콘트롤을 위해 구축된 사고방식을 위해 제작되는 A면적인 소비문화와 달리, A면의 콘텐츠를 가능하게 하는 이면으로 눈을 돌려, 이면의 시스템을 해킹해보고, 그 과정을 사용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작가들이 전하고자 하는 B면적인 문화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1] 오브젝트B 전시장 전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2] 오브젝트B 오브제들

오브젝트B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작품이 설치된 공간에 들어서면, 사방의 벽에 일인칭 슈팅게임 하프라이프2 HalfLife2의 게임엔진으로 만든 가상세계 공간이 펼쳐진다. (사진1) 각 화면 중앙에 서있는 캐릭터는 각기 다른 마우스, 키보드와 타블렛에 의해 조종된다. 일반적인 슈팅게임의 캐릭터는 손에 들고 있는 무기를 사용하여 적을 격퇴하지만, 여기서는 버튼을 누르면 가상 공간에 새로운 물건이 만들어지거나, 공간의 중력을 바꿀 수 있는 등의 이벤트들이 벌어진다. 사방의 가상공간들은 각기 다른, 총 4개의 캐릭터로 조종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관객이 조종할 수 있는 키보드와 마우스는 중앙에 한 개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외의 캐릭터들은 주변에서 시끄럽게 덜컹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오브제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전동공구와 가전제품을 분해, 재조합하여 만든 이 '플레이어'들(사진2)은 간헐적이고 발작적으로 작동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움직이고, 버튼을 클릭하면서 캐릭터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은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움직이는 캐릭터들과 만나기도 하면서 가상공간을 돌아다니는데, 관객이 부지런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누르는 소리는 금새 쨍그랑거리고 달그락거리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동료 컨트롤러(오브제)들의 소리에 묻혀버리고 만다.

 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은 오픈 소스와 해킹이다. 오픈소스인 하프라이프의 게임엔진을 조작하여 새로운 가상공간을 만들고, 본래의 게임과는 다른 인터랙션들을 가능하게 하면서, 작가들은 우리가 최종 소비자로서 접하게 되는 표면들의 이면이 공유되었을 때 새로운 가능성들이 창출됨을 보여주고 있다. 넷아트로 작업을 시작했던 작가들에게 네트워크를 통한 공유와 해킹은 초기작업부터 중요한 모티브였고, 해킹이라는 키워드는, 작가들이 설치와 라이브로 활동영역을 확장하면서,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 가전제품과 같은 - 기술의 실체적인 결과물들을 해킹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성품과 그 기성품의 구성요소들에 있어, 더 창조적인 시도들을 유도하는 것은 분명 가공되지 않은 구성요소들일 것이다. 기성품이 그 구성요소들의 가능한 미래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구성요소들은 가능한 모든 미래태들에 대한 잠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드러내면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표층적인 세계 이상의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을 오브젝트B는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엑소네모의 작업들은 유쾌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표면적인 세계의 이면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작업을, 개념적인 유실 없이 경쾌하고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기에 엑소네모의 작품들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폭넓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

(참고: 월드B 공식 홈페이지 http://exonemo.ycam.jp/)


필름 머신Filmachine

시부야 케이치로渋谷慶一郎,
http://atak.jp

도쿄예술대학작곡과를 졸업한 후, 2002년 ATAK(http://atak.jp)을 설립하여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전자음향작품을 CD로 발매하고, 디자인, 네트워크 기술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4년 발매한 솔로앨범「ATAK000 keiichiro shibuya」는 음색과 리듬에 초점을 맞춘 철저하고 치밀한 구성으로 '전자음악 역사 전체를 총괄하는 완벽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현재, 이케가미 타카시와 공동작업을 계속적으로 전개하면서, 2005년 NTT ICC(도쿄)에서 공동제작한 사운드 설치 작품을 발표하고, 비선형물리학의 응용에 따른 변화와 운동의 음악이론 `제3항음악'의 연구 발표와 콘서트를 개최하여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케가미 타카시池上高志, http://sacral.c.u-tokyo.ac.jp/

도쿄대학 대학원 조교수. '컴퓨터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 시스템의 이해 = 복잡계'를 연구 주제로, 역학dynamics의 시각에서 본 생명이론의 구축을 지향한다. 1990-98년까지는 자기복제와 계산이론, 진화 게임이론을 연구했고, 98년 이후에 연결주의 지각, 인지 모델, 진화에 대한 연구를 전개해왔으며, 그 성과를 '복잡계의 진화적 시나리오'로 간행했다. 하시모토 다카시와 '튜링머신들이 서로의 테이프를 읽어 새로운 기계로 생성되는 네트워크'의 이론적 모델을 구축하고, 그 진화가능성의 모델화에도 성공했다. 국제 저널 BioSystems, Artificial Life의 편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3] 필름머신 전시장 전경

전자음이 몽환적으로 흐르는 어슴푸레한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불규칙적으로 쌓여있는 블록들로 만들어진 구조물과 그 구조물을 둘러싸고 있는 스피커들로 구성된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사진3) 구조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둘러싸고 있는 8개의 기둥에는 상중하로 층을 지어 모두 24개의 스피커가 달려있고, 각 층의 스피커 높이는 모두 동일하다. 블록들에 올라 스위치를 누르면, 블록들을 둘러싸고 있는 스피커들로부터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소리에 맞추어 주변의 LED조명 기둥들도 강하게 점멸한다. 소리는 일정한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스피커들을 따라 상하, 좌우, 전후의 3차원 공간을 오가며 날아다니는데,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 경험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 위에서 종횡 무진하는 사운드 스케이프에 의해 관객들은 공간과 청각에 대한 새로운 감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관객은 전시공간 안에 들어와 스위치를 눌러 작품을 작동시키고는 자유롭게 13분 동안 이어지는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이 작품은 크게 네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소리 자체와 소리의 움직임을 다양한 위치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구조물로, 평면적인 공간에서의 사운드 설치와는 다른 청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다음은 구조물을 둘러싸고 있는 24개의 스피커들인데, 작가들은 호주 레이크 테크놀로지LAKE Technology사의 휴런Huron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24개의 스피커들을 동기화하고 컨트롤할 뿐만 아니라, 스피커들에 들리는 소리의 움직임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휴런은 예를 들어, 구조물의 정가운데를 중심으로 일정한 방향에 30m 떨어진 지점에서 나는 소리를 10초 안에 5.3m 떨어진 특정지점까지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이를 통해 3차원적인 사운드 설치가 가능해졌다. 세 번째는 소리 자체의 구성과 그로 인한 음색인데, 앞서 언급된 음의 움직임과 소리의 구성, 음색은 작가들이 2005년 주창한 “제3항 음악”이라는 원리에 따라 구현되었다. 작가들은 '통상의 작곡이 기본으로 하는 리듬과 멜로디에 대해서, 제3항의 요소로서 음의 움직임과 음색을 기본으로 하는 구성이라는 메타적인 구조를 도입하자는 실험이다’라고 “제3항 음악”을 설명한다. 그리고 “제3항 음악” 원리를 실현하는 데에 활용되는 것이 이케가미의 복잡계 이론이다. 이케가미는 ‘테이프와 머신’이라는 이론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진화하는 테이프와 진화하는 기계가 있어, 테이프의 재생과 복제가 이 테이프와 기계 모두에 영향을 미쳐,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다른 무엇인가로 진화해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필름머신의 소리 역시 일정한 디지털 사운드 시퀀스(테이프 혹은 필름)로부터 시작하여 그 시퀀스가 알고리즘(머신)을 통해 진화되는 결과들로 구성되었다. 필름머신이라는 제목 자체에는 이러한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마지막은 소리에 맞춰 점멸하는 LED 조명으로, 사운드 설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하면서, 청각적인 경험을 시각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13분에 이르는 시퀀스가 끝나면 전시장은 다시 전자음이 흐르는 어슴푸레한 공간으로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 차분함은 분명 누군가 스위치를 누르고 사운드를 터트려낼 수 있기를 기다리는 차분함일 것이다. 이 작품은 올해 베를린 트란스메디알레에서 전시되고 있다.

(참고: Mapping Sound Installation 공식홈페이지 http://msi.ycam.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