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37

[김상우의 과학・소설 읽기] 가상세계의 짤막한 인류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쑤시개

“잭스를 이토록 오래 키워 온 애나씨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정말 인상적인 작업이군요.” 마치 애나가 세계에서 가장 큰 이쑤시개 조각을 만들기라도 했다는 듯한 말투였다. 1. 인벤 게시판에 어떤 이가 글을 올렸다. 사냥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멧돼지 사냥을 하는 퀘스트를 하다가, 그만뒀다는 짤막한 글이었다. 그런데 이유가 흥미로웠다. 마침 그는 멧돼지를 펫으로 삼고 있을 때였기 때문인지, 어느 순간 멧돼지가 안 돼 보이더란 얘기였다. 에서 사냥꾼은 언제나 펫과 함께 한다. 퀘스트를 할 때도 던전을 돌 때도 언제나 같이 한다. 그래서 사냥꾼은 어떤 캐릭터보다 펫에 느끼는 애착이 강하다. 사냥은 뒤로 하고, 펫만 모으는 사냥꾼도 있을 정도다.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이상한 것일까. 글이 올라오자, 생각보다 ..

Voice 2015.12.09

[유원준의 미디어문화비평] 4. SNS : 피상적(Superficial) 본질(Nature)로서의 사회(Society)_2부

매체에 의해 가상화된 현실 인터넷(컴퓨터)은 종전의 미디어가 담당하던 텍스트(신문), 음성신호(전화기, 라디오), 이미지와 영상(TV) 등을 종합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총체적 장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특성이자 기존 미디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원격의사소통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인포메이션 아트(Information Arts)의 저자 스테픈 윌슨(Stephen Wilson)은 웹/인터넷의 독특한 원격의사소통적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사항을 언급한다. '사람들 사이의 연결성(Connectivity between Persons), 협력과 그룹 작업 (Collaboration and Group Work), 분배된 수집 자료의 창조 (The Creation of Distributed Archiv..

Voice 2014.05.13

[유원준의 미디어문화비평] 4. SNS : 피상적(Superficial) 본질(Nature)로서의 사회(Society)_1부

1933년 7월 미국의 한 전화 전신 회사는 다음과 같은 인쇄 광고를 선보였다. "당신의 전화(telephone)는 당신이다. 한순간 그것은 가깝거나 먼 여러 다른 곳에, 또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는 존재를 퍼뜨리고 날려 보낸다. 바로 당신 자신의 일부가 모든 전화의 메시지 속에 있다. 당신의 생각들,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미소, 당신의 인사말, 당신의 태도 그런 것들 말이다. 당신은 발화의 권력(the power of speech) 그 자체를 사용하듯이 전화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든 부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을 쥐고 있는 한 당신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자가 된다. 당신은 비상시에 대처할 수 있고, 기회를 위해 준비되어 있으며, 많은 의견들을 받아..

Voice 2014.03.04

[김상우의 과학・소설 읽기] 집행인의 귀향: 매체-인공지능-주체, 디지털 존재론_2부

“인간은 진정한 창조주가 될 수 없거든. 단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재배열할 뿐이야. 오로지 신만이 창조할 수 있지.” 5. 주인공은 ‘고장 난 기계’를 수선하기 위해서 행동에 나선다. 돈에게 의뢰한 사람은 정치가로 변신한 브록덴, 그가 의뢰한 내용은 단순했다. 행맨이 프로젝트 관련자들을 찾아내 복수하고 있는 것 같으니, 진상을 파헤쳐 달라는 것이었다. 외계에서 돌아온 흔적도 발견됐고, 사업가로 변신한 번즈도 살해됐기 때문에 혐의는 더욱 짙었다.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려면, 행맨프로젝트 관련자들을 탐문하는 게 순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첫 번째 대상으로 정신과 전문의 레일라를 찾아간다. 레일라는 브록덴과 의견이 달랐다. 브록덴의 생각은 망상이며, 행맨의 복수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무엇보다..

Voice 2013.11.23

[김상우의 과학・소설 읽기] 집행인의 귀향: 매체-인공지능-주체, 디지털 존재론_1부

로봇은 입력된 프로그램을 따라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야. 행맨이 로봇과 다른 건 자기가 알아서 판단한다는 점이지…단지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었던 거지. 1. 생체정보를 포함해 모든 게 전산화된 미래. 주인공은 이름 없는 존재다. 자신의 의지로 네트의 세계에서 적극적인 망명자가 된 탓이다. “당시 나는 어떤 결단을 내렸고, 전자적 데이터로 이루어진 이 2차적인 세계의 시민권을 자동으로 받는 일이 없도록 미리 조치했다.” 그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신원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 대규모 전산화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 알던 사람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망명자 신세 덕분에 기묘하게 현실과 통하게 된다. “특수하고 민감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인간으로든 ..

Voice 2013.10.01

[유원준의 미디어문화비평] 3.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창작자들에게 선사한 두가지 감성

탄성과 절망.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창작자들에게 선사한 두가지 감성 PressPausePlay : A Film about Hope, Fear and Digital Culture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접어들 무렵, 전 세계는 '디지털'로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시도했다. 모두가 디지털을 말했고, 디지털 방식으로 생각하자 강조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전화기의 다이얼과 손목시계의 초침은 전자 숫자판으로 바뀌었고, 조심스레 조정했던 라디오 주파수 다이얼마저도 리모콘의 버튼으로 대체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침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진행되었고 우리는 그러한 변화의 흐름을 쫒기에 급급했다. 시작은 달콤했다. 디지털 기술의 침투와 함께 세련된 디자인의 각종 디지털 콘텐츠의 소비 기..

Voice 2013.04.10

[유원준의 미디어문화비평] 2. 놀이, 게임 그리고 매체예술_2부

4. 게임과 예술의 가상성 예술과 놀이는 기본적으로 가상성을 전제로 한다. 예술작품에서 구현되는 이미지의 재현(Representation)은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假想)의 이미지를 창작하는 것이며, 놀이와 게임의 경우 현실 세계와는 다른 룰(Rule)이 적용되는 가상의 세계를 임의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형상화 작용(Verbildichung)’에 근거하는 현실의 이미지 전환 작업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놀이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면, 예술 특히 시각예술은 다분히 놀이적이고 게임적이다. 또한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추상적인 가상의 의미를 실질적인 구현 환경으로 만들었다. 발터 벤야민은 새로운 기술 문명이 예술의 ‘탈 아우라’를..

Voice 2013.02.06

[유원준의 미디어문화비평] 2. 놀이, 게임 그리고 매체예술_1부

1. 왜 예술과 게임을 연관시키는가? 2011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성년자들에게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캘리포니아 주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미성년자에게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할 경우 최고 1000달러 벌금을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대법원은 게임을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하고 책이나 만화, 연극처럼 언론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원 판사의 판결이다. 그는 “어린이를 위해로부터 보호할 권한은 있지만 미리 판단해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재량의 권한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1] 혹자는 이러한 위의 사례를 단순히 미국 게임 산업계의 승리..

Voice 2013.01.02

[유원준의 미디어문화비평] 1. 애플과 삼성, 디자인의 독창성과 폐쇄성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미국에서의 애플-삼성의 재판이 종료되었다. 국내 언론사들의 설레발과는 달리 완벽한 애플의 KO승. 평결과 이후 조치들을 떠올려보면 가혹하리만큼 삼성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이다. 삼성의 갤럭시 S3 이전의 폰들을 볼때마다 상당부분 애플의 그것을 모방한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특히 스마트폰 자체보다는 코드나 패키지 디자인과 같은 부차적인 부분에서마저도 ㅠㅠ) 어쩌면 이 판결은 카피캣 삼성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애플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디자인의 독창성 문제와 삼성 측이 제기했던 모방과 벤치마킹(삼성측 표현에 의하면, 애플 디자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기술/디자인이 최근의 스마트폰의 트렌드가 되었기 때문)사이의 모호함 등은 분명 고려될만한 요소들이었다. 더군다나 애플..

Voice 2012.08.30

Sound meets Technology[2] _Soundscape(사운드스케이프)

눈을 감고 모든 신경을 소리에 집중해보자. 귀를 열고 주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따라가 보자.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오후 두시의 소리: 거실의 tv소리, 윗집의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광고 음악, 창문 밖으로 들리는 차 경적 소리, 새의 지저귀는 소리, 지금 내 앞에 놓인 노트북의 팬 돌아가는 소리까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소리는 우리와 함께 한다. 동시에 우리가 의도적으로 특정 소리를 골라 듣고, 또 역시 의도적으로 그 밖의 소리를 무시하는 작업 또한 계속 된다. 막상 귀를 기울여 모든 소리를 의식하려하니 내 주변에 이렇게 많은 소리가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우리는 어떤 기준의 거름망을 통해 소리를 듣고 버리고 있는 것일까?' 이번 글의 주제는 '사운드스케이프'이다. ..

Voice 201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