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내리쬐는 조용한 로비를 지나 스튜디오A로 향한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장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빛은 사라지고, 어둠과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전자음이 주위를 감싼다. 좀더 들어서면, 새까만 공간에 가늘고 긴 선이 앞을 가로막으며 명료하고 눈부시게 빛난다. 선의 명료함은 그것을 둘러싼 공간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내고,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선에 다가가면, 선은 면이 되고, 숫자 픽셀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필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빼곡한 숫자들 사이로 다른 한 차원이 더 보이는 듯 한 착각이 눈을 어지럽게 한다. 필름을 지나 전시장에 들어서면 스튜디오A의 거대한 검은 공간이 펼쳐지고, 정면에는 숫자와 알파벳들이 픽셀처럼 가지런하지만,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화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