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관련 서적 162

시각 저 끝 너머의 예술 - 현대예술의 위기 그 시지각의 소멸에 관하여_book review

폴 비릴리오 지음_이정하 역_열화당_2008년 6월 그의 글을 읽으면 푸주칼이 떠오릅니다. 노련한 도살자는 짐승의 뼈를 다치지 않게 살을 발라낸다는 말이 있는데, 비릴리오에게도 어울리는 비유일듯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슷하게 말하자면, 푸코는 회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과거를 되살려내어 현재의 모습을 떠올리도록 하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들어내는 시각은, 아직 살아있어 보이는 싱싱한 요리를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아직은 그가 발라낸 살을 보는 건 난감합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끔찍하게 여길 수도 있어요. 마키아벨리의 글은 잘 단련된 남성의 근육을 닮았다고 누군가 말한 기억이 나는데, 그걸 좀 고쳐말하면 비릴리오에겐 죽은 사람의 근육이 보이거든요. 하나의 책을 다 읽었을 때, 여운처럼 어떤 이미..

피상성 예찬_빌렘 플루서_book review

피상성皮相. 사전적 의미의 피상은 '겉모양', '진상을 추구하지 않고 표면만을 보고 내리는 판단'의 의미이다. 이러한 피상성은 오랜 기간동안 가치없는, 피해야 할 속성으로 여겨져왔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 보여졌듯 철학가들은 오랜 시간동안 진실과 참된 현실을 피상적인 것들, 본질로부터 투영된 것들이라는 진실아닌 거짓들로부터 지키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사진의 등장 이후, 디지털의 등장 이후 그 의미가 점차 퇴색된다. 기술복제시대 이후 유일성, 진실성의 아우라는 점차 희미해지며 디지털 문명은 가상을 현실로 바꾸고 현실 속으로 편입시켰다. 진정성의 전통적 패러다임은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플루서는 디지털 매체의 현상학을 논하며 그러한 현대, 그리고 미래의 시대상을 분석하고 전망한다. 저자..

Mark B.N. Hansen, New Philosophy for New Media_book review

Mark B.N. Hansen, New Philosophy for New Media, The MIT Press, 2004. 무엇이 “뉴 미디어”를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가? New Philosophy for New Media의 저자인 Mark B.N. Hansen은 책의 중심에 이 질문을 놓고, 이 질문에 대한 현상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에게 있어 뉴 미디어란 정보의 비-구체화된disembodied 흐름이 아니라, 신체의 구체화된embodied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매개체이다. 저자는 현재까지 이러한 신체지각과 뉴미디어에 대한 연구를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는데, 이 전의 저서인 Embodying Technesis (2000)가 신체와 텍스트, 그리고 뉴미디어의 관계를 다룬 것이라면, 이 책은 보다 이..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_최혜실_book review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 : 매체는 진화하고 이야기는 태어난다 최혜실 지음. 한길사, 2007. 우리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벌어진 ‘말의 술래잡기’를 알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의 피켓에는 풍자와 익살이 가득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집회 해산 명령에 “노래해”라고 대답하고 물대포를 맞으며 “온수”를 외쳤다. 집회 현장에서는 으레 이성적이고 무겁고 투명한 말들만이 오가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경찰과 정부의 직설법에 다양한 수사법으로 응답했다. 감성적이고 가볍고 꼬인 말들, 중·고등학생들이 쓴 소의 탈, 젊은 엄마들이 밀고 나온 유모차와 전경 버스에 밧줄을 매 끌어당긴 넥타이 부대의 제스처, 그들의 몸의 꾸밈과 움직임, 모두의 손에 들린 촛불이라는 여러 언어들이 이성적이고 무겁고 투명한 ‘..

컨트롤된 카오스_노르베르트 볼츠_book review

카오스로의 회귀? No. 새로운 카오스와의 조우 일명 ‘트렌드 분석의 왕’으로 통한다는 독일 미디어 이론가이며 철학자인 노르베르트 볼츠는 자신의 별칭의 유래처럼 현시적인 현상들을 파악하고 이론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독일계 학자이다. 국내에 소개되는 여러 이론가들 중에 독일계 학자들은, 특히 독일 철학의 전통 하에 현대성을 가미한 게다가 독일계 특유의 냉철함과 조밀한 특유의 이론적 전개를 통해 많은 한국의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다. 볼츠는 이러한 독일계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보다 접근하기 쉽게 현대(現代)의 뉴미디어 세계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의 설명은 범문화적이며, 비경계적이다. 경제에서부터 디자인, 미학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시대를 파악하기 위한 실마리들을 제공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 책의 ..

사진, 인덱스,현대미술_book review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이론의 선두에 섰던 옥토버지의 창간 멤버 중 한 사람이었던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사진에 대한 짧은 논문 12편을 모아서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의 프랑스어 제목은 Le Photographique, 즉 ‘사진적인 것’이 된다. 이 글들은 대체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 사이 10년에 걸쳐 쓰인 것들인데, 당시에는 예술가들이 여러 매체들을 혼용하여 작업을 하고 있었고, 모더니즘 시대의 회화,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의 구분은 붕괴되고 있었다. 이 당시 사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또 사진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게끔 하는 특징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고 하는데, 많은 이들이 모더니즘적 시각 안에서 사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할 때,..

컴퓨터 예술의 탄생_book review

관람자들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니터에서 여러게의 숫자와 선들이 일정한 규칙을 니닌듯 지니지 않는 듯 바삐 움직이며 궤적(軌跡)을 만듭니다. 그 모양이 마치 능숙한 화가의 붓놀림 같기도, 이제 막 태어난 생명체의 움직임 같기도 합니다. 그때쯤 드는 의문 한가지.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작가는 작가 본인인가, 아니면 프로그래머 인가, 그것도 아니면 컴퓨터 자체인가? 점점 더 기술이 발전하고 빠른 연산 처리가 가능한 컴퓨터들이 등장하면서 단순한 반응 속도와 처리 능력으로는 컴퓨터가 인간을 앞선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으로는 따라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인간의 '예술적 감흥'을 여러가지 우연적인 변수와 난수의 조합으로 '흉내'를 내는 기술도 개발된 현실입니다. (물론 그것이 인간의 것과 같은가...

아웃사이더 아트_장 뒤뷔페_book review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똑바로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광기는 확실한 도움이 된다. 원래 광기는 고삐를 끊고, 기억을 말소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광기는 외부의 영향과 지배로부터 몸을 지키는 여러 방법을 알려 준다. 그리고 이러한 광기의 도가니 속에서 지적 예술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강인한 작품이 태어난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며, 다시 말하지만 도대체 어디부터가 광기인지 그것이 문제다." - 1959년 장 뒤뷔페가 설립한 아르 브뤼트 컬렉션의 카탈로그에서 전통적인 미술 재료를 거부하고 타르 ·모래 ·유리 등 여러 종류의 정크(폐물)의 집적을 통한 작품 제작으로 '모든 버려져 있던 가치들을 새롭게 주목받도록 이끌어 낸' 장 뒤뷔페는 아이들의 드로잉, 슬럼가 벽의 낙서, 교육을 받지..

미래와 진화의 열쇠, 이머전스(Emergence)_스티븐 존슨_book review

우리는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미디어 문화 속에서 다양한 복잡한 현상들을 경험하며, 때로는 그것을 즐기며, 때로는 그것에 혼란스러워 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기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 생활의 모든 국면들이 기술이 접목된 다양한 미디어들의 영향력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단순한 흑백논리가 아닌 복잡한 의사 결정의 과정을 통해 전개되는 상황들에 관한 이해도를 높여가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두뇌 속에서 쉽게 해석될 수 있는 단순한 상황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용이함에 스스로 실증을 내고 보다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함으로부터의 혼란 상황 또한 즐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즐겨보는 TV 속의 상투적인 드라마의 전개 혹은 상업적으로 흥행한 영화와 예술 영화들의..

예술, 과학과 만나다_book review

우리들이 뉴미디어 아트라고 부르는 기술, 특히 디지털digital이라는 개념이 들어가면서 기존의 예술분야와 그 모습과 성격이 확연히 틀려진 예술이 등장한지도 십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뉴미디어 아트는 폭발적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전시에 노출되고, 보여지고, 행해져왔다. 하지만 최근 그 급격한만큼 빠르게 논의와 모습들이 수그러들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후기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판 아래 보여지는 트랜드, 즉 수요와 공급이라는 법칙에 의한 트랜드 변화-회화의 부활-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의 뉴미디어 아트가 가지는 한계 역시 존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당대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담론'생성에 있어 기존 예술과 그 무게추가 많은 차이를 보였기 때문..